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알 권리, 시각장애인에게도 당연할까

1926년 11월 4일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날이다. 이를 기념하고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11월 4일은 ‘점자의 날’로 지정됐다. 점자의 날을 맞아 The HOANS에서 우리 주변의 점자 활용 및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실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현실을 묻다

 

정보 접근성이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정보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시각장애인의 ‘알 권리’, 즉 정보 접근성을 향상할 방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단이 점자다. 점자란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활용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도록 튀어나온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한 표기문자다. 하지만 점자 표기만으로는 정보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 해독이 가능한 비율은 9.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본교의 실제 상황은 어떤지 살펴봤다. 본교의 장애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한 보과대 22학번 A 씨는 장애인 지원 제도 및 시설에 대해 “점자 표시가 어느 정도는 잘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속기 도우미 제도,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이동 차량 지원 등이 잘 마련돼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 식당의 메뉴처럼 날마다 달라지며 출력을 통해 알려지는 정보는 특성상 모두 점자로 접근하기는 어렵다는 한계점 또한 언급했다.

A 씨는 “중증에 해당하는 1급 시각장애를 가진 학우 중에도 점자를 읽지 못하는 분이 있다”며 “시각장애인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려면 음성 서비스 확대가 좀 더 적합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점자 표시도 중요하지만 점자 해독이 가능한 시각장애인 비율이 낮으므로 음성 안내와 보도블록 설치 등 여러 장치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때 진정한 정보 접근성 제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본교를 비롯한 우리 주변의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성이 어떤지 알아보기로 했다. ▲점자 ▲음성 안내 ▲보도블록으로 분야별로 나누어 실태를 종합적으로 짚어봤다.

 

음성 안내기 관련 법과 현황은 과연

 

식품의약안전처는 작년 7월 ‘식품의 점자 표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식품 용기 또는 포장에 점자 및 음성·수어 변환용 코드를 표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본 가이드라인은 현재 점자 표시가 일부 제품에 그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점자가 많은 양의 정보를 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제품의 형태와 재질이 모두 상이해 모든 제품에 점자 표시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가 제작한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매뉴얼’은 지하철과 공공시설 등에 음성 유도기를 설치하도록 한다. 음성 유도기란 공공건물이나 대중교통시설 등의 특정 지점에 부착해 시각장애인이 ▲음향 ▲음성 ▲멜로디를 통해 본인의 위치와 목표지점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리모컨을 누르면 “6호선 보문역 방면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입니다”와 같은 안내음을 출력한다. 매뉴얼은 ‘접근로를 통해 진행하는 시각장애인이 무선 리모컨을 동작, 공공건물의 주 출입구로 진입 유도할 수 있도록 주 출입구 외부에 설치한다’는 식으로 음성 유도기 설치 지점을 지정하고 있다.

음성 유도기는 2011년 서울시가 ‘지하철 정거장 교통약자 편의시설 기준’에 설치장소를 구체화 후 설치가 확대됐다. 이에 2018년 기준 1‧2호선을 비롯한 6개의 노선을 제외한 16개 노선은 역사의 전체 구간에 음성 유도기 설치를 완료했다. 구속력이 없는 행정규칙임에도 대부분의 역사에 음성 유도기 설치가 완료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설치된 음성 유도기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2021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교통약자 이용편의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74%가 음성 유도기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리모컨 미소유 ▲음성 오작동 ▲소음 등의 이유로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시각장애인 이 모 씨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량리역에서 아무리 리모컨 버튼을 눌러도 음성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며 오작동 등으로 음성 유도기를 놓고도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음성 유도기뿐만 아니라 음향 신호기도 존재한다. 음향 신호기란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기에 연결하여 신호등화 상태를 음향으로 알려주는 보행자 신호기의 부가장치를 말한다. 경찰청의 2017년 ‘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기 규격서’에 따르면 음향 신호기는 ▲시각장애인 밀집 거주지역 ▲시각장애인 이용시설 주변▲전철·철도역·여객터미널 주변 ▲국가·지방자치단체 청사 등 공공건물 주변을 우선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 최혜영 의원이 전국 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음향 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는 전국 기준 34%에 불과했으며 서울 또한 66% 수준이었다. 최혜영 의원은 음향 신호기에 대해 “설치 비율이 낮고, 고장이 잦은데 대응도 늦는 등 시각장애인들의 보행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알 권리 및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식품에 대한 점자 및 음성·수어 변환 코드 표시 ▲음성 유도기 설치 ▲횡단 보도 음향 신호기 설치 등의 규정이 마련됐으나 권고 수준에 그쳐 실행률이 저조하며 후속 관리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점자 보도블록 법과 현황은

