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다시 부는 극우 포퓰리즘 바람

지난달 24일 열린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극우 성향 마린 르펜 후보 또한 41.46%를 득표해 선전하면서 존재감이 다시금 각인됐다. 유럽의 대표 극우 성향 정치인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도 연임에 성공하면서 팬데믹 이후 잠잠했던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금 부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 곳곳에서 다시 떠오르는 극우 포퓰리즘 열풍을 The HOANS에서 조명해봤다.

 

연이은 극우 포퓰리즘 열풍

 

현직 대통령 마크롱과 강경 우파 정치인 르펜의 대결로 압축된 프랑스 대선은 마크롱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내무부가 25일 발표한 개표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은 58.54%, 르펜은 41.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마크롱은 프랑스 대선 역사상 20년 만에 연임에 성공하며 2027년까지 프랑스를 이끌게 됐다. 그러나 마크롱에게도 유쾌한 승리는 아니었다. 마린 르펜이 프랑스 극우 후보 중 역대 최고 득표율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5년 전 선거에서 르펜과 마크롱의 득표율 차이는 32.2%에 달했지만 여당에 대한 반감 등으로 인해 이번에는 단 17%로 그 차이를 좁혔다. 또한 이번 대선의 기권율은 약 28%로 196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해 300만 장의 무효표가 발생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마크롱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 ‘르펜이 진 선거’라는 평을 내며 극우 정당의 약진을 부각했다. 마크롱은 당선 연설에서 “나의 사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 사상을 막기 위해 나에게 투표했다는 것을 안다”며 프랑스 국민의 반감을 인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선 투표에 진출해 마크롱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르펜은 이번 선거 득표율을 두고 희망을 봤다며 눈부신 승리라 자평했다. 르펜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사실상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후보는 ▲EU와 나토 탈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반이민 등 강경한 성향으로 프랑스 정계에서 외면받아 왔다. 르펜 역시 첫 대선 도전이었던 2012 대선에는 1차 투표에서 약 18%의 득표율을 기록해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에서는 결선 투표에 진출해 득표율 33.9%를 달성한데 이어 이번 결선 투표에서는 41.4%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자신의 역대 최고 득표율을 갱신했다. 르펜의 소속 정당인 국민연합은 대선에서의 높은 득표율에 힘입어 6월 예정된 프랑스 총선에서 일정 수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르펜은 패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했다.

유럽 곳곳에서도 극우 정당의 선전이 이어진다. 지난달 3일 열린 헝가리 총선에서는 극우 성향 여당인 피데스가 압승을 거두면서 오르반 총리 연임이 확정됐다. 2026년까지 집권하게 된 오르반 총리는 이번이 4연임 째다. 그는 그동안 친러·반EU 성향을 드러내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제재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유럽 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 물자의 헝가리 통과를 거부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오르반 총리는 권위주의적 사법·언론·교육 정책을 시행하며 EU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외에도 세르비아에서 친러 극우 성향을 띠는 부치치 대통령이 지난달 재선에 성공하는 등 유럽 극우 세력의 영향력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 열풍의 원인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한 원인으로는 경제 위기가 꼽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양극화가 심화하자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중산층 이하 유권자들의 분노가 고조됐다. 이에 지나친 세계화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세력은 보호무역주의,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고 내부를 결집시켜 지지도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급진 극우파가 코로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악화로 극우 포퓰리즘 정책들이 다시 지지를 얻고 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감도 대중의 포퓰리즘 지지를 부추겼다. 최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는 기존 기성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 모두 합쳐서 6.75%라는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며 결선 투표 진출에 실패했다. 그간 양당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실망감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도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온 양당의 몰락은 충격이라는 평가다. 지난 201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기성 정당 연합체가 약세를 보이고 극우 정당 그룹이 의석수의 1/4를 차지한 바 있다. 이들의 쇠퇴 원인으로는 ▲기성 정당 집권 시기에 발생한 경제 위기 ▲난민 위기에 대한 미흡한 대처 ▲당내 파벌분쟁으로 인한 신뢰도 하락 등이 꼽힌다. 오래 집권한 정당들이 부패 문제로 물의를 빚은 점 또한 요인으로 여겨진다.

반세계화와 반이민 문제로 인한 민족주의 고조 역시 극우 세력에 큰 힘이 됐다. 내전과 일자리 등 문제로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이 증가하면서 최근 유럽에서는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가 강화됐다. 극우 세력은 이런 정서를 대변하고 민족주의를 고취해 시류에 편승했다. 이민자와의 일자리 경쟁에 대한 불안감 증폭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저소득층이 극우 정당으로 대거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이민 정서는 최근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 유입으로 다시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극우 열풍의 미래는?

 

다만 극우 정당 선전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이 대다수 친러 성향을 띠는 극우 세력의 발목을 잡으리라 예측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친러파 및 푸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정치 세력에 대한 유럽 내 여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폴란드 방문에서 그의 친러 행적을 두고 비판받는 망신을 겪기도 했다. 르펜의 정당인 국민연합은 러시아 군수업체에 100억 원대 채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탄 대상이 됐다. 이 밖에도 동유럽에서 극우 세력을 매개로 활동하는 러시아 정보국의 행적이 밝혀지거나, 러시아가 극우 인사를 지원해 유럽 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음모론이 터져 극우 정치인들이 곤혹을 겪었다. 이에 푸틴을 비판하는 등 거리두기 행보를 보이면서 여론을 잠재우는 데에 나섰지만 아직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반면 극우 열풍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예상도 있다. 과거와 달리 극우 세력이 정상화 전략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의 정상화란 국민 다수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합리적인 비전을 제시해 정치판을 주도한다는 전략이다. 르펜의 경우 과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유럽연합 탈퇴 등과 같은 정책을 철회하고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와 의료계 종사자‧교사 급여 인상 등 민생 안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르펜이 극우 색채가 드러나는 ▲나토 탈퇴 ▲러시아와 협력 강화 ▲반이민 등의 공약을 강조하지 않고 이미지 개선을 시도한 점이 이번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영국 ▲스페인 ▲독일 등에서 극우 정치 세력이 각종 정치 의제를 선점하면서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 여전히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어 재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본인의 출마 의지가 강한 만큼 2024 대선에서도 유력 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유럽 극우 세력이 이를 롤모델로 꼽으며 지지세를 결집했던 만큼 재선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극우 열풍 과연 이어질까

 

경제 위기와 반세계화 현상 등으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며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다시 정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의제를 선점하고 기성 정치권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곳곳에서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극우 포퓰리즘 열풍이 반짝 성공에 불과할지 지속되는 태풍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이정윤·신재용·정서영 기자
justinmanu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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