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장소와의 독대

만나는 사람과 마주하는 장소가 변화하는 새 출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중에 누적되는 피로는 응당 안락한 장소로 해소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특히 자신이 있는 곳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피로감은 가중된다. 어느샌가 원인 모를 이유로 지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의탁할 수 없는 사람들과 장소가 우리의 시작을 두렵게 만든다. 사교를 통한 소속감에서 돌파구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장소의 익숙함을 필히 찾아야 한다.

초면인 사람을 면밀히 알기 위해 으레 독대가 필요한 것처럼 새로운 장소를 마주할 때도 일대일 만남이 중요하다. 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2년여 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서울은 낯선 공간이었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변화한 생활반경은 설렘을 주는 동시에 공간으로부터 오는 안정감을 앗아갔다. 생경함은 반복을 통해 흐려진다고 믿으며 서울 곳곳을 소수의 친구와 누볐다. 하지만 피로가 누적될 뿐 익숙함을 쉬이 느끼지 못했다. 지난 겨울방학, 주어진 여유 시간을 내가 서 있는 장소와 친해지는 데 썼다. 본가의 친숙함을 그리워만 하기보다 내가 현재 있는 이곳에 스며들기로 했다.

서울의 여러 장소를 홀로 방문했다. 대부분 야외였고 마스크 너머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든 장소는 한강이다. 강을 따라 마포대교부터 한남대교까지 따릉이를 타며 서울을 관찰했다.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장소에 몰입했다. 마천루에 비치는 석양이나 적당히 스치는 바람 그리고 유구한 세월 동안 흐르는 물과 나누는 적막한 소통도 나름 할 만했다. 잠수교를 건널 때는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조차 반갑게 느껴졌다. 데면데면한 사이로 남을 것 같았던 이 장소가 조금은 그리워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생소한 장소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대를 통해 알아가는 것 혹은 어떤 인상을 받는 것이 그 방법이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특정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장소와 독대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다. 처음에는 혼자 어느 곳을 방문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지만 한번 해내고 나면 장소가 나를 압도하는 일이 적어진다. 새 학기,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대면하는 이들에게 장소와의 독대를 추천한다.

비선형적이고 복잡하며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장을 넘기는 이 시기에 자신이 느끼는 피로감을 여유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기 위해 무작정 바쁜 생활을 택하기보다 왜 자신이 피로하고 또 불안한지 잠잠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대학 진학으로 바뀐 환경에서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을 의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작년의 나를 돌아봐도 들뜬 마음과 함께 찾아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렸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가변적이어서 안정감을 찾기 어렵다. 자신이 무엇을 낯설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대상과 독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달라진 생활의 토대가 되는 장소가 익숙지 않다면 홀로 그 장소를 온전히 향유해보자.

진정한 ‘적응’을 위해서는 보편적인 접근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나에게 맞는 개별적인 방법을 찾아야 낯설고 불안한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정착할 수 있다. 글에서는 홀로 자전거를 타며 낯선 공간을 배회하기를 예시로 들었지만 장소와의 독대는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든지 실현될 수 있다. 새로움에 대한 불안과 절망을 떨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장소와의 독대를 선택해보자. 또 다른 다음 장이 펼쳐져도 단독자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채윤 기자

dlcodbs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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