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저널리즘의 시곗바늘은 어디로 가고 있나

어느덧 다시 봄이다. 캠퍼스 주변의 분홍들이 안암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연유 없이 설레는 마음에 젖어 소소한 회상에 빠져들게 될 테지만, 달력 한 켠에 보이는 ‘4월 16일’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내면의 싱그러운 봄 기분도 잠시 한 걸음 물러나기 마련이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계, 경제계, 교육계, 언론계 등 나라 전체가 마치 큰 한 방을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에 휩싸였고, 지금도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실제로 참사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놓았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변화와 쇄신의 목소리가 나오게 해 줬다.

개중에서도 언론이 낸 자성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행정부의 미흡했던 재난대처능력과 함께 기자라는 직함으로 부르기도 부끄러울 수준의 언론 보도 행태가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일까. 사건 당시 최초로 전원 구조 오보를 내고, 희생자들의 보험금을 계산하여 빈축을 샀던 MBC는 자사의 당시 보도를 ‘보도 참사’로 규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체는 끌어 올렸지만 언론 통제의 진실은 아직 가라앉아 있다며 당시 박근혜 정부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했던 경영진과 보도국 간부들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 사고로부터 거의 4년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MBC만이 아니라 많은 언론들이 당시 진실을 가리고 고통을 후벼파며, 국민이 아닌 정부를 지킨 것에 반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기는 아직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적인 예로 ‘버닝썬 게이트’로 드러난 가수 정준영 씨(이하 정 씨)의 불법 몰카 촬영사건 보도에서, 많은 언론은 여전히 거짓된 정보를 양산하고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실제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법촬영물 공유 단톡방 참가 멤버로 지목된 연예인들은 이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진을 빼야 했다. 한 술 더 떠서 정 씨가 불법적으로 촬영한 영상에 나오는 피해 여성의 신원을 특정하는 가짜 뉴스도 돌았고, 급기야 이런 보도 행태의 피해자인 유명 걸그룹의 한 멤버는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지난해 ‘성폭력 성희롱 사건 보도 실천요강’이라는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건만, 삐뚤어진 저널리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렇듯 언론의 보도 행태가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크게 바뀐 게 없다면, 권력 앞에서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어땠을까. 박근혜 정부의 대대적인 언론 장악 시도가 2016년 말 블랙리스트 문건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야 언론은 공영방송 총파업 같은 저항의 노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거대한 권력은 이미 물러난 후였고, 단지 정치성향만 다른 새 권력 앞에서 언론은 이전의 태도를 답습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사장단에 친정부 인사들이 포진하는 것은 더이상 논하기에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일 만큼 당연시하게 여겨지며, 정치적으로 ‘코드가 맞지 않는’ 기자들을 내부에서 배척하는 것은 여전하다. 지난 4일에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이 가장 극심했을 때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에서 관련 속보를 내보내지 않고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진행하는 ‘오늘 밤 김제동’을 방송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번 산불이 세월호 참사만큼 대형 인명피해를 낳지 않았지만, 국민을 지켜야 할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큰 변화의 노력을 하겠다는 언론사들의 선언에도, 본질적으로 나아진 점은 많지 않다. 이대로라면 이 땅의 저널리즘은 계속 발전 없이 보도 참사를 반복하고, 기레기라는 멸칭 속에서 살 것이 뻔하다.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저널리즘이 세월호 보도 참사 당시와 같은 시간 속에 갇혀 살 수만은 없다.

 

김성현 기자

tjdgus09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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