 

점자 보도블록(이하 점자블록)이란 시각장애인의 보행 유도 및 안전을 위해 ▲건물의 바닥 ▲도로 ▲플랫폼 등에 설치하는 보도블록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선형 점자블록과 점형 점자블록으로 나뉜다. 선형 블록은 방향 유도를 목적으로 하며 일정한 거리까지 직선 방향을 나타낸다. 점형 블록의 경우 보행 동선의▲분기점 ▲대기점 ▲출발점 ▲목적지점을 표시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립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기준에 따르면 건축물의 주 출입구와 도로 또는 교통시설과 연결된 보도에는 상세히 규정된 ▲규격 ▲색상 ▲설치 방법을 준수해 의무적으로 점자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점자블록이 파손되거나 가판대 등으로 가려져 제구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또한 점자블록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정책 집행 단계 초반부터 잘못된 점자블록 설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실제로 작년 8~10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서울시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중구 일대 횡단보도 점자블록을 조사한 결과 총 2,300여 개의 점자블록 중 제대로 설치된 것은 596개에 지나지 않았다.

더불어 미관상 이유로 점자블록 설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해 모양과 색깔이 눈에 띄도록 제작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에는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총신대입구(이수)역까지 연결되어 있던 점자블록이 모두 철거됐다.

 

안암에서 애써 음성 안내기를 찾다

 

본교와 본교 주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 및 음성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본지 기자들이 직접 거리에 나섰다. 먼저 음성 유도기를 확인하고자 안암역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 설치 현황을 취재하려는 목적으로 안암역에 방문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음성 유도기가 지금 보니 화장실 앞과 계단이 있는 출입구 등의 벽 모서리 곳곳에 잘 설치돼 있었다. 리모컨을 구입해 들고 다닌다면 특정 시설의 위치나 위험의 정도를 안내받아 이동 시의 어려움을 덜 수 있을 듯했다.

안암역 3번 출구의 계단을 열심히 올라 다시 안암역을 나왔다. 그리고선 안암역 사거리 건널목의 신호등에 설치된 음향신호기를 살펴봤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 음향신호기 버튼을 누르니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방향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입니다, 지금은 정지하십시오”라는 안내음이 나왔다. 조금 뒤에는 음향신호기에서 녹색불을 알리는 신호음이 나왔다. 그러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신호등이 다시 적색으로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음성은 따로 없었다.

다른 횡단보도의 상황은 어떤지 알아보고자 정경관과 학생회관을 지나 고대앞 사거리까지 걸음을 옮겼다. 고대앞 사거리에서 카페 대즐링 방향으로 난 횡단보도의 음향 신호기도 살펴봤다. 버튼을 눌렀지만 안내음은 교통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주변 차량 소음과 신호기 소리를 혼동한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듯했다. 고대앞 사거리에는 큰 횡단보도 앞뒤로도 작은 도로가 나 있었는데, 이곳에는 음향 신호기는 물론 신호등 자체가 없어 모두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본교 정문 앞의 GS25 맞은편 횡단보도로 향했다. 이 곳의 상황은 사뭇 심각했다. 음향 신호기를 아무리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신호기에는 고장 시 신고 연락처가 적혀있었지만, 이를 점자로 표시해 놓지 않아서 시각장애인이 즉각적으로 신고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듯했다.

