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로 안 보이는 격랑 속 아프간

탈레반이 대규모 공세를 통해 아프간 영토를 대부분 점유하고 집권 상태에 돌입했다. 이로써 20여 년을 지속해 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소수의 정부군이 저항하고 있으나 대세를 완전히 뒤집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탈레반 정권 재등장에 따라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과 함께 자유·인권 탄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논의되는 모양새다. 지난 한 달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아프간 사태를 The HOANS에서 정리했다.

 

떠나는 미군, 다시 돌아온 탈레반

 

성전사를 뜻하는 무자헤딘 중 하나인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란 뜻으로 이는 설립 당시 구성원 대부분이 아프간 남부의 극단주의 이슬람 신학생이었던 점에서 유래한다. 탈레반은 소련의 아프간 철수 이후 무자헤딘들 사이의 분열로 인한 아프간 내전 당시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결성됐다. 이들은 군벌 통치 종식과 소수민족인 하지라족 배척을 외치며 주류 민족이었던 파슈툰족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탈레반은 1996년 내전을 종식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이슬람 극단주의에 입각한 철권통치를 펼쳤다.

그러나 탈레반은 2001년 미국에 의해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숨겨주는 배후로 지목돼 위기를 맞았다.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징벌을 명분으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됐고, 미국은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탈레반에 맞서 저항하던 무자헤딘 세력인 북부동맹을 지원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미국은 친서방 인사를 중심으로 아프간 정부를 수립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속한 전쟁으로 미국에 수천 명의 인명 손실과 천문학적인 전비 지출이 발생하자 미국 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높아졌다. 결국 트럼프 정부에서 아프간 철수를 결정하고 바이든 정부에서 철수가 시작됐다.

그동안 정권을 잃은 탈레반은 변방에서 저항 세력으로 남아 서구화를 반대하는 부족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세력을 보강했다. 이에 반해 아프간 정부는 부정부패로 지지를 잃어 사실상 미군 주둔과 국제사회의 원조로 정권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미군 철수가 가시화되자 탈레반은 지난 6월경부터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총공세를 펼쳤고, 8월 6일 아프간 34개 주도(州都) 중 하나인 자란즈 점령을 시작으로 주요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했다. 정부군은 탈레반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후퇴와 항복을 거듭하다가 지난달 15일 정부가 항복하고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정부가 항복했지만 저항을 계속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가장 세력이 강한 곳은 과거 북부동맹의 거점이었던 아프간 북동부 ‘판지시르’ 주로, 산악 지형의 유리함을 살려 수비를 이어가고 있다. 아프간 부통령이었던 암룰라 살레, 과거 북부동맹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 등이 이곳에서 탈레반에 대항하는 저항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적으로는 자신들을 아프간의 정통 정부로 주장하는 한편 서구에 지원을 호소하고 인도나 러시아 등 주변국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판지시르 주 저항군이 저항 의지를 다짐에 따라 다른 지역에 잔존한 정부군도 합류를 시도하는 양상이다.

 

아프간 인권 수준, 20년 전으로 회귀?

 

탈레반은 카불 점령 직후 과도 정부를 수립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받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명과는 달리 반대파에 대한 탄압 및 처형이 자행되고 있어 이 같은 발표는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번 사태로 사실상 아프간 최고지도자에 오른 탈레반 수장은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로, 과거 탈레반 정권 시절 권선징악부라는 아프간 종교경찰의 수장을 역임한 바 있다. 탈레반은 향후 민주주의 시스템을 폐기하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할 것이라 발표했다. 샤리아는 현대에 맞지 않는 잔혹한 형벌과 성차별, 타 종교인에 대한 강한 적대 등을 포함하고 있어 우려를 거둘 수 없는 상태다.

특히 악명높았던 여성 사회 활동 제한과 인권 탄압이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히잡을 착용한다면 교육과 근로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지는 이미 여성 모델의 광고 사진이 페인트칠을 당하고 부르카를 두르지 않은 여성은 총살되는 등 공포로 물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 외에도 시민을 대상으로 한 채찍형 부활, 구 아프간 정부와 서방에 협력한 인사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보복에 나서는 등 인권 유린 사례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에 8월 17일부터 카불에서 탈레반의 인권 탄압과 여권 제한에 반발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아프간 동부에 있는 잘랄라바드에서는 아프간 국기를 들고 원상회복을 외친 시위대를 향해 탈레반이 발포해 7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탈레반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경우 인권 탄압을 제지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질까 우려하는 추세다. 20여 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탈레반이 실리적인 노선을 선택할지, 혹은 정말 과거의 공포정치를 재현할지는 차기 행보를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집권에 희비 엇갈린 각국

 

탈레반 집권을 바라보는 각국의 반응은 상반된다. 미국은 탈레반이 생각보다 빨리 승리를 거두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연설에서 “아프간전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울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아프간전이 사실상 미국의 패전이라는 평가가 형성되자 바이든 정부에 책임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공화당은 아프간전 결과를 베트남전에 비유한 단어 “사이공 어게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바이든 정부를 비판했다. 미국이 단단히 체면을 구기면서 지난 1월 출범 후 순항해온 바이든 정부가 첫 난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은 탈레반과 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탈레반 대표단은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 이후 카불이 함락되자 중국은 아프간 인민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아프간 문제에 건설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탈레반을 공식 정부로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군 철수 이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해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높이려고 한다는 점, 탈레반이 같은 수니파 무슬림인 위구르족의 반정부 운동을 지원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이후에도 중국과 탈레반이 적대할 여지는 낮다는 분석이다.

한편 탈레반을 피해 주민들이 피난 및 망명을 시도함에 따라 난민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아프간은 내륙국인 데다 국경지대를 모두 탈레반이 접수한 상태라 탈출이 쉽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주요국은 난민을 대거 수용하기보다는 외무인력과 현지 협력자들을 구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탈레반은 1996년 집권 당시 서방에 협력한 민간인들을 가혹하게 처벌한 전력이 있어 각국은 카불 점령 이전부터 구출 작전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도 외교 업무나 정부 사업에 협력한 요인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수송 작전인 ‘미라클 작전’을 개시해 총 390명의 아프간인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입국했으며, 당분간 충북 진천에 위치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머물 예정이다. 또한 정부는 주 카타르대사관에 아프간 업무를 임시로 맡기고 현지 동향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미래는 어디에

 

아프간의 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26일에는 미군 등 해외 인력과 피난민이 밀집한 카불 국제공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테러 배후로 지목되는 ‘ISIS-K’는 중동에서 악명을 떨친 ‘이슬람 국가 IS’의 아프간 지역 조직으로, 명목상으로나마 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탈레반에 반감을 품고 테러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은 아프간의 치안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탈레반도 현지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상황의 지속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민간인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전의 혼란상에 그대로 노출된 데다 탈레반 집권 후 외부 지원이 끊겨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악화하는 소식만 들려오는 현재로서는 현지 주민의 삶이 언제 나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태다. 과연 아프가니스탄이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시선이 집중된다.

최승원·신재용·이정윤 기자
20201500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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