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가리는 ‘보호출산제’

최근 영아 유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다시금 고취했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미혼모 등 한 부모 가족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제도적 해결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중 대책의 일환으로 조명된 보호출산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부 대책과 그에 담긴 보호출산제의 현주소를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언급되는 영아 유기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0월 한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신생아를 20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달에는 영아가 베이비박스 앞에서 숨진 채 발견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영아 유기는 1,272건 발생했다. 매년 127명의 영아가 유기된 셈이다.

영아 유기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영아유기죄의 형량을 높이는 방안과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현행 형법상 영아유기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할 때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할 때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영아를 유기한 때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영아 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영아 유기·살해죄의 형량을 높이는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며 처벌 강화에 힘을 실었다. 한편 미혼모 영아 유기를 고려할 때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출산과 양육에 수반되는 전반적인 어려움을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홍 글씨가 돼버린 현행법

 

입양을 원하는 미혼모조차 극단적인 선택지로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출생신고가 우선돼야 하는 현행 입양특례법에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입양을 보내기 전 단계인 친권 포기 과정에서 출생 신고가 불가피하다. 출생신고가 된 영아는 대개 친부모나 입양가정에서 양육되지만, 미신고 영아는 베이비 박스를 통해 보육원으로 보내지거나 유기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현행법하에서 출생신고는 영아의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으로 작용한다.

혼외 자녀 출생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미혼모의 입장에서 현행 입양특례법이 규정한 입양 조건은 주홍글씨와 마찬가지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베이비박스 아동 실태 및 돌봄 지원 방안’ 보고서에서 ▲출생신고 기피 경향 ▲양육자 부재 ▲경제적 어려움 ▲양육 부담 등을 유기 원인으로 꼽았다. 2015년부터 베이비 박스를 운영한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산모가 10대 미혼모이거나 성폭행 피해자일 경우 혹은 불법 외국인 노동자일 경우에는 출생신고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영아 유기 범죄가 개인의 책임에 더해 산모가 처한 환경이나 미혼모가 사회적 편견으로 피해받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현행 제도와 관련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위장입양과 허위 출생신고를 방지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가족관계등록을 마친 상태에서만 입양 절차를 밟도록 규정했다. 해당 법안이 출생 기록을 기피하는 미혼모들의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2016년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과거 가족관계가 명시된 상세증명서와 구별된 일반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제도다. 하지만 특정 기관이 상세증명서의 합당한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어 개정안도 미혼모의 개인정보를 온전히 보호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호의 베일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작년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해 아동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정책의 골자는 아동학대 대응 체계를 전면 개편해 학대와 유기 문제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확대하고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해당 정책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 강화” 전략에는 출생 단계부터 국가의 책임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정책에는 의료기관에서 행정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산통보제’를 비롯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로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안전·복지 분야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정보를 국가기관에 통보하게 하는 제도다.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모가 아닌 제삼자에 부여하고 부모의 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아동의 출생을 등록해 각종 권리를 보장하는 이점을 지닌다. 이에 출생통보제에 대해 미혼모의 부담과 아동의 안전을 고루 고려한 현실적인 제도라는 긍정적인 평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이 병원에 내원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산모들을 배제해 복지 사각지대를 초래하는 미흡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산모가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로 영아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뜻한다. 해당 제도의 도입은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이어 올해 발표된 ‘미혼모 등 한 부모 가족 지원 대책’에서도 언급됐다.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부터 미혼모를 보호하는 취지가 담긴 보호출산제는 현재 미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보호출산제를 통해 자녀의 출생기록부에 친모의 정보를 가명으로 기록하고 자녀가 16세가 될 때까지 친모의 신원을 중앙기관에 밀봉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출산제의 도입은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방치하지 않아 영아 유기를 방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해당 제도가 기관의 관리를 통해 입양 및 보호 조치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산모와 아이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현실의 목소리에 더 가까워지도록

 

부모 혹은 미혼모의 보호와 아동의 알 권리 침해의 갈림길에 있는 보호출산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만큼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팽팽하다. 보호출산제가 부모의 입장만 고려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일부 인권단체는 보호출산제가 친모를 찾을 때 필요한 기록을 제한하기에 아동과 입양인의 권리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한 경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존중과 생명권 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지만 영아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며 종합적 고려가 필요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또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부모 입장에서 보호출산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대책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며 제도의 균형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보호출산제 도입에 앞서 출생통보제와 위기임산출산 지원이 선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달 25일 아동 관련 15개 단체로 구성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와 5개의 한부모 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보호출산제 도입은 아동 유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합적인 서비스인 위기 임신·출산 지원 체계를 구축이 선행되는 것이 현실의 요구라는 의견이다. 이들은 보호출산제만을 도입하는 것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혼모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출생통보제와 출생신고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첨예한 상황에서 보호출산제 도입을 둘러싼 세부 논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제도의 변화가 시선의 변화로

 

보호출산제는 기존의 인식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제도다. 주사랑공동체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입양특례법 개정에 앞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과 보호체계 마련이 우선돼야 하는데 선후 관계가 바뀌어 영아 유기가 지속되는 것”이라며 사회적 인식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호출산제 도입이 사회에서 미혼모에게 부여하는 주홍 글씨를 가린다고 해도 근본적인 원인인 ‘인식’ 자체의 변화를 유인할지에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보호출산제가 주홍글씨를 가리는 소극적 역할에서 나아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시선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이채윤·심정후 기자

dlcodbs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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