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위기, 한국경제는 ‘진태’양난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지난 9월 강원도가 레고랜드 채권 보증을 거부하며 채권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여러 보험회사도 약 13년 만에 콜옵션을 거부하며 국내 채권의 대외 신용도가 하락했다. 정부는 채권의 신용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금 지원에 나섰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자금을 거둬야 하는 정부가 자금을 풀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사태를 파헤쳐봤다.

채권은 약정한 날짜에 일정 이자와 함께 원금을 반환하겠다고 약속한 차용증서로 기업의 대규모 자금 조달 수단으로 쓰인다. 채권은 금융 자산의 일종이기에 신용이 중요하다. 채무자가 원금 상환이 불가하면 한낱 종잇조각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거부는 채무기업이 채무 이행 시기를 놓치면서 국내외의 한국 채권 신용도를 대폭 하락시켰다. 결과적으로 채권 수요가 급락하며 경제위기의 도화선을 지폈다.

거대한 도미노가 쓰러지다: 레고랜드 사태

 

2011년 강원도는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이하 멀린)와 강원도 춘천 중도에 레고랜드를 건설하기로 합의하고 이듬해 ‘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엘엘개발)’을 설립했다. 2021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해당 부지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고 도중에 코로나19가 발발해 지난 5월에야 개장했다. 2018년 멀린과 강원도가 체결한 불공정계약인 총괄개발협약을 근거로 멀린은 강제적으로 시공사를 바꿨고 그 손해배상을 강원도가 부담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공사 지연과 손해배상으로 비용이 불어나자 엘엘개발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2,050억 원 상당의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발행했다. 앞선 논란으로 해당 채권의 신용도가 낮자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섰다.

지자체에서 보증을 선만큼 채권의 신용도가 높아지자 목표치의 자금이 모였으나 채권 만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 9월 채권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엘엘개발을 법원에 회생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는 엘엘개발이 2,050억의 채권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했다. 그대로 두면 강원도가 빚을 대신 갚아야 하니 법원에 구조조정을 맡겨 엘엘개발이 빚을 갚도록 하려는 의도다. 강원도의 보증으로 우량등급(A1)이었던 엘엘개발의 채권이 위험에 처하자 그보다 낮은 등급의 신용을 가진 채권 수요는 더욱 급감해 채권시장 전반이 불안해졌다. 채권시장이 위기에 놓이자 김진태 지사는 회생 신청을 철회하고 내년 1월까지 전액 상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술렁이는 금융계: 보험사의 콜옵션 포기

 

코로나19 이후의 고금리 기조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위태로워지자 보험사가 콜옵션을 포기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콜옵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종자본증권을 알아야 한다. 금융기관은 일정 달러가 필요하므로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조달하는데 이를 신종자본증권이라고 한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아예 없거나 30년 이상으로 매우 길기에 영구채라고도 불린다. 만기가 길어 2~3년마다 채권 금리가 오르는 스텝업 조항이 붙는다. 발행사는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채권액을 조기 상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가진다. 통상적으로 발행사는 5년 혹은 10년에 한 번씩 콜옵션을 시행하며 투자자는 이를 당연한 조건으로 여긴다.

흥국생명은 2017년 5억 달러 상당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발행일로부터 5년 후인 지난달 9일 콜옵션 예정이었으나 1일에 콜옵션 포기를 선언했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 수요가 급락해 조기 상환 후 새롭게 채권을 찍어냈을 때 다시 자본을 조달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금융시장의 금리상승으로 인해 재발행할 채권 금리가 12%로 급등하기에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콜옵션을 포기하고 7% 이자로 스텝업하는 방안이 이득이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포기 소식이 퍼지자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의 수요가 떨어져 가격이 30% 이상 하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외화채권 가격도 기준가에서 15% 급락하는 등 외화채권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이에 압박을 느낀 흥국생명은 6일 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그대로 콜옵션에 응하기로 했다.

 

성큼 다가온 경제위기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금융시장은 레고랜드 사태와 보험사의 콜옵션 포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와 더불어 국내 채권의 신용이 떨어져 금리가 치솟으면 기업은 높은 금리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기업은 중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잃는다. 실제로 정부가 보증하는 AAA 신용등급인 한국전력공사가 고금리 채권을 발행했지만 지난 10월에 1천 2백억 원가량이 유찰됐고 A등급 회사채는 약 58%가 유찰됐다. 금리를 높여 채권을 발행해도 만연해진 시장 불안감 때문에 국내 채권 수요는 저조하다.

이에 금융사들도 채권 발행량 자체를 대폭 줄이는 추세다. 지난 10월에는 전월 대비 8조 8천억 원 감소한 규모인 55조 2천억 원이 발행됐다. 자산이 원활히 유통되지 않는 자금경색 사태로 스타트업과 증권사의 연쇄 부도설도 떠돌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에 발표한 ‘2022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 72명 중 60%가량이 내년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평했다. 이에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대형 경제 위기로 확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미노를 멈춰라

 

행정안전부는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지방채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13개 지자체의 보증채무 이행 의사를 확인했다. 이와 더불어 채무보증 사업을 점검 및 개선하기로 약속했으며 중앙투자심사를 실시해 부실 사업을 예방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 10월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50조 원 규모에 플러스알파(+α)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으나 그 한계가 관측된다.

해당 정책 중 하나인 20조 원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금융회사 각출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금난 상황에서 회사가 펀드 자금을 마련하려면 따로 채권을 발행해야 하기에 채권 금리가 오히려 상승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단기 자금시장을 대표하는 CP 채권 금리가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약 28% 상승했기에 정책의 실효성이 더욱 의심받는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시중 화폐량을 줄여야 하면서도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줘야 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이에 적절한 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수출을 촉진하는 전략을 검토 중이다. 수출 전략은 초기 비용이 크게 들지만 성공한다면 기업이 스스로 자금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국가전략기술 부문 연구개발에 5년간 25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무 금융과 거시경제를 전공한 본교 박철범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경제적 딜레마에 대해 “두 가지 목표 모두 중요하지만 각 기관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에, 경제부처는 자금지원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며 견해를 밝혔다. 또한 정부의 자금 지원은 경제주체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수축 중인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금융 정책 기조를 바꾼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으며 지원받는 기업이 도덕적 해이를 보일 수 있다”는 문제점을 언급하며 대비책 마련을 촉구했다.

궁극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이 채권 위기에 빠진 주요한 이유는 신용 사태가 아닌 고금리 기조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또한 금리상승 속도를 낮추려는 모습을 보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파월 의장은 지난 11월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초기에 크게 올리는 ‘프론트 로딩’이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확실히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지자체의 섣부른 판단으로 막대한 국세가 투입됐다. 2,050억 원 채권 사태에 50조 원가량이 투입된다니 국민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수많은 채권 중에 일부 채권 체납일이 연기됐을 뿐이며 해당 지자체와 기업이 빠르게 체납 거부 발언을 철회했는데도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50조 원이 투입됐다. 금융계가 철저하게 신용 중심으로 돌아가는 만큼 무너지기 쉽고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단순히 해결에 그치지 말고 이를 발판 삼아 신용을 건드리는 금융 정책에 있어서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박예나·이상훈 기자
june2310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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