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학살자’의 손자, 광주의 품에 안기다

무엇이 그의 입을 열게 했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이하 전 씨)가 지난달 14일부터 본인 SNS를 통해 전두환 일가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나섰다. 전 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폭동이었고, 우린 피해자’라고 교육받았다고 밝혔다. 전 씨는 가정부나 경호원 등 지인의 명의로 세탁한 ‘검은돈’으로 일군 호화스러운 생활을 폭로하기도 했다.

폭로를 결심한 계기는 전 씨 자신이 밝히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은 죽을 때까지 법을 피해서 처벌받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 씨는 본인이 마약 및 성범죄자라고 자백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 씨는 지난달 17일 유튜브 방송 중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투약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일주일 뒤 그는 아무리 자신이 폭로해도 전씨 일가는 이미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어 어떠한 타격도 받지 않을 것이며 본인 또한 죄인이기에 같은 죄인을 폭로할 권리가 없다며 더 이상의 폭로는 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인 자는 웃고 있다

 

전두환 씨는 1979년 정계가 혼란한 틈을 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다음 해 5월 비상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광주시민을 5월 18일 무력 진압했다. 시민들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62명이며 이들 중 총상은 124명에 달한다.

1994년 시민단체가 전두환 씨 등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는 사법부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며 불기소처분했다. 이후 헌법소원 청구로 처벌 가능 여부가 뒤집히자 1997년 고등법원은 전두환 씨에 ▲12.12 군사반란 ▲5.18 광주 학살 ▲비자금 조성 ▲뇌물수수 등의 죄로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을 선고했다.

그러나 전씨 일가는 사과도, 추징금 납부도 하지 않고 버텼다. 이에 2013년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고 검찰이 전씨 일가를 압수 수색하자 장남 전재국 씨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미납 추징금 1,652억 원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검찰이 환수한 금액은 전체 추징금의 57%에 불과한 1,248억 원이며 그중 자진 납부한 금액은 3백만 원에 불과하다.

최근 전 씨의 폭로에도 나머지 추징금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추징’은 전두환 씨에게 내려진 형벌이며 그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2020년 6월에는 전두환 씨의 재산을 상속받은 가족에게 추징금을 받아내는 ‘전두환 3법’이 발의됐으나 끝내 계류됐다.

 

5·18 희생자 앞에 무릎 꿇은 ‘학살자’의 손자

 

지난달 28일 귀국한 전 씨는 31일에 5·18 기념공원을 방문해 희생자 묘에 차례로 참배했다.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본인 외투로 정성스레 묘비를 닦기도 했다. 방명록에는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남겼다.

전 씨의 사과는 5.18 유가족 및 관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진상규명 이후에는 사죄와 용서, 화해와 상생으로 가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우원 씨의 사죄가 하나의 계기,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한편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버젓이 살아있는 이순자 씨와 장남 전재국 씨 등은 아무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전 씨의 사과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경계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 씨의 사과는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까운 목숨에 다시 생을 불어넣을 수도, 흘러버린 시간만큼이나 깊어진 유족들의 가슴 속 골짜기를 메울 수도 없다. 그러나 선대의 잘못을 후대가 사과하고 반성할 수 있다는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잘못한 자는 반성하고 남겨진 자는 잊지 않는 한 과거와 같은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조유솔 기자

202215001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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