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직필 : 저항 언론의 대두

언론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시대상이다.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진실을 접해도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든 탓이다. 이런 와중에도 정론직필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이 있다.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고 저항 언론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을 정리해봤다.

 

오늘날 언론은 정의를 점차 잃어가는 듯 보인다. 권력과 유착이 만연하고 거짓 정보가 넘쳐나며 그저 강자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언론을 강압 통제하는 국가가 여전히 적지 않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다 하더라도 거대 자본의 영향으로 소신 있는 취재 활동은 어려워졌다. 더 이상 언론 중립성과 공정성을 낙관할 수 없게 된 오늘날, 외부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발로 뛰는 기자들이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저항 언론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폭력에 의한 진실 은폐가 전투지역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빈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부차 시내에 진입한 우크라군이 거리에 널린 민간인 시신을 발견하면서 러시아군의 의도적인 학살이 의심됐다. 여기에 더해 사지를 묶고 소각하다 만 시체와 검은 비닐백을 활용한 대규모 암매장 현장이 포착되는 등 조직적 은폐 정황도 함께 관측돼 세간의 분노를 자아냈다.

진실 은폐와 언론 통제를 반복하는 러시아 당국에 맞서 보도 활동을 해 온 대표 독립 언론에는 ‘노바야 가제타(Novaya Gazeta)’가 있다. 소련 시기 개혁·개방 바람과 함께 태동한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의 양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푸틴 등 정계 인사 비리와 정적에 대한 암살, 그리고 체첸 전쟁과 돈바스 전쟁처럼 위험한 사안을 가리지 않고 취재하는 탐사보도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기자를 직접 파견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용어 대신 ‘푸틴의 전쟁’(Putin’s war)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반정부, 반전 기조를 피력했다.

중국 정부의 여론 통제에 반기를 들었던 빈과일보도 주요한 저항 언론이다. 빈과일보는 1995년 홍콩에서 창간한 신문으로 2003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에 강력 반발해 화제가 됐다. 해당 사측의 보도로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50만여 명이 운집해 법안 통과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빈과일보는 2014년 홍콩 직선제를 위한 일명 ‘우산 시위’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홍콩 민주파를 대변하는 언론 활동을 하면서 친중파 정치세력과 중국 본토의 스캔들을 적극 보도하는 활동을 지속했다.

저항 언론의 활동은 독재 정권 치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5년 세계 명사들의 조세 피난처 악용 및 세금 탈루 의혹을 다룬 일명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지난 10월 훨씬 방대한 규모의 ‘판도라 페이퍼스’를 공개했다. 이번 문건에는 체코의 바비시 총리 등 세계 전·현직 국가수반 35명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 336명과 포브스 등지에서 억만장자로 선정됐던 인물 130여 명이 포함돼 각국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SM 이수만 회장 등이 문건에 포함돼 세인의 시선을 끌었다. ICIJ는 이외에도 여타 언론사와 협력해 1년에 2~3차례 국제 취재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나 탈세·부정부패 등을 집중 보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이 나서는 이유는

 

이처럼 저항 언론이 활약하게 된 배경에는 진실을 전하기 어려운 환경이 깔려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전을 특수 군사작전이 아닌 침공이나 전쟁 등으로 표현해 보도한다면 해당 언론사를 징계하거나 폐쇄할 것”이라 경고하며 우크라전에 대한 여론 통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체첸 전쟁 ▲조지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정부 당국의 고질적인 언론 탄압 수법으로 평가된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21년까지 러시아에서 살해된 언론인은 58명에 달한다.

체첸 전쟁 당시 전장을 수없이 오가며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는 2006년 자택에서 괴한 총격으로 피살당했다. 이어 많은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들이 암살 혹은 테러를 당해 러시아 정부의 언론 탄압에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러시아 정부의 언론 탄압은 기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현재도 이러한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10여 곳의 언론사가 소송전에 연루됐으며 반전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는 경찰에 체포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 및 홍콩 당국의 언론 통제도 심각하다. 홍콩 보안법 통과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 주요 언론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여론 통제에 나섰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홍콩 최대 방송인 펑황 TV를 인수한 그룹이 중국 정부가 강하게 통제하는 즈징원화 그룹인 것으로 확인됐고 이외에도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 언론사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되는 일이 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중국 정부는 반중 성향 여론에 재갈을 물릴 것으로 보인다.

 

밝지만은 않은 미래

 

그러나 이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28일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작전이 중단될 때까지 발간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공개된 성명문 속 입장인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말이 시사하듯 러시아 당국의 언론 폐쇄 조치 및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일 러시아 의회는 군 관련 허위보도 시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명문화된 허위보도 기준이 없어 사실상 언론 탄압 조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 법안의 여파로 영국 공영 방송사 BBC도 러시아 내 활동을 중단하는 등 객관적인 언론 보도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국의 언론 탄압도 종지부를 찍고 있다. 홍콩 빈과일보는 지난 6월 마지막 호를 발간한 데 이어 지난 12월 홍콩 법원에 의해 청산절차 개시를 명령받았다. 창립자 지미 라이 는 톈안먼 사건 희생자 추모를 독려한 혐의로 징역 13개월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빈과일보와 비슷한 논조로 반정부 보도를 이어왔던 입장신문도 작년 12월 전·현직 임직원이 줄줄이 연행되고 회사 자산이 동결돼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홍콩 기자협회는 “정부는 기본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해 불만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도 중국 정부를 상대로 비판에 나섰으나 ‘국가보안법’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비윤리적인 탄압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CIJ가 폭로한 판도라 페이퍼스도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5년 전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 당시 세계 각국에서 150건의 조사가 이뤄졌으나 처벌받은 고위 인사는 적었다. 이번에도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혐의를 받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고 조세회피의 교묘함으로 불법성 입증이 곤란한 탓이다. 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스위스 비밀계좌 개설 의혹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며 수사가 마무리됐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문에서 국제 공조수사 미협조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이 법무부나 외교부를 통해 정식 공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수사 진행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진실에 드리운 어둠을 벗기려면

 

이렇듯 세계 저항 언론의 행보에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진실을 입 밖에 내더라도 강제력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국가나 사회를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당장 신문 발간을 중단한 노바야 가제타와 홍콩 민주파 언론의 부활에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취재에 흘린 땀이 무력하게 이들에게 엄습한 현실은 굉장히 냉혹해 보인다.

펜대를 잡고 소신을 꺾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독자다. 기자가 말하는 진실은 신문을 읽는 독자를 만날 때에만 사회 변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두의 관심이 모여 진실이 다시 당당히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가 각국에 정착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과연 저항 언론이 오늘날의 위기를 이겨내고 지속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승원·신재용·유민제·정윤희 기자
20201500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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