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살아가는 법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필자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을 되짚어 봤다. 바로 ‘모든 것의 기준은 상대적이다’라는 생각이다. 객관적 사실 또는 증명된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은 단지 믿음에 불과하고, 모든 것에 정해진 답은 없으며 정해진 답이라 믿었던 것은 그저 우리가 합의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학을 공부하며 ‘경제적 가치가 최선의 가치일까’라는 회의를 느꼈고 이로부터 시작된 사회 구조를 향한 관심은 필자로 하여금 이중 전공으로 사회학을 선택하게 했다. 사회학을 공부한다면 사회에서 무엇이 최선의 가치로 여겨져야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 보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식이 각기 달랐던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우리나라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거나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대규모 확진을 막고자 했다. 어딜 가나 마스크 착용이 필수로 여겨졌고,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작성하는 등 신원에 대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몇몇 국가에서는 아예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엄격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마스크 등 최소한의 방역 조치를 거부하며 국가가 본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코로나19 초기에는 우리나라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서양의 그것에 대해선 과도하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으며 아예 봉쇄해버리는 방법은 현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과도한 탄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략 3년이 지나 생각한 지금은 확진자 동선 공개와 국민 통제가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처럼 ‘무엇이 옳은가’에 관한 물음은 비단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드는 고민이다. 친구와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친한 친구 사이에서 용인되는 행동의 기준’과 필자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사안에 대해 공통된 합의점이 존재한 채로 개인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생각하는 관점과 기준 자체가 달랐기에 합의점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하나의 확정적인 진실이 중요하지 않아진 시대를 일컬어 ‘포스트 트루스 시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정답 ▲옳은 가치 ▲합의된 공공선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개인마다 ▲다른 답 ▲여러 가치 ▲다양한 기준점이 존재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또한 이 시대에서는 진실을 벗어나는 무언가도 윤리적으로 잘못이 아니게 된다. 사실과 의견의 기준과 경계가 흐릿해진 사회 속에서 필자, 그리고 사회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점점 혼란해진다.

우리가 이 혼란스러운 사회를 이겨낼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필자는 모 사회학과 교수의 강연을 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강연 속에서, 그는 정상 가족이라는 기준은 이미 다양한 가족 형태가 범람하는 현실에 적절하지 않으나, 이러한 규범에 의해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동거 가구 등이 ‘문제’이자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현실을 판단하는 규범과 기준은 과거의 것에 그대로 남아있기에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 등에서 소외되고 ▲사회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불안해진다고 설명했다. 강연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모두 제도 내로 들여와야 우리가 이러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고 이에 벗어나는 다른 형태를 문제 삼는 방식이 아니라 가족의 개념과 기준 자체를 확대하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는 여타 다른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준이 주변에 혼재할 때, 이를 두고 혼란해 하기보단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해의 가능성을 넓혀보는 건 어떨까.

 

이민지 기자
ymj020110a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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