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분류의 기로 앞에 선 게임중독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개정안을 의결하자 우리나라에서 이를 수용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어나고 있다.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지정하는 것의 효용과 비판, 전망에 대해 The HOANS가 알아봤다.

게임중독은 공식 질병?

WHO는 지난달 25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했다. 11차 개정안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하고 ‘6C51’라는 질병코드를 부여한다. 게임이용장애의 정의는 WHO의 홈페이지의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게임의 통제력 부족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 ▲게임 때문에 무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해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WHO가 말하는 게임이용장애는 게임중독을 의미한다. WHO는 “최소 12개월가량 게임 때문에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등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면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면서도 증세가 심각할 경우 더 짧은 기간이라도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11차 개정안은 2022년 1월에 발효돼 게임중독이 공식 질병으로 분류된다. 함께 WHO의 개정안은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안으로 실제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재량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등재하려면 한국의 질병 분류 체계인 통계청의 ‘한국질병·사인코드(KCD)’를 개정해야 한다. KCD의 개정 주기는 5년으로 다음 개정은 2021년 1월이다. 개정 내용은 내년 7월에 고시되기 때문에 다음 KCD 개정에서 바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위한 안전장치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 결정으로 게임중독을 둘러싼 갈등이 거세다. 국내에서도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논쟁이 첨예하지만,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WHO의 결정에 따라 질병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지난 30일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에 대해 질병으로 분류될만한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이라 말하며 국내 도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우리나라가 2022년에 권고될 WHO의 국제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찬성한다면, 2025년 이뤄질 통계청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에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가 반영돼 다음 해인 2026년부터 적용된다. 게임중독협회 염춘영 고문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의 폐해는 적지 않고 중독을 막기 위해선 예방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이 게임중독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며 건전한 게임발전을 위한 ‘안전장치’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게임중독 실태 조사를 실시하면 게임중독에 대한 다양하고 정확한 통계를 추산할 수 있다. 통계 분석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예방·치료 사업을 추진하고 게임 규제를 위한 법안을 발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치료방식이 정교해질 거라는 예측도 있다. 현재는 게임 빈도 감소를 위한 동기 부여나 게임중독 치료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 동기 강화 상담 치료가 대부분이지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게임중독 치료를 위한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이 발전된 형태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중독과 함께 나타나는 ▲ADHD ▲우울증 ▲충동성 ▲폭력성 등의 정신 질환을 해결할 약물치료 연구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신의진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청소년 등에게 게임중독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관련 임상 연구를 진행해 더 효과적이고 정교한 치료법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가 분명해지고 판단 기준이 점차 정밀해진다면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를 통해 건전한 게임문화 형성과 효과적인 예방·치료를 위한 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질병 규정은 성급한 판단?

WHO가 만장일치로 게임중독을 중독성 행위 장애로 분류돼 질병으로 규정했지만, 의학적 근거는 견고하지 않다.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 그리고 중독성 행위 장애 자체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고 게임이 인간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중독성 행위’의 뇌과학적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치료법 또한 없는 상황이다. 게임중독을 통제하고 효과적으로 치유하고자 질병으로 규정한 것이 과학적 근거가 미흡한 성급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WHO가 발표한 개정안은 ‘게임 이용 장애의 특징이 온·오프라인의 연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게임 행동 패턴’이라며 게임 통제 기능 저하의 정도를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 ▲상황 등을 통해서 측정한다고 명시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넘어서 WHO가 발표한 기준의 불명확성과 ‘게임’과 ‘중독’의 정의, 권리의 침해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결정이 UN 아동권리협약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UN 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당사국은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촉진하며,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활동을 위한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의 제공을 장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내 게임학회 ▲협회 ▲기관 등 88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질병코드 지정이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게임이 일종의 “문화와 오락 및 여가활동”으로 분류된다는 논리다.

지난 25일 공대위는 “충분한 연구와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내려진 성급한 판단”이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WHO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게임업계는 WHO의 성급한 결정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해 게임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게임 산업의 위축은 경제 성장이 미미한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큰 타격으로 작용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추정에 의하면 WHO 결정으로 세계 4위 수준인 국내 게임산업은 WHO의 질병 분류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2022년부터 향후 3년 동안 약 11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vs 문체부, 논쟁은 정부 부처 간에도

WHO의 개정안에 복지부는 “게임중독 등에 대한 치료나 예방은 필수적인 부분”이라며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26일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6월 중 구성하고 게임중독 예방 정책 수립 등의 준비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27일 이미 수용 의사를 밝힌 복지부 주도의 민관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체부는 “게임 과이용에 대한 진단이나 징후, 원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게임중독과 관련한 WHO의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표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의 엇박자가 나타나자 이낙연 총리는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 된다”며 국무조정실 주도의 민관협의체 구성을 지시했다. 복지부와 문체부가 대립하는 입장을 발표한 시점에서 어느 한 부처가 주도하면 편향성 논란이 있을 것을 고려한 조치다. 이 총리의 지시에 따라 28일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의 주재로 복지부와 문체부 차관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복지부와 문체부는 국내 도입까지 충분한 준비시간이 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도입 여부 ▲시기 ▲방법 등에 대해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키로 했다. 국무조정실 주도 민간협의체는 ▲복지부, 문화부 등 관계부처 ▲게임업계 ▲의료계 ▲관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는 WHO의 결정을 수용할지에 대한 복지부와 문체부의 협의 없는 발표는 국민의 혼란을 키웠다. 국무조정실 주도의 민간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지난 28일 정부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와 관련한 게임업계의 우려를 최소화하면서도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 나갈 예정”이라 밝혔다.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만큼 깊이 있는 담론의 선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강민정·김해솔·이지영 기자

khangmj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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