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예산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내년 나라 살림을 위한 정부의 계획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달 1일 기획재정부는 2021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예산의 사용처를 따지기 전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74조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폭이었다. 총수입은 전년도 대비 0.3% 증가한 482조 원인데 비해 총지출은 8.5% 늘어난 555조 8천억 원으로 예정돼 수입액과 지출액의 격차가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과감한 투자로 극복하겠다며 ‘2021년 예산 10대 중점 프로젝트’를 내놓았으나, 포함된 사업의 효용에 대한 비판마저 제기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4대 사회안전망 확충: 46.9조

정부가 발표한 10가지의 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된 것은 4대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생계 ▲의료 ▲주거 ▲교육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복지 정책을 실행해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을 안정화하겠다는 것이 도입 취지다. 취약 계층에 대한 냉난방 기구 지원과 건강보험 급여화 항목 확대는 물론,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다는 비판을 받던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와 2·3학년을 대상으로 하던 고등학교 무상교육 전면 확대 등 복지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 정책들 역시 포함됐다.

4가지 분야 중 가장 많은 금액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21조 원이 배정된 주거 관련 사업이다. 개별 사업에서 역시 18조 9천억 원이 투입된 공적임대주택 2.1만 호 추가 공급이 예산 규모에서 1위를 차지해 내년도 예산안에서 주거 복지 확대가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거난 해소를 위해 각종 규제책과 함께 적극적 양적 완화책을 시행하겠다는 그동안의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주거 정책 외에는 정부 보조 비율 확대를 통한 건강보험가입자 지원과 저소득층을 위한 긴급 복지 등이 예산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사업이지만 여론의 반응은 갈린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기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처라는 평이 존재하는 반면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정 건전성을 희생한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는 비판 역시 제기됐다. 추경호 국민의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는 복지 예산 확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예산 증가 속도가 가팔라 실효성이 있느냐”가 문제라며 대형 지출의 장기적 영향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판 뉴딜: 21.3조

지난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 및 사회, 고용 안전망 확보를 목표로 하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 ▲안전망 강화 세 개를 축으로 분야별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이룰 계획이다. 그린뉴딜은 친환경·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를 목표로 하며, 디지털 뉴딜은 정보 통신 기술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교육·의료 등에 디지털 기반 인프라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구성돼있다. 개혁의 밑바탕이 되는 안전망 강화는 코로나19로 인한 단기 고용충격 극복 및 미래 고용시장 구조변화 대비를 위한 정책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디지털 인재 양성 등의 사업으로 구성된다.

정부가 공개한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에는 총 21.3조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뉴딜펀드에 조성된 금액 및 지방비까지 포함할 시 총 예산 규모는 32.5조 원에 달한다. 그린뉴딜에 8조 원, 디지털 뉴딜에 7.9조 원, 안전망 강화에 5.4조 원이 각각 배정됐다. 개별 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한 것은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로 5.4조 원의 예산이 배정됐으며 이 중 10대 대표 과제로 언급된 데이터 댐 구축에 2.8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형 뉴딜에 이런 대규모 예산이 편성되자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된 데이터 댐 사업이 주목받았다. 데이터 댐은 분야별 빅데이터 플랫폼을 확충하고 5G 전국망을 조성해 1,300종의 AI 학습용 데이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데이터 댐이 투자 대비 어느 정도의 가치를 창출할지는 의문이다.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는 헤럴드경제에 실린 기고문에서 “잘못된 데이터는 올바르게 활용될 수 없고 대량의 데이터를 수작업으로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데이터 자동 검수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데이터 댐을 구축하는 것은 부실 공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 인프라를 마련한다 해도, 데이터 댐 구축으로 데이터의 수집에서 활용에 이르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부 또한 한국판 뉴딜 사업을 2025년까지 지속되는 장기적 정책으로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악화로 4번째 추경까지 본회의를 통과한 지금, 한국판 뉴딜과 같은 대규모 장기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옳은 판단인지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청년 희망패키지: 20.7조

청년 희망패키지는 문재인 정부가 진행한 각종 청년 정책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총 20조 7천만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목적 아래 구성된 ‘패키지 정책’으로 2021년 예산안에 처음 도입됐다. 당정은 청년 희망패키지를 통해 ▲일자리 ▲생활 안정 ▲교육·복지의 세 가지 축을 토대로 청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세 가지 축 중 생활 안정 분야가 12조 3천억 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예산은 현재 자취 중인 20대 미혼청년의 경우 주거급여를 부모와 분리해 지급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그 뒤는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확대를 목표로 4조 5000억 원이 투입된 교육·복지 분야가 이었다. 일자리 분야에는 3조 9000억 원으로 가장 적은 예산이 배정됐다. 이외에도 청년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장병복지지원 강화가 개별적인 중점 사업으로 채택됐다. 신규 채용된 정규직 청년에게 연 900만 원 규모로 지원될 예정인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분야에도 1조 2000억 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청년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제기된 실효성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청년고용장려금의 경우 이미 실효성 논란이 수차례 불거졌음에도 재차 거액의 예산을 측정했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28일 발간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사업의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을 받은 이들의 첫 직장 근속기간은 작년 대비 1년 5.6개월에서 1년 5.3개월로 0.3개월 감소했다. 입법조사처는 사업의 취지가 신규채용 촉진에만 초점을 맞춰 장기근속의 유도에서 부실한 측면을 드러냈기에 고용유지율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청년 정책의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은 채 예산 투입에만 급급한 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재탕’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자예산, 정말 괜찮나

적자 예산을 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에 이어 두 번 연속 적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이지만,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막는’ 식의 임시방편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할 수 없다. 국가채무는 올해 본예산 대비 139조 8000억 원(17.3%) 증가해 945조로 늘어났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작년 대비 6.9% 증가해 46.7%에 달한다. 정부는 2022년에 50.9%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해 내년 성장률이 예상보다 악화될 경우 채무 비율은 예상보다 올라갈 수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국채비율이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홍남기 경재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경제위기 때 재정은 국민 경제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며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린 지금은 국민 생계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 밝혔다. 여당 의원들 역시 이번 예산안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소외 계층에게 동아줄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산업 구조 변화에 대비한 과감한 정책으로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며 정부 정책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올해 들어서만 4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내년도 큰 폭의 적자 예산을 편성하며 재정 건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주로 비교하는 OECD 주요 회원국들의 국채비율 평균 110%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채비율은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두 비율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공기업을 통해 국가 사업을 이행하고 있어 비금융공기업의 부채 비율을 고려해야 하고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앞으로의 재정 지출 부담이 크며 ▲대외 신임도에 민감한 *비기축통화국인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국가채무비율이 급증하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이라 바라보기 힘들다.

 

과감한 투자? 위험한 도박?

기재부는 예산안 발표와 함께 배부한 홍보자료를 통해 “확장적 재정 기조하에서 전략적 자원배분을 하겠다”고 밝혔다. 문 정부가 임기 초부터 내세웠던 정책 기조를 충실히 이행한 만큼 이번 예산안의 성패는 정부의 경제 정책 자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예산안이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곤두박질친 경제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내년도 나라 살림에 대한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장윤서·김원겸·김준범·황제동 기자

yunseo05@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