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윤석열 정부 출범에 부쳐 – 다시, 정치의 시간으로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시작됐다. 정권교체 10년 주기론을 깬 ‘첫 번째 대통령’이자 87년 개헌 이후 사상 첫 ‘0선 대통령’인 윤 대통령은 5년 만에 바뀐 여야구도 속에서 헌정사상 가장 일방적인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임무를 짊어졌다. 소수 여당에겐 정치적 지혜를 절실히 쥐어 짜내야 할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쩌면 지금은 협치와 대화의 정치를 배울 ‘집단학습’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치였다. 패스트트랙과 조국 사태로 얼어붙었던 2019년의 정국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법안의 합리성에 대한 충분한 논박 없이 제1야당을 의안 논의에서 배제하고, 반대하는 법사위 위원을 강제 교체해가며 ‘게임의 룰’ 개정을 추진한 것은 분명한 반정치적 절차다. 특히 “국민은 알 필요 없다”라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은 개방성과 직관성이라는 민주주의 정치 원리가 당시 얼마나 경시됐는지를 드러냈다. 야당 또한 제대로 된 정치의 방법을 시도하기는 커녕 장외투쟁과 물리력을 이용한 의사 진행 방해를 통해 대립의 반정치를 부추기며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는 행보를 보였다.

조국 사태 때도 찢긴 민심을 치유해야 할 정치는 제 역할을 하기보다 상호 비방과 가짜뉴스 공세로 분열을 심화했다. 정치의 장은 파당적 세몰이로 가득찬 광장으로 이전됐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는 없었고 선전과 일방통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근래 한창 뜨거웠던 검수완박 정국에서도 ‘정치’는 없었다. ‘위장 탈당’과 ‘합의 파기’, ‘회기 쪼개기’와 같은 ‘정치질’만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도 이번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새 정부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소야대에 의해 매끄러운 국정 운영이 난망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권을 이용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을 위험이 크다. 벌써 인사와 관련된 잡음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일부 장관급 인사 임명을 대통령 권한으로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행’과 ‘독주’로 점철된 전 정권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꾸준히 스스로 경계하길 바란다.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를 명분으로 청와대를 개방한 만큼, 대통령과 행정부의 막강한 권한과 조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제도적 개혁을 통한 정치 선진화를 향해 큰 한 걸음을 내딛길 바란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정치의 시간에서,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정치는 ‘안정과 정의’의 확보를 통해 개인의 불안감을 보살펴야 한다.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소요가 이어지고, 소요는 급진적 체제변동으로 이어진다. 정치의 숙명 중 한 가지는 바로 그 전복을 막는 것이다. 급진적 변동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담론의 기능을 차단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상황 개선과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근래 비싼 차를 끌고 비싼 유흥업소에서 비싼 술을 마시는,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모를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엘리트 계층의 입시부정을 통한 부의 세습이 드러나는 와중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청춘들이 늘고 있다. 두 계층 간 간격이 넓어질수록, 성공이 멀어지고 희망이 희미해질수록 사회분열과 담론장의 와해, 그리고 급진의 위험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회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늘어나는 소득불균형과 줄어드는 일자리, 죽어가는 경제와 그 속에서 사라지는 희망. 불안은 안정과 공정의 상실에서 온다. 다시 찾아온 ‘정치의 시간’을, 윤석열 정부가 최대한 지혜롭게 활용하길 바란다.

 

도기유 기자
kiyoowu81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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