‘무너지고 깨진’ 점자블록

 

그렇다면 본교 주변의 점자블록은 얼마나 잘 설치돼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기자가 본교 주변의 점자블록 현황을 살펴봤다. 정경관에서부터 취재를 나서는데, 규격에 맞지 않는 점자블록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정경관 출입문 앞 바닥에는 실제로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지만 돌출점 일부가 훼손돼있었다. 표준 점자블록은 하나당 36개의 돌출점을 가져야 하지만, 정경관 출입문의 점자블록은 5개의 돌출점이 없는 상태였다.

이후 정대 후문으로 나와 안암역으로 향했다. 길에는 선형 점자블록이 쭉 설치돼 있어 역까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길을 안내하기 위해 계속 이어져야 할 점자블록이 맨홀 뚜껑이나 가판대로 인해 도중에 끊겨 있었다. 또한 점자블록은 정대 후문에서부터 역으로 이어지는 큰길에만 설치돼 있었고 큰길 옆 작은 골목이나 샛길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점자블록이 정밀한 길을 안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안암역 내부에 들어섰다. 역 내부는 점자블록이 모두 규정에 맞게 설치돼 있었다. 규격과 용도에 맞는 블록들이 정확한 동선을 따라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선형 점자블록이 계단으로 연결돼 진행 방향을 유도하고,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에 위험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점형 점자블록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경고를 알렸다. 교통카드 발급기 등 역 내의 여러 부수 시설 앞까지도 선형 점자블록이 잘 연결돼 있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 바깥의 점자블록 설치 상황은 심각했다. 안암역 3번 출구로 나와 사거리 안쪽 길을 따라가니 점자블록이 횡단보도 앞에서 뚝 끊겨 있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널 필요가 없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점자블록이 하나도 설치돼 있지 않아 길을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심지어 점자블록이 끊긴 지점의 바로 앞에는 가로등과 전류 보급함이 설치돼 통행을 막고 있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고대앞 사거리까지 길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횡단보도를 건넌 후 큰길을 따라 점자블록이 쭉 설치돼 있었지만, 훼손된 점자블록 여러 개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심하게 깨진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아 밟으면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점자블록도 있었다. 점자블록 설치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고려대역을 거쳤다. 고려대역의 내부 역시 안암역처럼 점자블록이 규격에 맞게 설치돼 있었다. 안암역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살피기 위해 다가간 역내 엘리베이터 탑승구 앞으로는 탑승 방향을 유도하는 선형 블록이 이어져 있었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고려대역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역 외부의 1층 엘리베이터 탑승구 앞으로도 연결돼 있어야 할 점자블록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외 엘리베이터 탑승구에는 2개의 점형 점자블록만 설치돼 있었고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지는 선형 점자블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즉,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기 전과 후의 길은 점자블록으로 전혀 안내돼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엘리베이터 탑승구 앞에 우두커니 놓인 2개의 점형 점자블록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에 안암역에 다시 돌아가서 살펴보니 이런 상황은 안암역도 같았다.

설치만 하면 끝?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직접 걷고 뛰며 본교 주변의 ▲점자 ▲음성 안내 서비스 ▲점자블록 등 시각장애인용 정보 접근 도구 설치 실태를 자세히 살펴봤다. 실질적으로 점자 이용률이 높지 않아 시각장애인이 음성 안내의 확충을 원하는 만큼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음성 안내 서비스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보충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점자블록 또한 온전히 정보 접근성 향상에 기여 중이라고 보기는 힘든 상태였다.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 야외에 설치된 점자블록들은 훼손이 심하고 명확한 기준도 없이 설치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성 향상을 위해 여러 가이드라인이 제시됐지만 그마저 여전히 바꿔야 할 부분이 많은 상황이다. 가이드라인에 그치기보다는 법제화를 통해 여러 보조 장치의 설치가 더욱 확충될 필요가 있다. 또한 그저 설치하는 수준에서 그치기보단 꾸준한 관리와 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각장애인의 삶의 조건 보장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지속적인 관심과 인식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든지 알고 싶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권예진·김은서·정지윤·조유솔 기자

yejingw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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