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의 밀당, 암호화폐의 미래는

지난 7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서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따라 내년 10월부터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이에 세간에서는 시행속도나 실효성에 대한 지적 등으로 연일 논쟁 중이다. 특히 4월부터 이어진 암호화폐 가격상승으로 2017년의 호황까지 점쳤던 업계의 시름이 크다. 각종 우려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The HOANS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 대책의 역사를 돌아봤다.

 

가상자산 또는 암호화폐, 너의 정체는

지난 7월 22일 기재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에서 과세형평 제고를 목적으로 한 소득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 비과세 대상인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20%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지난 3월 본회의를 통과한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 개정안에서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를 마련하는 등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한 데 이은 두 번째 가상자산 법제화다.

정부는 가상자산과 암호화폐를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두 용어가 각각 지시하는 대상은 다르다. 특금법상 가상자산은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 가능한 경제적 증표를 의미해 물리적 실체가 있는 자산과 구별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반면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한 화폐를 뜻하는 용어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형 시스템이 핵심이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통화의 거래 명세를 기록한 장부가 공개되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 기술이다. 장부 책임자 없이 새로운 금융거래가 발생하면 그 내용을 모든 거래 참여자에게 알리므로 데이터 위·변조를 거의 차단할 수 있다.

2009년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 개발 이후 ▲낮은 거래 수수료 ▲높은 거래 투명성 및 안정성 ▲높은 접근성 등으로 인기를 끌며 성장한 암호화폐의 기세에 각국 정부에서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암호화폐를 ‘가상통화’로 규정해 공적인 결제수단으로 인정했고, 독일·미국·스위스·영국 등은 제각기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소득세를 부과한다. 2017년 민간 암호화폐 거래 및 유통을 금지한 중국에서도 지난 5월 비트코인을 법적 보호대상인 재산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폭주하는 시장에 급제동 걸다

국내에 암호화폐 규제 논쟁이 인 것은 세계에 비트코인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천 달러 아래에 머물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7년 초 수천 달러로 오르더니 급격히 치솟아 당해 12월 2만 달러에 육박했고, 또 다른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가격은 당해 6월 연초보다 3천 퍼센트 증가했다. 두 암호화폐의 성장으로 국내에도 암호화폐 투기 광풍이 불었다. 별다른 규정과 규제 없이 거래가 자유로운 국내 시장에 큰 이득을 노린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다. 17년 하반기 원화가 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차지한 비중은 엔화, 달러화에 이어 3위에 이를 정도였다.

사태가 과열되자 무대응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금융당국서 과열을 진정시킬 대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2017년 9월 주식이 아닌 암호화폐 판매로 자금을 조달하는 ‘암호화폐공개(ICO)’를 전면금지하고 12월 6일 국내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금지하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ICO가 블록체인 사업서 선호되며 암호화폐 발행량이 급증했고, 12월 10일부터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가능해짐에 따라 투기 열풍이 심화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비트코인 거래를 금융거래로 보지 않는다”며 암호화폐 거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정부는 이어서 국무조정실 주관하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13일과 28일 각각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과 가상통화 투기 근절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홍남기 당시 국무조정실장은 “비정상적 투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투기 근절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대책에 따라 다음 해인 2018년 1월부터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행돼 가상계좌 이용이 불가하고 거래자는 기존 은행 계좌에서만 거래소의 동일은행 계좌로 입출금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 과세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암호화폐 열풍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고, 이를 정식 화폐 인정으로 해석하는 의견까지 시장에 힘을 보탰다. 그달 해외 비트코인 가격은 1만 9천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에 이르렀고 국내 거래 가격은 약 2600만 원에 치달았다.
상황은 2월부터 반전돼 2018년 연말 암호화폐 열풍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신규 투자를 제약한 거래 실명제 시행과 당해 7월 발표된 2018년 세법개정안의 영향이 컸다. 개정안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세액감면 대상에서 제외돼 이전까지 누렸던 법인세 최대 50% 감면 혜택을 박탈당했다. 정부의 전면적인 통제로 수요가 줄어들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다. 암호화폐 열풍의 핵심이던 한국 시장의 추락과 세계적인 규제 추세가 겹치며 가격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18년 말일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1년 전보다 77%가량 떨어진 약 4천 달러에 머무르며 암호화폐 시장의 거품이 빠졌음을 알렸다.

 

법제화 첫출발에 갈리는 시선

2017년부터 논의된 특금법 개정은 지난 3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현실화됐다. 이어서 지난 7월 발표된 세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 10월부터 가상자산 거래소득에 과세가 이뤄진다. 2017년과 2018년 각종 대책을 발표했으나 정부는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암호화폐 거래에 부정적 태도를 견지했고, 여론이 계속해서 요구한 암호화폐 과세에도 “많은 부분이 스터디 단계”라며 방안을 내놓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작년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권고안을 내놓자 금융위에서 이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하며 암호화폐 규제를 명문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다음 해 2월 예정된 FATF 상호평가 결과가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금법 개정안에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의무가 명시돼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금융정보분석원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신고를 수리하고, 신고 없이 영업한 경우 법적인 처벌이 이뤄지는 만큼 사실상의 허가제라는 의견이 다수다. 세법 개정안의 경우 가상자산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한다. 부동산 등의 거래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부과하는 세금인 양도소득세 적용 요구도 많았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개인별 거래 내역을 열람 및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암호화폐에 적용하는 데 장벽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일대 관심사이던 법률 개정이나 내용을 둘러싸고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 및 안정화라는 의견과 업계를 존중하지 않은 의무 부과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개정안을 반기는 측은 거래소에 신고의무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여해 거래소 난립과 자금세탁을 방지한 만큼 산업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성아 한국블록체인협회 거래소 운영위원장은 “블록체인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한 동시에 거래소 측에서 규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비판의 요지는 가상자산을 여전히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의무만 부과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을 상금이나 복권당첨금과 같이 일시적·불규칙적으로 발생한 소득을 통칭하는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거래 수단으로 완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식 등 타 금융상품과 비교할 때 과세 규정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세법 개정에 따라 금융투자소득세는 5천만 원까지 공제하는 반면 가상자산 거래 소득은 250만 원의 초과분에 대해 과세가 이뤄지고, 개정안 적용 시기 또한 가상자산이 금융투자소득보다 2년 앞선 내년 10월이다. 이에 업계 측은 거래 내역 신고 등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촉박한 기간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안정과 위축일까, 앞으로의 전망

겨우 첫발을 뗀 법제화임에도 정부와 가상자산 시장은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선 3년 전부터 거래 규제책을 마련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이 규제 공백으로 혼란하던 국내 시장에 필요한 수순이었음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 코로나19로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며 암호화폐 가격이 다시 상승했으나 곧 등락을 반복하며 하반기 전망에 대한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정부의 첫 가상자산 법제화 절차 마무리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시점이다.

 

*장래 일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약정하는 거래 (시사경제용어사전 참고).

 

 

김윤진·김동현·김준범 기자

kimblos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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