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발목 잡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

지난달 본교 인권‧성평등센터에서 주관하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 미이수자 구제 중단 방침이 논란에 휩싸였다. 본교는 교내 구성원의 인권 감수성 증진과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2017년 1학기부터 ‘인권과 성평등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에서 정한 법정 교육으로, 교육과정 편성·운영 시행세칙 제43조에 근거한다. 하지만 해당 교육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지적과 함께 교육 미이수로 졸업 요건을 채우지 못한 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인권과 성평등 교육 관련 졸업 요건에 따르면 본교에 재학 중인 학부생은 학년도별 1회, 즉 재학 기간 내 총 4회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교육 이수는 블랙보드를 통해 이뤄지며 ▲10개 교육 영상 시청 ▲퀴즈 응시 ▲이수 내역 인증 후 포털 로그인 완료 총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올해 교육 내용으로는 ▲고려대학교와 인권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데이트폭력 예방 교육 ▲성매매 예방 교육 등이 포함됐으며 교육 영상은 약 2시간 30분으로 구성됐다.

논란은 올해부터 미이수자에 대한 구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유관 부처의 발표로 시작됐다. 인권‧성평등센터 측은 “다년간 대체강의를 시행했으나 실효성이 부족했기에 앞으로 구제 강의를 열 예정은 없다”며 구제 중단 이유를 밝혔다. 공지가 발표된 직후 각종 학내 커뮤니티는 ‘졸업 요건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개인의 잘못’이라는 주장부터 ‘졸업을 막는 것은 진로 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지나치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방 모(컴퓨터 18) 씨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 이수 조건을 확인하지 못해 4회의 이수 조건 중 2회를 충족하지 못했다. 학과 홈페이지의 졸업 요구 조건을 살펴봐도 본교 공통 졸업요구조건에 ‘인권과 성평등 교육 의무 이수’는 명시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두 제 불찰로 일어난 점이지만 해당 교육 미이수로 인해 1년 반 동안 모든 길이 막혀버렸다”며 “어떠한 페널티라도 받아들이겠으니 구제 방안을 마련해주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문과대학 B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과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졸업 요건에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 내용이 없었다”며 “제 불찰이 크다는 점은 반성하고 있지만 그 귀책 사유에 대한 강도가 등가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들처럼 해당 교육 미이수로 졸업이 어려워진 경우가 급증하자 총학생회 교육정책국은 지난 3일 인권과 성평등 인권‧성평등 센터와 면담을 진행했다.

두 차례 면담을 통해 올해 8월 혹은 내년 2월 졸업 예정자에 대한 구제 방안이 확정됐다. 정해진 기간 내 정규 과정보다 분량이 많은 미이수자 전용 프로그램 이수라는 대안이 마련됐다. 17‧18‧19학번 중 금년도 졸업 예정자만 수강할 수 있으며, 2주 내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만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다음 연도부터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될지 확정된 바가 없어 계속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제 중단 외 다른 지점도 논란이 됐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영상 교육 특성상 교육 집중도가 낮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영상 재생 시간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영상을 틀어둔 후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교육 이수를 위한 퀴즈 10문제도 영상을 시청하지 않아도 충분히 정답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라는 평이 대다수다. 올해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이수한 A(행정 21) 씨는 “영상을 단 1분도 시청하지 않았는데 퀴즈를 다 맞았다”며 “단순히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교육인 것 같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온라인 교육 미이수로 졸업을 몇 년씩 늦춰야 하는 처사는 부당하다는 데 비판의 초점이 맞춰졌다. 학생들과의 심도 있는 논의 없이 유관 부처의 일방적인 조치로 결정됐다는 점 또한 실망을 키우는 원인이었다. 비록 학생회‧인권 센터 간 양자 논의를 통해 졸업 예정자 구제 방안이 마련됐으나 앞으로의 학사 운영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앞으로의 학사 운영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윤희 기자
ddulee388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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