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흔들리는 대한민국

최근 국내에서 지방소멸 문제가 심각해지며 정책적 논의의 주요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89개의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고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으나 정책 방향성과 적절성을 두고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지방소멸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The HOANS가 정리해봤다.

 

고조되는 지방소멸 위기

한국의 지방소멸 위기는 지표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방소멸 문제를 먼저 겪기 시작한 일본의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 자신의 저서 <지방소멸>에서 내놓은 지방소멸지표를 사용해 국내 지자체의 소멸위험지수를 발표한 이후 한국에서는 소멸위험지수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진행돼왔다. 소멸위험지수는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으로, 청년 남성의 유입과 40대 가임인구가 포함되지 않는 등 한계가 지적되지만 지역 내 인구 증감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고용정보원과 국회입법조사처 등은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일 경우 해당 지역의 소멸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지수가 0.2-0.5에 해당하는 지역과 0.2 이하인 지역을 각각 소멸위험진입단계와 소멸고위험지역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2021년 8월 기준 국내 229개의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108개로 47.2%를 차지한다.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하면 그 비율이 절반에 달하며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소멸위험지역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5월 시·군·구 기준 85개였던 소멸위험지역은 2018년 89개, 2019년 93개, 2020년 105개로 매년 꾸준히 증가해 올해 108개까지 늘어났다. 균형발전 정책 등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표가 악화하자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인구는 줄고 지방은 떠나가고

 

지방소멸의 주요한 원인으로는 크게 수도권 집중 현상과 저출산 문제가 꼽힌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약 0.84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합계출산율이 1명 이래로 떨어진 이후 4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0명대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개발원은 이러한 저출산 경향에 대해 ▲지나친 입시 ▲취업 경쟁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자녀교육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이 청년층에게 결혼 및 출산을 주저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전국적으로 전례 없는 인구감소에 더불어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지방의 인구감소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의 면적이 우리나라 약 11%를 차지하는데 불구하고 2019년 기준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수도권의 명목상 지역 내 총생산(GRDP) 비율은 전체의 약 52%를 차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86곳의 본사가 수도권에 있다고 한다. 교육, 문화 등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 또한 지방 인구 유출을 심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기준 공공기관의 44%와 대학교의 33%가량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박물관, 공연장 등의 문화시설의 약 40%가 수도권에 밀집돼 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원은 현 상황이 유지될 경우 30년 후 수도권 인구는 6.7% 늘어나는 반면 13개 광역시·도에서 인구 23%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 정책의 실패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부추긴 요인 중 하나로 뽑힌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전국 10곳에 혁신도시를 설립하고 지방 일자리 확보를 위한 공공기관 이전도 추진했다. 이에 지난해까지 153개 기관이 전국의 혁신도시로 옮겨졌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혁신도시 10곳 중 8곳이 인구 목표를 채우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인구를 흡수하는 역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신도시 개발도 지방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지방 불균형 해소를 위해 쓰여야 할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중 상당액은 균형발전과 거리가 먼 사업에 투입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및 신분당선 확장 등 수도권 교통망 확충에 투입된 국가균형발전회계는 6조 9,000여억 원으로 교통 및 물류 분야에 배정된 총액의 약 30%에 달했다. 이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낙후 지역 발전에 쓰여야 할 균형발전예산이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 좋은 수도권에 투입되는 것은 예산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사람이 없으면 버스도 없다.

 

지방소멸의 문제는 지방 중소도시의 이동권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교통 시설 개발과 저출산이 겹치며 지방의 인구 유출이 지속하자, 사업자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지방 도시의 대중교통 축소 개편이 잇따르는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하는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은 대중교통 개편으로 인해 노선별로 버스가 하루 1회 운행하고, 버스 운행 간격 또한 커 지역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50만 이상 수도권 도시와 지방의 군 단위 평균 1일당 배차 횟수가 약 18.7배 차이를 보이며 수도권과 지방의 교통 인프라 격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역민의 이동권 문제, 특히 버스 인프라가 축소되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기준 교통수단 중 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61%에 이르는 지역 고령층의 이동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교통 인프라 부족 문제는 이미 지역민에게 뚜렷하게 인식되고 있다. 2017-2018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인프라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주민들이 비수도권 주민들보다 인프라의 안전성과 성능에 대한 평가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프라 수준에 대한 체감 인식이 벌어져있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이 인프라의 중요성을 지역 경쟁력보다 삶의 질의 관점에서 찾는다는 동 연구의 결과를 고려했을 때 지방의 교통 인프라 부족은 인구 유출 압력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민의 이동권 상실과 소외 문제와 함께 지방소멸 문제를 풀어낼 해법이 요구된다.

