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있어도 말할 곳 없는 성적 처리제도

  여타 대학과 마찬가지로 본교에서도 성적 처리는 교수의 재량으로 이뤄진다. 학생이 자신의 성적에 대한 이의 사항을 제기할 시에는 학생과 교수가 상호 간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교수에게 전적으로 자율성을 주는 현행 제도 하, 일부 학생들이 불만을 호소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경영대학 박명섭 교수의 ‘경영통계’ 수업은 지난달 23일 중간고사를 치렀으나 30일 메일을 통해 전 수강생에게 재시험 사실을 공지했다. 직후 수업시간에 박 교수는 “전체적으로 성적이 너무 낮다”라며 원래의 성적을 백지화하고 동일한 문제로 재시험을 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수강생이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 불만을 제기했다. 익명을 요청한 수강생 A 씨는 “재시험은 중간고사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에게 상대적 불이익을 주는 공정성 없는 성적 평가”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수강생들의 불만이 커지자 경영대학 행정실은 메일을 통해 박 교수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달했다. 성효연 직원은 “본래 성적 처리는 온전한 교수의 재량이다. 학생들이 요구한 대로 메일을 보내기는 하겠으나 학생들의 불만 제기도 채 수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실이 이에 대해 발언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시험은 공지된 바에 따라 진행됐으나 박 교수는 불만 여론을 일부 수용해 두 개의 성적 중 더 높은 것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성적 처리는 학생에게 큰 불이익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으나 “교수의 성적 처리가 부당하다고 느껴도 호소할 곳이 없다”는 A 씨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문사회계교육지원팀의 이선아 차장은 “학칙에 별도로 규정된 사항이 아닌 이상 성적은 전부 교수의 재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성효연 직원 역시 “한 강의의 수강생 대다수가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의 문제가 생긴다면 단과대학 학장 편을 통해 교수에게 시정을 권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으로써 학생이 불만을 제기할 시 교수-학생 간 갈등을 조율할만한 장치가 제도화돼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교양물리실의 성적처리방식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불만 사항이 제기됐다. 교양물리실은 이공계열 신입생 대부분이 수강하는 ‘일반물리실험’과 ‘일반물리학 및 연습’ 과목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물리학과 산하 부처다. 위 과목의 경우 학기마다 천 명가량의 학생이 수강하는 만큼 성적 처리 권한이 교양물리실 소속 조교들에게 모두 위임돼있다.

  문제는 일부 조교들이 수강생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채점 결과를 제시하고도 이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데 있다. 감점 요인 등에 대해 질문할 경우 “교양물리실 내부 기준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B 씨(물리 14)는 “교양물리실에서 부당한 처사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봤다”며 “일반물리 과목이 1학년 때만 수강하면 되는 과목이라 불만이 있어도 대충 수긍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시험을 보는 이유가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잘 습득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라면 학생의 시험 답안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B 씨는 이에 대해 “본교의 일반물리실험 과목에서 학생들이 물리학 실험 수행 능력의 증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점이 교내·외에서 한 사람을 평가하는 객관적 지표로 널리 사용되는 만큼 성적은 학생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적 확인을 통해 강의에 대한 이해도를 가늠하고 그를 기반으로 추후의 학업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등록금을 납부한 학생의 권리이기도 하다. 앞서 제시된 사례들은 성적 처리에 있어 교수자의 자율성에 대한 견제가 어려운 현행 제도의 빈틈에서 일부 학생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교수도 강의 전반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이것이 학생의 교육권과 늘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수에게 주어진 자율성이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교수-학생 간에 성적을 두고 좁히기 어려운 의견차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적절히 조정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촉구되는 시점이다.

이재은·이서희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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