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끝없는 수레바퀴 속에서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한 발언이다. 나 대표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더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며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국가 원수 모독’에 대한 발언은 단순히 이 대표 개인의 발언은 아니다. 민주당은 “촛불혁명을 통해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을 모독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며 소속의원 128명 전원의 서명으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 역시 “나라를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국민과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낭비하지 말라”며 공식 논평을 냈다.

그렇다면 국가원수모독이란 무엇일까. 국가원수모독죄는 독재정권 시절의 산물로 1975년 개정 형법에 신설됐다가 민주화의 과정에서 1988년 폐지됐다. 그나마 이번 발언을 다룰 수 있는 법이 있다면 국회법 146조의 “국회의원이 본회의 등에서 타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해선 안된다” 정도다. 한국당이 이 대표에 대해 맞제소한 징계안에서 “이 대표가 언급한 죄명은 과거 독재체재에 대한 비판을 처벌하고 외신을 통제하고자 했던 권위주의 정권의 산물”이라 언급하는 이유다.

국가원수모독. 전 정부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구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라는 말을 해 논란이 됐다.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해 각종 의혹이 제기되던 때의 발언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당시 “국가원수모독죄와 유언비어유포죄라는 황당한 죄목으로 시민의 입을 막던 유신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시절”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발언도 회자되고 있다. 홍익표 의원은 2013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 귀태의 뜻을 설명하며 “귀태 박정희의 후손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2017년 표창원 의원은 의원회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된 누드화를 전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더 심한 예를 들어보자. 현 충남도지사인 양승조 의원은 201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전 정부의 사례만을 들며 문 정부의 내로남불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국가원수 모독’ 발언 당시에는 그 전 정부인 노무현 전 정부 때 야당의 발언이 회자됐다.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막말의 수레바퀴는 현대 정치의 단면이다. 탈원전, 사립 유치원, 4대강 보 철거 문제, 대북관계 등 어떤 때보다 정치적 스탠스가 갈리는 사안이 쌓여있다. 내용이 아닌 표현으로 싸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가면 끝없는 싸움일 것이 분명하다. ‘니들도 했으니까 우리도 한다’와 ‘그때는 하지 말라 하고 왜 하는데’는 끝이 날 수 없는 유치한 논쟁이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누가누가 잘못을 더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인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발언 중 가장 필자의 이목을 끄는 것은 모욕적 언사가 아니다. 여당의 비판에 대꾸한 한 야당 인사의 말이다. 당시 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은 “야당 의원의 유일한 무기인 입과 말을 막는 것은 야당 의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이는 독재적 발상”이라 했다. 야당의 입을 막지 말자. 정도의 지나침은 국민이 현명히 판단할 것이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의 발언으로 글을 맺는다. TV 프로그램 ‘썰전’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됐을 때 승복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냐”는 질문에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가 있다. 비판함으로서 오히려 국민들이 불만을 해소하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냐”라며 참을 것이라 했다. 그의 대인배적 면모를 기대한다. 이제는 불필요한 흉물 수레바퀴를 멈추자.

 

강민정 기자

khangmj02@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