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교육 ‘인권과 성평등’, 제대로 효과 내려면…

본교는 지난 2017년부터 교육과정 편성·운영 시행세칙 제43조에 따라 ‘인권과 성평등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08분반의 등록이 이뤄지는 가운데 몇몇 학생들 사이에 인권과 성평등 교육이 허울뿐인 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학부생은 매 학년 1회씩 재학 기간 총 4회에 걸쳐 인권센터에서 제공하는 해당 교육을 이수해야 졸업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학내구성원의 인권감수성을 증진하고 양성평등 인식을 개선한다는 취지다. 2017학년도에는 오프라인 강의였다가 2018학년도부터는 블랙보드에서 온라인 강의 형태로 진행되는 중이다. 올해 인권과 성평등 교육은 ▲대학과 인권 ▲인권교육과 젠더폭력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 ▲가정폭력 예방교육 ▲성매매 예방교육 ▲마무리의 총 6개의 영상을 시청한 후 퀴즈에 응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핵심은 과연 학생들이 2시간 20분가량 되는 영상을 집중해서 시청하는가다. 온라인 강의 특성상 학생들이 영상만 틀어놓은 채로 다른 작업을 해도 제재할 방도가 없다. 스크롤 이동이나 배속재생 기능을 사용하면 학습진도율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막아두고 있지만 다중 탭을 활용해 영상 다수를 동시에 틀어놓는 ‘꼼수’가 가능한 상황이다.

퀴즈에 응시해 학습 내용을 확인받아야 교육을 온전히 이수할 수 있지만, 문제가 너무 쉬운 탓에 부실한 영상 시청을 제지하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올해 퀴즈는 ▲젠더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성폭력의 핵심적인 개념과 특성을 다룬 총 5문항이 출제됐다. 중점사항을 물을 뿐만 아니라 선지에서 단정적인 어휘를 사용해 답을 드러내다시피 해 난도가 더욱 쉽게 체감되는 실정이다. 평소 젠더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김 모(경영 19) 씨는 “강의를 전혀 보지 않고도 초·중등교육을 거치며 확립된 기본적인 상식으로 퀴즈를 쉽게 해결했다”고 전했다. 퀴즈는 만점이 이수 기준이지만, 만점을 받지 못했을 경우에도 여러 차례 재응시할 수 있게 하고 있어 교육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다.

더불어 학생들의 교육 열의가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수강 목적 및 교육 의무화에 근본적인 공감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8월 연세대에서는 학부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연세정신과 인권’ 온라인 교과목의 필수과목 지정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와 학생들이 ‘인권과 젠더(성평등) 교육’이 편향적이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반발하자 본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대에서는 ‘인권/성평등 교육(통합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지만 대학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마다 교육을 이수하도록 독려 메시지가 뜰 뿐 강제성이 없다.

본교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만들면서 교육 내용을 문의할 담당부처의 연락처를 기재하는 등 올바른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밖에도 미비점이 다수 지적된다. 예컨대 ‘성매매 예방교육’ 영상에서는 전국 남성 2명 중 1명(50.7%)이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가 인용됐다. 이 경우 편중됐다는 비판을 받는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수강생들의 반발을 샀다.

교육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시스템 차원의 보완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공통교양인 ‘정보적 사고’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올해 정보적 사고는 1~5주차 영상, 6~11주차 영상, 12~15주차 영상을 순차적으로 제공도록 개편돼 학생들의 단계별 학습을 유도했다. 성적은 출석(40%)과 퀴즈(60%)로 산출하며 오프라인 특강을 1회 참석하는 것으로 출석 점수를 부여했다. 각 주차별로 2~3문항씩 주어지는 퀴즈는 단 2회만 제출 가능도록 응시 횟수를 제한했다. 학습 내용을 응용할 수 있는 웹 프로그래밍 경진대회도 개최하는 등 실무 교육 또한 이뤄질 수 있게 했다. 이외에도 ▲일정 시간 내에 영상을 나가야 출석으로 인정하거나 ▲퀴즈를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하는 등 인권과 성평등 교육에 타 과목의 사례를 적용한 보완 방안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본교 인권센터 교육실은 “온라인으로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교육 방식의 개편은 인권센터, 성평등센터, 교무팀, 학사팀 등 많은 부서의 공조를 요하는 일이지만 지난 1년 내내 개선방안을 건의하고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내용적 측면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내용은 변화하지 않겠지만 법정 개정 내용 등을 반영하는 등 영상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권과 성평등 교육이 학생들의 참여와 공감을 끌어 내는 교육이 될 수 있을지 내년의 변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박지우·조수현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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