예견된 사고, SPC는 무엇을 해야 했나

그날엔 무슨 일이

 

지난달 15일 새벽 6시경 SPC 계열사 SPL 평택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홀로 작업하던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SPC가 발표한 ‘10월 15일 안전사고 발생 경위 및 경과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혼자 샌드위치 소스 혼합 작업을 하던 중 상반신이 교반기에 끼였다. 사고는 2인 1조로 함께 작업하던 작업반장 B 씨가 잠시 작업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졌다고 알려졌다. 사고 현장을 비추는 CCTV의 부재로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소비자는 무엇에 분노했나

 

사고를 두고 소비자들의 분노 여론이 들끓었다.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열악한 작업 현장과 안전조치 부재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SPL 공장이 회사 내규로 지정한 2인 1조 근무 원칙이 여태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25일 SPL 산재사망사고 대책회의에서 피해자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강형규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한 사람은) 재료를 갖다 줘야 하고 배합해서 나온 소스를 옮기는 등 왔다 갔다 해야 한다”며 “회사는 그렇게 2인 1조라고 하는데 (이는) 2인 1조가 아니다”고 언급했다. 또한 강 지회장은 제대로 된 2인 1조 작업을 요구했으나 사측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 규칙 제87조에 따르면 ‘분쇄기 등의 개구부로부터 가동 부분에 접촉함으로써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덮개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교반기에는 덮개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사고에 대한 SPC의 무책임한 태도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SPC는 사고 당일 아무런 입장표명 없이 다음날인 16일 영국에 새로운 매장이 문을 열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또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노동자 일부에게만 휴가를 제공하고 직원의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 없이 사고가 난 배합기 근처를 천으로 가리고 공장을 재가동했다. 추후 비난이 거세지자 해당 층 직원에 한정해 뒤늦게 휴가를 제공했다.

SPC는 사고로 숨진 직원의 빈소에 계열사 빵을 답례품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고인과 유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오며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유족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SPC에서 일하다가 사망했는데 이걸 답례품으로 주라고 갖고 온 게 이게 말이 되느냐”며 분노를 표했다.

결국 사고 발생 6일 만인 지난달 21일 허영인 SPC 회장은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발표’를 통해 총 1천억 원 투자를 통해 안전 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과가 끝난 후 별도의 질의응답을 갖지 않아 진정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또한 사과 이틀 뒤 SPC 계열사의 제빵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해 분노의 여론은 당분간 잦아들기 힘들 예정이다.

 

안전보다 이윤?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가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SPC는 지난 5년간 약 70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산재보험료 감면은 사업장별로 산재 발생 정도에 따라 보험료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사업주의 자발적인 산재 예방 노력을 이끌고자 하는 취지로 시행된다. 그러나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SPC 16개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총 759건으로 한 달 평균 13.5건이 발생한 셈이다.

또한 그동안 산업재해사고가 은폐됐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SPC 계열사 4곳에서 발생한 산재 건수는 ▲2017년 4명 ▲2018년 76명 ▲2019년 114명 ▲2020년 125명 ▲2021년 147명이었다. 2018년 이후 산재 건수가 급증한 것에 대해 이은주 의원실은 “(2018년 민주노총 소속 노조 설립 이후)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산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부 국정감사에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SPL은 올해 안전예산(5억 8200만 원)을 지난해보다 20.4% 줄였다”며SPL의 산업·안전·보건 조치를 지적했다. 매년 늘어나는 산재사고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아온 SPC에서 실제 산재 예방 노력이 이루어졌는지 많은 이가 의문을 품는 이유다.

 

확산하는 불매 운동

 

사고 이후 소비자 사이에서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SPC 계열사에 대한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SPC 계열사는 총 68개이며 계열사 산하 브랜드까지 고려하면 규모가 상당해 온라인에서는 SPC 제품 구별 방법과 계열사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SPC 제품 여부를 판별해주는 사이트인 ‘감:빵집’이 등장했다.

이에 SPC 매출액은 급감했다. 지난달 26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익덱스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15일 이후 SPC의 멤버십 앱인 ‘해피포인트’ 사용자는 15일 62만 8천여 명에서 ▲16일 57만 8천여 명 ▲17일 57만 4천 명 ▲18일 54만 8천 명으로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SPC 불매 운동이 확산하며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에 지난달 22일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맹점에게 큰 고통인 것은 사실’이나 ‘회사(본사)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경영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뒤늦게 칼 빼든 정부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3일 사망사고에 대한 원인 규명 및 엄정 수사와 별개로 특단의 조치 마련 및 즉각 시행을 예고했다. 이번 대형 산재 사망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먼저 식품 혼합기 등 유사 위험 장비를 보유한 13만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12월2일까지 6주간 안전조치 이행 여부 단속을 예고했다. 또한 국민적 우려가 큰 SPC 전체를 대상으로 빠른 시일 내 산업안전보건 기획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3일 시행된 SPC삼립 세종생산센터 산업안전 현장감독에서 감독관들이 감독을 나간 사이 SPC 직원이 회의실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무단 촬영 및 공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난항이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직접적 조치뿐만 아니라 올해 300인 미만 제조업체 2천여 개소에 시행 중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컨설팅’을 내년에는 50인 미만 제조업체까지 포함한 1만여 개소로 확대해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24일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SPC 계열사 제빵공장 사망사고 현장에서 진행한 합동 감식이 1시간여 만에 끝나자 정부의 대응이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위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초 노동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기업의 구조적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서류상으로 SPL의 직접적인 경영 책임자가 아닌 허 회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YTN과의 인터뷰에서 고용노동부는 “SPL이 별도의 법인이기에 SPC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추가적인 조사 후에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노조는 허 회장 가족이 지분을100% 소유하고 있는 파리크라상이 SPL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 사실상 허 회장이 책임자라는 입장이다.

 

 노동자는 부속품이 아니다

 

기업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건 당연한 처사다. 안전한 노동을 위한 기업의 노력은 필수적이어야 하며 국민은 이를 유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또한 사고가 벌어지고 난 후에야 보여주기식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은 더는 필요하지 않다. 이미 제정된 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감시·감독을 통해 보다 안전한 노동환경이 조성돼야 할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된다. 그저 안타까운 사고로 무고한 노동자가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정서영·김채현·조유솔 기자

kiger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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