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이번만은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길

공적 마스크 판매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달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려던 중 오직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편의점에서 현금결제 요구라니,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확인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현금이 없다고 하자 “정말 없어요?”라는 재확인, 그리고 뒤이은 “그럼 어쩔 수 없죠. 카드로 그냥 결제해드릴게요”라는 점주의 말. 그렇게 나는 점주님의 넓은 아량 덕분에 KF94 마스크를 4,000원이라는 가격에 ‘카드로’ 결제할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다행히도 매우 작은 촌극일 뿐이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거대한 규모의 ‘비상식’을 경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외로 밀반출하려던 마스크 83만여 장이 적발됐다는 소식부터 수만 장의 마스크를 창고에 쌓아놨다가 폭리를 취한 유통업자의 소식, “마스크 싸게 드린다”는 문구를 내세운 스미싱이 기승이라는 소식까지. 그다지 놀라운 소식은 아니다. 불법적인 해외 밀반출과 사재기, 스미싱 모두 평소에도 횡행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러한 행각은 그야말로 ‘비상식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타인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그들에게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소시오패스’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보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더욱 악한 사람들이 있다. 방역 당국의 업무를 고의로 방해하는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확진자 자신의 동선이나 접촉자를 축소하거나 거짓으로 진술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신천지 소속 교인으로 밝혀진 확진자들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구 지역에 방문한 적이 없다던 확진자의 진술이 휴대전화 GPS 조회 결과 거짓으로 밝혀지는 한편, 지역 내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총괄하던 보건소 담당자가 신천지 신자임을 숨기고 업무를 진행하다가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자 각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행정 조치에 나섰으며 여론 또한 신천지에 연일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신천지 측은 이에 대해 “우리는 바이러스를 만들지 않았다”며 “이단 프레임을 거두고 탄압을 중단해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내게 신천지의 이단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으며 이만희 회장이 누구인지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작금의 사태를 이유로 신천지 교인 전체를 범죄자로 비난할 생각도 없다. 대다수의 국민이 이 점에 있어 나와 큰 견해 차이를 보이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론의 화살이 그들에게 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거짓말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원인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자신이 신자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동선을 속였으며 지도부는 교인 명단을 당국에 제때 온전하게 넘겨주지 않았다. 우리의 비난은 이러한 ‘사실’과 그 ‘주체’를 향한 것이지 ‘종교’를 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종교 탄압’을 내세우며 결백을 주장하는 그들의 행보가 내 눈에는 ‘비상식적’으로 비추어질 뿐이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시되며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약자의 권리는 철저히 짓밟힌다. 자본과 권력이 얽히고설켜 형성된 이 세상을 당장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비상식’을 해결하는 것은 그 난도가 훨씬 낮다. 확진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방역 당국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 이것이 전부다. 쉽지 않은가? 수많은 생명과 건강이 달린 상황에서 ‘비상식’ 대신 ‘상식’을 좇는 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박찬웅 기자

pcw040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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