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투표권을 찾아서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 거주하는 재외국민 투표가 불가능해졌고 해당 국가 재외국민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The HOANS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무엇인지 ▲재외국민 투표에 대한 엇갈린 반응 ▲투표 결과에 대해 살펴봤다.

 

재외국민 투표 톺아보기

재외국민 투표권은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 영주권자 및 국외 체류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기존에 재외국민은 공직선거법 관련 규정에 따라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했으나 2007년 헌법재판소가 이를 ▲선거권 침해 ▲평등권 침해 ▲보통선거 원칙 위반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9년 2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며 재외선거법이 도입됐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재외국민은 국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재외선거인과 국외부재자로 나뉜다. 재외선거인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자다. 이들은 거주지 관할 공관에서 발급한 서류를 통한 선거인 등록 신청으로 투표권을 획득한다. 국외부재자는 주민등록이 돼 있는 사람 중 외국에서 투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국외부재자는 외국에서 투표함을 미리 신고해야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다.

투표는 원칙적으로 재외공관에 설치된 재외투표소에서 진행된다. 투표 기간은 선거일 전 14일부터 9일까지의 기간 중 6일 이내의 기간을 재외선거관리위원회(이하 재외선관위)가 정해 공고한다. 투표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로 고정돼 있으며 투표 시 신분증명서와 국적확인 서류를 지참해야 한다. 투표 기간이 만료된 후 재외투표는 국내로 회송돼 국내 투표 마감과 함께 관할 지역 선관위 개표소에서 개표를 진행한다. 하지만 천재지변 또는 전쟁·폭동과 같은 부득이한 사유로 재외투표가 관할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에 도착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재외선관위가 개표할 수 있다.

재외선거 도입 이후 이에 대한 재외국민의 관심은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국회의원 선거 기준 19대 선거는 56,456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20대 국선은 63,797명이 참여하며 40%를 웃도는 투표율을 보여줬다. 대통령 선거 또한 18대 대선 158,225명, 19대 대선 221,981명 투표로 7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관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외선거인 5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투표가 돼 버렸다.

 

투표권이 사라졌다

기존 결정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의원 재외선거 투표는 지난달 1일부터 6일에 171,959명의 재외선거인의 투표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일부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국민들의 투표가 불가능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코로나 19 상황의 급속한 악화로 재외선거 실시를 우려하는 주재국의 공식입장 표명이 있었거나, 주재국의 제재조치 강화로 재외국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등 정상적인 재외선거 실시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91개 재외공간의 재외선거사무를 지난달 6일까지 중단했다. 이외에도 36개 공관에서 재외투표 기간을 단축했으며 3곳의 공관은 재외투표 기간 중 선거사무가 중지됐다.

결국 투표는 전체 재외유권자 171,959명의 50%에 못 미치는 84,6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중 40,858명이 선거에 참여해 최종 투표율은 23.8%를 기록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 비해 약 20%가량 뒤처지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재외투표는 규정대로 국내로 회송됐으나 코로나19로 항공편 운항이 전면 중단된 18개 재외공관에 대해서는 공관개표가 결정됐다. 이에 대해 권순일 선관위원장은 “55개국, 91개 재외공관의 재외선거 중지 결정은 코로나 19라는 세계적 재난 속에서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일부 재외국민의 참정권 행사가 제한된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거세게 반발하는 재외국민, 대안은 없었나

선거사무 중단에 대한 법리적 근거와 무관하게 당장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교민들 사이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세계 각지의 동포 사회에서 제기된 참정권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은 곧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17개국 공관의 선거사무 추가 중단이 발표된 지난 26일에는 재외국민의 거소투표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으며, SNS상에서는 ‘재외국민 투표권 보장 릴레이 캠페인’이 활발히 진행됐다. 하지만 상황에 변화가 없자 독일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일부 교민은 1일 선관위의 재외선거사무 중단 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번 선거권 제한은 공직선거법 제218조 29항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선관위의 결정이 교민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교민들은 국내 선거와 달리 재외국민 선거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선거사무 중지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긴 시간 동안 산발적으로 투표가 진행되기에 감염 위험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 요지다. 선거사무 중단 대상이 된 국가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교민들의 원성을 샀다. 미주와 유럽 다수 국가에서 선거사무 중단이 발표된 지난 30일 확진자 수 3위에 올라있던 중국에서는 우한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투표가 가능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심화됐다.

선거사무 중단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교민들 역시 대안 투표 방식의 부재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 1년째 거주 중인 김범수 씨는 “상황이 매우 심각한 만큼 동시에 투표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며 선관위 결정에 동의한다면서도 “시간을 나눠 투표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해 볼 수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우편 투표를 비롯한 비대면 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으나, 선관위는 우편 투표나 전자 투표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관련 입법이 완료되지 않아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별다른 대안 없이 재외투표 기간이 종료되며 선거사무 업무가 중단된 40개 국가의 교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재외국민 투표 제한은 당연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한 국가에서 투표를 위해 집 밖을 나서는 것은 감염 위험을 높이는 것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른 국가의 투표 진행 자제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우며, 투표를 강행한다 하더라도 공관까지 가는 과정에서 제지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근거로 제시된다.

한편 선관위는 선거사무 중단 대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각 공관의 의사를 존중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선택이었다는 의혹을 일축했다. 선관위는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각 나라 공관별로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각 공관이 투표할 수 있는 여건인지 파악해 의견을 낸다”며 선거사무 중단 여부는 각 국가 공관의 의견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고 강조했다.

 

재외국민도 국민이다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 재외국민 투표 재원을 코로나19 극복에 사용하자는 의견도 등장했다. 이재준 경기 고양시장은 선거사무 중지가 발표되기 전인 지난달 18일 재외국민 투표에 사용되는 예산 300억 원을 위기극복수당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재외국민 투표를 정상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그 예산을 국내 경제 활성화에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재외국민도 국민이다. 국민의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에서 해당 국가에서 투표를 하지 못한 재외국민이 유일하게 투표할 수 있는 창구는 귀국투표 뿐이었으나 이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투표만을 이유로 귀국하는 것이 어렵고 코로나 19로 인해 귀국조차 어려워하는 재외국민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국을 했더라도 2주간의 격리조치로 투표권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은 헌법에 의해 투표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앞으로 코로나 19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국가는 그들의 잃어버린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조속히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황제동·장윤서 기자
hhjd20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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