 

또다시 새로운 정책 내놓은 정부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균형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현 정부도 지방소멸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18일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지난 6월에 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 순이동률 등 총 8가지 지표를 반영, 전국의 인구 감소지역 89곳을 지정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행안부는 이를 근거로 지자체의 인구활력계획 지원을 위해 10년 동안 연간 1조 원가량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하고 2022년 예산안에 총 2조 5,600여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포함하기로 했다. 또한 인구감소 지역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 근거를 체계화하고 지자체에 맞춤형 지원을 통해 지자체 간 협력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지역균형뉴딜 사업을 추진해 지역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비수도권 지역 발전을 위해 메가시티 조성을 새로운 국가 균형발전 전략으로 내세웠다. 메가시티란 행정구역이 구분돼있으나 생활경제권이 연결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 구역을 뜻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9년부터 생활SOC(사회간접자본) 3개년 계획을 실행해 도로환경 개선 및 지역 생활 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에 10조 8천억 원을 투입하는 등 총 30조 원을 투자하기로 밝혔다. 또한 정부는 지난 10월에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에서 2개 이상의 지자체가 연합한 형태인 특별지자체에 국가 사무를 이관해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해철 행안부 장관은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정부는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을 바탕으로 지역과의 적극적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발표하면서 지방소멸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

 

정부도 지역 균형발전을 핵심과제로 삼고 국정을 운영 중이지만 현재 시행하고 있는 지방소멸 해소책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원 정책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예산투입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기금 운용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도 지난달 10일 열린 ‘행정안전부 소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심사’에서 “인구감소 위험도에 따른 기준 산정과 컨설팅 지원 계획 수립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며 지원 계획 수립의 부재를 꼬집은 바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쏠림 현상으로 인한 수도권 역차별 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행안부가 인구감소지역 선정을 위해 국토 연구원에 맡긴 연구 용역에서, 경기도가 일괄적으로 연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0년 경기도가 발표한 ‘경기도 내 지방 소멸위험지수’에서 소멸위험 진입 지역으로 분류됐던 ▲가평 ▲연천 ▲포천 등의 지역이 지방소멸대응기금 수혜대상에서 배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경기도를 지원에서 일괄 배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지난 9월 지방소비세율이 전국적으로 4.3% 인상된다는 계획이 발표된 만큼 고른 수혜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불만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역민의 의문과 불만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기금배분기준을 설정해 공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인구 활력 계획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각 지자체가 인구문제의 ▲현황 ▲문제점 ▲원인을 직접 진단하고 지역 맞춤형 해결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고자 2022년 총예산 30억 원, 각 지자체당 2,000-3,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지만, 컨설팅 비용 지원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가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인구 활력 계획 수립을 위한 실태 분석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지만 각 지자체 차원에서 실행하기 곤란한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편 앞선 정책들은 수도권 집중 현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접근 방향이 수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예산 지원보다 수도권 중심 성장개발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 후 균형 잡힌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재율 지방분권 전국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에 집중되는 교육·일자리·부동산 관련 인프라처럼 근본적 차원의 문제에는 소홀하다”며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자신은 할 수 있다는 대선 후보들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 해소가 핵심적인 국가 의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정치계는 균형발전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방 인프라 구축 ▲재정지원 강화 등의 정책을 언급하며 국가의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요구했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였던 지난 10월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기도 내에도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 2곳이나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농촌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도입 목적에 대해서는 지역 화폐 형태로 생계를 지원하면서 지역 내 화폐의 선순환 구조를 촉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기도에서 해당 제도를 실시하면서 각종 잡음이 발생해 전국적 확대 여부가 현실성 있는지 미지수다.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지원 대상은 29만 명이지만 예산 부족 문제로 소득, 기초단체의 제안서 제출 여부 등의 조건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재원 마련 문제 이외에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업종별 수혜 정도가 불균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충남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균형발전을 위한 3가지 기본안을 제시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 강화 ▲지방 교통 접근성 확보 ▲지역 특산물 사업 운영이 그 내용으로, 기존 수도권 규제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로운 국가 균형론이라고 평가받는다. 한편 윤 후보가 내세운 종합부동산세 감세 주장은 이와 충돌한다며 거센 반발에 휩싸이기도 했다. 종합부동산세의 상당 부분이 지방 재원에 이용되는데 감세로 인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렇듯 정책의 현실성과 실효성 면에서 논란은 있지만, 지방소멸 대책 마련이 정치계의 뜨거운 화두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 대선 시기임을 고려했을 때 앞선 정책들은 표심 자극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소멸 문제 해소는 중요하지만 무분별한 공약 남발로 그치지 않기 위해 실질적 이행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엄밀하고 정확하게 정책을

 

지방소멸이 시시각각 현실이 돼가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과 혁신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교육, 일자리, 교통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프라의 한계를 극복하고 악순환 구조를 깨부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정교하게 현상과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기초해 정치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단순한 재정적 지원이나 책임 떠넘기기식의 대응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적절치 않다. 이제부터라도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폭넓게 제시되길 기대한다.

 

이승준·이정윤·유민제 기자
les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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