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중심이 된 숙원 사업, 공수처

지난달 18일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 추천을 마치지 못한 채 해산했다. 여야는 23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열린 4차 추천위 회의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며 후보 추천을 둘러싸고 여전히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공수처의 설립 배경과 구성, 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의 행보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힘이 여당의 최후통첩 시한을 하루 앞두고 구성에 협력하기로 결정하며 지난달 30일 추천위가 공식 출범했다. 추천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당연직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구성에 포함됐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천한 2명이 위원으로 임명돼 추천위가 최종 출범했고, 위원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최종 후보를 의결할 예정이었다. 추천위는 후보 4명을 일차적으로 추려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야당과 여당 위원 사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최종 후보 선출에 실패했다. 18일 회의가 최종 후보 선출의 분수령이었으나 국민의힘 측 후보 추천위원 2명이 최종 후보 2인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며 후보 선출이 무산됐다. 지난 7월 15일을 출범 법정기한으로 삼은 공수처였으나 여야가 공수처장 최종 후보를 비롯한 세부 조항을 두고 갈등을 겪으며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칼잡이 잡는 칼잡이, 공수처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줄임말로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재직 중 본인과 가족의 ▲직무유기 ▲뇌물수수 ▲정치자금 부정수수 ▲정치 관여 등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설치된 독립 수사 기구다. 다만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는 수사처검사에 의한 기소권을 가진다. 공수처는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 청원과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추진 검토 발언을 계기로 국회의 중심 의제가 됐다. 당시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고위공직자, 특히 검사의 제 식구 감싸기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했다. 특히 2016년 진경준 전 검사장의 비리 사건, 검찰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탈세 등이 연이어 발생하며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공수처 설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 기조였던 검찰 개혁의 일환이자 주요 정책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두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으로써 공수처 설치는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 됐다. 20대 국회에서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탄핵 이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은 숙원 사업인 공수처 설치를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하는 등 강력한 법안 처리 및 시행 의지를 보였다.

 

구체적인 모습 드러낸 공수처

 

공수처는 별도의 독립 기구로서 지위를 가지며 수사권에 영장청구권, 재정신청권까지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대통령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등 총 17종의 고위공직자가 재직 중에 범한 죄가 공수처의 수사·기소 대상이며, 그 직에서 퇴직한 이의 범죄까지 대상에 포함한다. 고위공직자로 재직한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속해 가족 관련 범죄도 공수처가 담당하게 된다.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의 기소는 서울중앙지검이, 기소한 사건에 대한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이 담당한다. 공수처에 소속된 검사의 범죄는 검찰이 수사해 중립성을 유지한다.

최종안 내용의 대부분은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흡사하다. 일각의 요구를 반영해 공수처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는 조항이 최종안에 추가됐다. 먼저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이 공수처의 직무 수행에 관여하는 것을 일체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해 공수처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동시에 공수처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조항들이 신설됐다. 기존 백혜련 의원안에서는 수사 기관 간 중복수사 문제에 따른 다툼을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검경이 공수처와 중복되는 고위공직자 수사를 할 경우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는 내용만이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최종안에서 다른 수사 기관이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공수처, 또 다른 괴물 될까?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독립 수사 기구 설치로 척결한다는 공수처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또 하나의 ‘괴물’ 수사기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수처 설치 법안은 대통령과 비서실 공무원의 공수처 업무에 대한 어떤 개입도 금지한다. 그러나 야당은 법이 정한 공수처장의 권한이 막강해 공수처장의 성향에 따라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의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공수처법에서는 공수처장이 정파성을 띠게 되면 그건 곧 상대편에 대한 사찰기구로 변화할 수 있다”며 공수처장에 주어진 강력한 권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공수처가 수사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 일부 대상에 기소권을 가지게 된 것도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형법 제246조는 기소권을 검사가 독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수처법에 따르면 이 기소권을 검사가 아닌 ‘수사처’ 검사가 수행할 수 있다. 파견검사 제도를 통해 기소독점주의 문제를 우회하는 것을 넘어 공수처 자체에서 추천하고 임명하는 수사처검사라는 새로운 기소권 주체가 등장한 셈이다. 공수처를 지지하는 측은 기소독점주의가 헌법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단지 형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검사 범죄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수사처검사의 도입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소권 주체의 섣부른 등장은 기존 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안 심사 당시에도 수사처검사의 기소 권한에 관한 지적이 있었고 그 대안으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수정안이 떠올랐다. 수정안에서 공수처는 기소권이 아닌 수사권만을 가지며, 검찰이 기소권을 부여받아 공수처의 수사 권한을 견제할 수 있다. 검찰이 불기소처분할 경우 국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기소의 합당성을 심사받게 했다. 하지만 최종안에서 권은희 의원이 제시한 방안이 반영되지 않으며 기소권을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비판이 커졌다.
마지막으로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공수처장의 판단 아래 필요 시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하던 고위공직자 범죄를 강제로 공수처로 이첩시켜 수사할 수도 있다. 야권과 공수처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경우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공수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수사 기관 사이의 균형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후보 선출에 가로막힌 공수처의 미래

 

더불어민주당은 추천위의 행보와 별개로 공수처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추천위 의결 정족수가 현행 ‘추천위원 7명 중 6명’에서 ‘7명 중 5명’으로 변경돼, 야당 추천위원 2명의 찬성이 없더라도 후보 선출이 가능해져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이 무력화된다. 이에 패스트트랙에 함께했던 정의당 김종철 대표까지 지난달 27일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며 “두 가지가 담보되지 않으면 정부와 여당이 사실상 지명권을 가진 공수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여당의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보이콧을 선언했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수를 바탕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지난 8일 여당과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공수처법 개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9일 밤 9시 국민의힘이 개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으나 정기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3시간 만에 마무리됐고, 이튿날 새로 소집된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은 찬성 187명으로 가결됐다. 공수처법 처리의 전 과정이 합의 없는 극한 갈등에서 치러진 가운데 공수처가 후보 선출을 둔 소모적 갈등을 매듭짓고 무사히 출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준범·신형목 기자
fred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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