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감사결과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지난 10월 감사원이 월성 원자로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한 이래, 이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The HOANS에서 일명 ‘월성 1호기 스캔들’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10월 20일 감사원은 ‘월성 원자로 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를 내놨다. 감사 결과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직원들이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상의 판매단가가 실제보다 낮게 책정됐음을 묵인하는 과정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장관 및 직원들이 불합리하게 관여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게다가 감사원 감사가 착수됐다고 알려진 지난해 말 산업부 직원들이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토록 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 조사 시작과 더불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탈원전으로의 교두보, 월성 1호기 폐쇄

 

월성 1호기 폐쇄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 수립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돼 온 전력 정책인 탈원전 계획이 있다. 정부 수립 첫해인 2017년 7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원전 사업 백지화가 시작됐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사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했고, 3개월 뒤인 10월 20일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조사 결과 재개를 지지하는 비율이 59.5%로 집계돼 공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준비 과정서 근로 시간 단축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준공 시점은 2022년 10월에서 2024년 6월로 변경됐다. 2017년 12월에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는 신고리 5·6호기와 달리 위원회 설치를 통한 공론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3년째 개발 중단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런 상황에서 2022년까지 가동이 예정돼 있던 월성 1호기는 2018년 조기 폐쇄가 결정됐다. 이전부터 산업부는 월성 1호기의 가동 중단을 여러 차례 공언했고 2017년 12월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월성 1호기를 공급물량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마침내 한수원에서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당시 한수원은 “최근의 낮은 운영실적을 고려할 때 월성 1호기의 가동에 따른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며 폐쇄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월성 1호기 감사의 역사

 

지난 1월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3차례나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큰 논란이 일었다. 정유섭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한 달 전 삼덕회계법인으로부터 “계속 가동하는 것이 1,778억여 원 이득”이라는 내용의 분석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산업부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이 검토를 거쳐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는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즉시 정지하는 것보다 224억여 원 이득”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 정 의원은 산업부와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지표를 불리하게 왜곡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산업부는 한수원과 삼덕회계법인에 경제성 평가의 기준이나 전제를 바꾸라며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수원 역시 “회계법인은 자체적으로 경제성평가 입력변수를 결정해 분석했다”며 “회계법인이 도출한 결과는 제3의 회계법인의 검증을 다시 한번 거치는 등 경제성 평가는 객관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작년 9월 제20대 국회의 요청으로 시작된 감사 결과가 지난 10월 20일 발표되며 다시금 큰 파문이 일었다. 감사원에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위해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으며,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이 외부 기관의 경제성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조기 폐쇄 시기를 결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감사원은 산업부 직원들이 한수원이 가동 중단 이외의 방안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평가과정에 관여해 평가의 신뢰성이 저해됐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그와 동시에 이번 감사 결과를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을 남겼다.

 

단순한 징계일까, 탈원전 사망선고일까

 

감사 결과를 둘러싸고 정당별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 결과는 일부 절차 미흡에 대한 기관경고와 관계자 경징계에 불과하다”며 이번 평가를 정쟁에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윤건영 의원은 지난달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월성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며 감사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책 집행 과정의 오류와 행정적 과오에 대해서는 감사와 수사가 가능하지만, 월성 1호기 폐쇄 공약 및 정책 자체를 감사‧수사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이다. 정의당 역시 “이번 감사는 경제성에 국한됐다”고 규정하며, “탈원전 정책 발표 이전에 이미 법원에서 월성 1호기 폐쇄 판결이 났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여 감사 결과와 정책의 타당성 여부는 관련이 없음을 설명했다.

반면 보수 진영은 이번 감사 결과가 탈원전 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 선고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감사원장 압박을 위해 친인척 행적까지 들춰대고 ‘짜 맞추기 감사’를 시도했지만, 진실 앞에서 수포로 돌아갔다”며 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감사원의 정당한 감사를 방해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감사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법정시한인 올해 2월에 발표됐어야 할 감사보고서가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라며 “친정부 성향의 감사위원 선임 시도 등 감사원의 정권 편향성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법무부 vs 검찰, 2차전으로 번지다

 

국회 바깥에서는 검찰개혁 건으로 갈등을 겪던 법무부와 검찰이 감사원 결과 보고 이후 다시 맞부딪치는 형국이다. 대전지검은 지난달 5일 ▲산업부 ▲한수원 ▲한국가스공사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에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의힘에 의한 청부 수사가 아니냐고 질의하자 “정치적 목적으로 검찰권을 남용하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된다”며 검찰에 비판적인 태도를 내보였다. 추 장관은 권력형 비리가 아닌 정부 정책 결정 과정상의 문제임에도, 검찰이 에너지 전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까지 수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이후 지난달 24일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명령하면서 잠정 중단 됐던 수사는 지난 1일 법원이 명령의 효력을 정지하며 재개됐다고 알ㄹ졌다.

추 장관의 발언은 여전한 행정부 내 갈등 국면을 내비치는 동시에 월성 1호기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적법성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으로 번졌다. 여권에서는 수사권 남용이라는 장관의 인식에 공감하는 기류지만 국민의힘은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월성 1호기 수사를 ‘정부를 흔드는 수사’로 규정한 추 장관의 발언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해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언급하는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고발된 사건을 수사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월성 1호기 스캔들의 결말은

 

감사원 감사 결과는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인 정책 이행을 위해 실제 수치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그 감독 과정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불러왔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는 회계 조작 자체가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나아가 탈원전 경제성 문제 자체나 감사원의 ‘여권 눈치 보기’ 등을 꾸준히 지적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반면 지지층에선 “정책 자체의 적법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월성 1호기 가동중단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이 조기 폐쇄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정해 놓고 감사를 진행했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한편 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현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감사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입법부·행정부를 막론하고 큰 파문을 불러온 지금,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민재승·김준범 기자
jaysong4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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