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입시비리 의혹, 촛불로 대답한 고려대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조국 후보자의 딸인 조 모(환생공 10) 씨가 한영외고 재학 당시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간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의학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 씨는 당시 본교 수시전형 중 하나였던 ‘세계선도인재’ 전형에 응시하기 위해 해당 이력을 함께 제출했으며, 본교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는 ‘단국대학교 의료원 의과학연구소에서의 인턴쉽 성과로 나의 이름이 논문에 오르게 되었다’고 적었다. 여타 특혜 및 부정입학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면서 본교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를 중심으로 연구 부정행위를 입시에 활용한 데 대한 분노 여론이 확산됐다. 학내구성원의 총의는 지난 23일과 30일에 걸쳐 본교 서울캠퍼스 인재발굴처(전 안암캠퍼스 입학처)를 향해 입시비리 논란의 진위여부를 밝힐 것을 촉구하는 집회로 이어졌다.

갈증 해소 못한 본교 측 대응

논란이 확산될 초기에 본교의 미흡한 대응이 보도되자 의혹은 더욱 커졌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본교는 처음에 조 씨가 입학한 ‘세계선도인재’ 전형에서 “논문은커녕 자기소개서도 받지 않았다”며 부정 입학 논란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당시 본교 입시 지원자 모집 요강에 ‘학업 외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상장·증명서 등’도 제출할 수 있음이 명시돼 있다는 점을 들어 기자가 재차 묻자 곧이어 본교가 “자기소개서도 받았고, 연구 활동 내역 등도 입시에서 평가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고 전했다.

이에 지난 21일 본교 커뮤니케이션팀은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 고려대 입학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정정 공문을 송부해 즉각 해명에 나섰다. 취재에 최초로 응했을 당시 담당자가 약 10년 전의 입시요강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본교는 ▲애초에 공개된 입학전형 모집요강을 숨기거나 왜곡할 수 없고 ▲사전 공지된 모집요강과 당시 규정 및 절차에 따라 전형을 실시했으며 ▲본교 사무관리규정에 준하여 당시 관련 자료는 폐기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입장문 말미에는 추후 조사에 따라 조 씨가 본교 학사운영규정 제8조의 “입학사정을 위하여 제출한 전형자료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된 경우”에 해당할 경우 입학취소 처리가 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본교의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도 높은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문서폐기 사실을 증빙하고 당시 조 씨를 면접한 인사의 의견과 평가기준표를 제시해달라며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본래 본교는 단국대 연구윤리위원회의 논문 심사 결과에 따라 추후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으나, 대한병리학회가 논문을 직권 취소하자 곧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재차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학생들이 나서 밝힌 촛불

한편 분노한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집회를 열어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23일 18시에 본교 본관 앞에서 진행된 ‘0823 집회’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를 주제 삼아 인재발굴처를 대상으로 ▲세계선도인재전형 제출서류에 관한 인재발굴처의 입장 정정으로 인해 촉발된 의혹 소명 ▲학교 본부와 인재발굴처의 명확한 해명 ▲해당 문서 보관실 공개를 통한 문서 폐기 사실 증빙 ▲해당 학생의 면접자 의견 및 평가기준표 제시 등을 요구했다. 자유 발언과 문화제가 진행됐던 2부가 끝날 무렵에는 약 800명가량의 참가자가 결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촛불집회가 성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일 졸업생 박 모 씨가 최초로 학내 커뮤니티에 부정입학자의 학위 취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제안하는 글을 게시했지만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법학전문대학원생 신분으로 총책임자를 맡는 것이 다소 위험하다는 판단 끝에 주최를 포기했다. 이에 졸업생 임 모 씨가 나섰지만 정당 활동 경력으로 인해 집회가 부적절한 정치색을 띠게 될 것을 우려하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최종적으로 오정근(경영 12) 씨를 중심으로 집행부가 구성됐다. 집회가 개최된 시점은 최종 집행부가 구성되고 불과 이틀 뒤였다.

집회 전날인 22일 본교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가 입학 관련 의혹 대응에 관한 임시 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에 본교 총학 차원의 집회 주최 가능성이 주목받았지만, 재적 의원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는 개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임시 회의체로서 추후 공식적인 중운위에서 협조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와 더불어 집회 당일 총학이 게시한 입장 표명 대자보에는 본교생들이 특정 정치색을 띤다고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청문회 속행 요구가 들어가 학내 담론 수합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총학은 해당 구절을 삭제한 후 대자보를 다시 게시한 바 있다.

