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보조, 멈춰야 하는가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하면 해당 지역 가맹점의 상품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각 지역 소상공인의 보호를 위해 도입됐으며 2021년 발행 규모는 15조에 달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을 국고로 보조해야 하는가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이전과 다른 경제 상황, 달라져야 하는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국가 예산에서 지자체의 지역화폐 사업을 제외해야 한다. 지자체 고유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의 국고 보조는 최근 3년간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국고 보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소상공인의 생계가 크게 어려운 비상 상황이 존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비가 침체한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해야 했다. 즉, 국고 보조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비상 상황이라고 판단되는 소비 침체도 일어나지 않는 현재 국가에서 전면적인 지원을 이어 나갈 필요가 없다. 이를 확실히 하듯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업 자체가 코로나19 때 한시적으로 했던 사업”이라고 선을 그었다. “각 지자체가 지역 상권 도움 되겠다고 하면 그대로 시행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지역을 위한 다른 사업을 해도 된다”며 지역화폐 사업을 각 지자체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10% 할인이라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지자체가 어렵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안상열 기획재정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은 ‘2023년 예산안 관심사업’ 관련 백브리핑에서 “내년 지방교부세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10% 할인분을 지자체 스스로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는 게 실무진의 판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 심의관의 말대로 행정안전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지방교부세는 75조 3천억여 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10조 2천억 원 이상 증액 편성된다. 지방교부세는 국내에 있는 과세물건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인 내국세의 19.24%를 세원으로 하는데, 내년 내국세 추정액이 증가하면서 지방교부세가 증액될 예정이다.

여기에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순세계잉여금도 매년 32조 원 이상 발생하고 있다. 순세계잉여금은 지자체가 거둬들인 세금에서 지출 금액을 빼고 남은 금액을 뜻한다. 만약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이 순세계잉여금을 자유롭게 활용해 사업을 진행하면 된다.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좋아지는 상황에서 지자체 고유 사업을 위해 국가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최근 거시 경제 상황이 바뀐 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화폐 국고 보조가 지속해서 확대된 이유는 오랜 저물가 상황 속에서 소비를 진작시킬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찾아온 고물가 국면이다. 지속해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소비 보조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이처럼 달라진 경제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정책을 이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19의 영향도 바뀌었고, 물가도 바뀌었다. 중앙 정부의 예산만 바뀌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역사랑상품권 국가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이어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보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

 

코로나19 당시 정부 예산 지원을 통해 대폭 증액하여 발행된 지역사랑상품권은 민생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 됐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판매액은 약 30조 원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2021년의 판매액이 23조 6천억여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역사랑상품권의 수요는 코로나19라는 상황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비용 측면에서 고려해봐도 국고 보조는 필수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의 할인율 10% 중 4%를 국고 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 지원이 사라지면 나머지 4%까지 지자체가 감당해야 한다. 정부는 지방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원도 동해시는 지난달 11일 지역화폐 ‘동해사랑상품권’의 할인율을 10%에서 6%로 하향 조정했다. 국비 20억 원을 포함한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판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됐으나 추가 발행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비 지원이 없으면 10%라는 인센티브를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지자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보조가 중단되면 재정 능력이 충분한 지자체는 10%의 할인율을, 그렇지 못한 지자체는 6%의 할인율을 제공하게 된다. 모바일로 타지역의 상품권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할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할 동기가 없어진다.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할인율이 높은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선호하고, 이는 결국 소비의 역외 유출을 막는다는 지역화폐 자체의 취지에 반하게 된다.

6%의 할인율마저 위험하다. 4%라는 수치는 발행액에 한한 국고 보조비다. 지역사랑상품권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인 지역화폐 전체 예산은 절반 이상이 국비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지자체의 지역화폐 전체 예산 중 국비 지원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7.4%에서 2021년 52.2%로 계속 늘었다. 정부의 결정대로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보조 예산이 전액 삭감된다면 전체 발행 과정을 고려했을 때 10%는커녕 6%의 할인율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내년 지방 재원 증가도 불투명하다. 2023년 내국세 추정액이 증가했다지만 종합부동산세는 감세 정책으로 줄어 지방교부세 증가가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순세계잉여금도 해결책이 아니다. 필요한 사업을 하고 남은 돈인 순세계잉여금을 쓰라는 논리는 재정관리를 잘해 돈을 남긴 지자체가 피해를 보게 되며 순세계잉여금이 없거나 적은 지자체에게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고 보조가 없어지면 지역사랑상품권은 당장 정상적인 발행이 어려워진다. 지자체의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중앙 정부의 지원을 삭제하며 자율에 맡기겠다는 결정은 무책임하다.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보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채현·권예진 기자
omoidz@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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