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인간적 과제

“손발로 노동을 하는 것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한 대선주자가 한 말이다. 지난 7월엔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50대 여성이 갑질에 시달리다 자살했고, 지난달 9일엔 지하철역 환풍구에서 작업하던 20대 남성이 추락해 사망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노동자 사고 기사가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모든 노동자는 타인에 의해서든, 우연히든 항상 사고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는 업계와 시기를 막론하고 나온다.

민주노총은 이번 달 20일 약 110만 명의 조합원 전체 참여를 목표로 대규모 총파업을 계획 중인데, 산하 조직들도 연이어 합류하는 추세여서 총파업의 규모가 얼마나 확장될지 알 수 없다. 또, 코로나19로 업무 부담이 가중되자 제기된 간호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고대의료원을 포함한 간호사들은 개별 파업을 진행 중이며 이외에도 사회 곳곳에서 파업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틈 타 파업을 악용하는 자들도 있다. 지난달 14일, 김포에서 택배 대리점주였던 한 가장은 택배노조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노조 소속 기사들이 대리점주를 협박, 업무 방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싸울 이유가 있었다며 당당하다. 가장이 죽었고 피를 토하듯 적은 유서에 본인들의 이름이 있음에도 이들은 노동을 말한다. 이외에도 노조 간 경쟁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거나 거리두기 정책을 위반하며 시위하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유발하는 등 사람 중심 노조라는 단어도 이젠 무색하기만 하다.

파업은 갈수록 잦아지나 노동 문제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행위다.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없는 사회는 올바른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룩하기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실업 해결과 경제 회복을 위한 공약을 내놓는다. 하지만, 노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났으나 달라진 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최근에는 주인과 종업원의 갈등이 칼싸움으로 이어져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언제쯤이면 사그라들 수 있을까.

이젠 우리의 상식을 바꿔야 한다. 노동 문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갈등을 넘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의 책임을 놓고 다투는 소모적인 논쟁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과외와 알바를 하는 우리도 피고용인인데 언제까지 노동 문제를 남들의 이야기로만 대우할 것인가. 사회 전반에서 양극화는 극심해졌고 노동의 가치는 몰락한 지 오래됐다. 부동산 상승과 낮은 취업률로 대학은 취업학원이 됐고, 평생 돈을 벌어도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공정, 평등, 정의’의 이슈가 사회를 전환하는 과도기에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 ‘노동’이 있다. 지난 6년간 산재 사망자는 1만 2천여 명에 달했으나, 실형 선고는 29명뿐이었다는 사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에 ‘정경유착’이라는 키워드가 붙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유리천장·저출산 등을 아우르는 젠더 갈등이 폭발하는 이 시대가 ‘노동’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현재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고용주나 피고용인의 한 편에 서서 상대를 짓밟는 인간 실격이 아닌, 중립적 위치에서 타협과 조정을 이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단순한 임금 인상과 근무 시간 단축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기업과 노동자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갈등 해결로 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우리는 피고용인으로서, 앞으로 사회를 이끌 젊은이로서, 인간으로서 이를 해결해야 할 당위적 의무이자 신념인 인간적 과제를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손성진 기자
decison1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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