0823 집회는 통상의 학내 사건 관련 집회에서처럼 총학이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학내구성원의 자발적인 의논과 참여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전의 집회들과는 구별된다. 또한 방학이었을 뿐만 아니라 준비 기간이 짧았음에도 다수가 모여 정치색 없이 학내 구성원의 총의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았다. 집행부원으로 집회에 참여한 이일희(보정관 11) 씨는 “총학생회나 어떤 정치 단체가 개입하지 않고 일반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집회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가장 민의를 반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1차 집회 그 이후

그러나 23일 개최된 집회에 성공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색을 배제하기 어려운 시국을 증명하듯 일부 언론과 정계 인사는 집회를 정치적 이슈에 집중해 보도했다. 집회를 ‘조국 반대 집회’라고 명명하거나 보수 인사들이 집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식으로 서술한 기사가 대표적이다. 언론 보도보다도 학생들의 불만을 산 것은 학외 커뮤니티에서 이뤄 진 집회 의도 왜곡이다. 학생들은 집회 구호를 왜곡하거나 집회가 자유한국당과 연계됐다는 식의 게시물이 약 2천 개의 추천을 받으며 화제가 된 데 분노를 표했다.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됐으나 비정치성 호소가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다.

한편 지난달 30일에는 총학 주최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2차 집회가 열렸다. 총학은 지난달 25일 제30차 중운위 정기회의를 거쳐 0823 집회 집행부의 동의 아래 핵심가치 계승과 향후 대응방안 추진을 약속했다. 이에 기존 집행부가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총학과 별개로 학내 커뮤니티 중심 집행부 기조를 유지하며 28일 집회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잠시 등장했으나 새로 구성된 집행부의 정향 논란과 총학 주최 집회로의 단일화 요구로 금방 무산됐다. 총학이 대응책 마련을 공지한 26일 이미 조국 후보자인사청문회와 서울대 총학 주최의 2차 집회가 예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차 집회는 우천에도 불구하고 백여 명의 참가자들의 호응을 모았다. 하지만 ▲본교 내 홍보 및 공지 미흡 ▲통솔인원 부족으로 인한 시작 지연 ▲음향 장비 미비로 예정 프로그램 일부 생략 등 깔끔하지 못한 진행이 지적을 받았다. 2차 집회가 공지됐던 29일에는 총학이 ‘투명하고 정의로운 교육입시 촉구한다’는 구호를 제시해 집회의 취지에 관해 학내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었으나, 집회 당일에는 해당 구호가 삭제된 상태로 진행됐다.

민족사학, 걸맞은 결말을 찾아서

현실적으로 부정 입학 의혹에 학생들이 원하는 결말을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후보자 측과 입시계 및 학계의 입장 차이가 팽팽한 가운데 본교가 분명한 답을 내지 않고 단국대 논문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비리 의혹에는 꾸준히 힘이 실리고 있으므로 보다 구체적인 전학적 대응이 계속된다면 본교로부터 확정적인 답변이 제시될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무산됐으나 긴급한 기자간담회로 사회적 파장이 커진 만큼 앞으로의 집회와 학생사회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사인 집회가 그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광범위한 주제 설정을 통해 학생 간 의견이 나뉘는 등 참여율이 저조해지지 않도록 주체인 총학 측의 노력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28일 2차 집회 이후 9월 첫째 주 기준 현 시점까지 총학 차원에서의 집회 관련 공지는 따로 없는 상황이다. 이달 1일 진행된 31차 중운위 정기회의 안건에도 집회 관련 내용은 기재되지 않았다. 학생사회는 입장을 단일화할 수 있도록 본교 51대 총학생회가 아닌 인재발굴처에 대한 규탄과 요구를 이어가야 한다. 총학이 여론을 수렴하고 외부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총학과 학생사회 간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법무부·高大 “조국 딸 논문, 대입 미반영” 거짓말> 조선일보 19.08.21.

 

박지우·김민지·김윤진·조수현 기자
idler9949@koer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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