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처분의 실상을 들춰보다

‘더 글로리’의 흥행과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이하 학폭) 논란으로 현행 학폭 조치가 피해 학생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와 교화라는 본 목적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규정상의 허점일까, 제도 밖의 환경 때문일까? 현실의 모든 ‘어린 문동은’이 사회로부터 보호받는 그날까지 The HOANS가 지켜보려 한다.

 

지난달 1부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2부까지 전편 공개됐다. 해당 드라마는 학폭 피해 학생이 어른이 돼 가해자 무리에게 복수를 한다는 독특한 소재로 재미뿐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면에 다시 한번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줬다. 드라마 밖의 현실에서도 여러 유명인의 학폭 논란이 불거지면서 최근 학폭을 어떻게 다뤄야 적절한지를 두고 사회적 관심과 근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다. 이에 The HOANS가 현재의 학폭 사건 조치와 그에 따른 각종 논쟁점을 꼼꼼히 짚어봤다.

 

학생부에 기록 남는 학폭 조치?

 

학교폭력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등에 의해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가 수반되는 행위를 말한다. 학폭 사건이 접수되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해 해당 사건의 사안 조사 및 전담기구의 심의가 진행된다.

전담기구 심의에서 학폭위 개최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학폭위는 해당 사건을 심의해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고 교육장에게 그 이행을 요청한다. 조치는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사회봉사 ▲학급 교체 등이며 그중 가장 강한 조치 내용이 ▲전학 ▲퇴학 처분이다. 이러한 가해 학생 조치사항은 교육부의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라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기재된다. 하단의 표는 조치에 따라 상이한 삭제 시기를 나타냈다.

학생부에 입력된 조치사항은 앞서 언급한 지침의 삭제 시기에 따라 삭제된다. 하지만 반드시 삭제 시기에 도달해야만 조치사항을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일로부터 2년 후 삭제 가능한 조치인 4·5·6·8호 처분을 받았어도 졸업 직전에 전담 기구가 선도 가능성과 변화 여부를 심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졸업과 동시에 조치사항을 삭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규정은 가해 학생의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 등 학생부를 열람하는 서류나 면접에서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제도의 빈틈을 꼬집는 전문가의 시선은

 

현행 절차가 학폭 피해 학생을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하고 있는지,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로서 적절히 기능하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다. 학교 현장에서 일하다 현재 학폭위로 있는 한 전문가를 통해 이에 대한 교육계 일부의 의견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학생부 기재 규정에 대해서는 “1·2·3·7호 처분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기 때문에 진학과 관련이 없는데 학생들이 의식하고 자제하겠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학교에서 상급학교 진학률 때문에 성적 좋은 가해 학생의 처분 내용을 지워주는 사례도 있다”며 앞서 언급된 단서 조항만큼은 꼭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윤호 학폭 전문 변호사는 “피해 학생이 원하는 건 ▲가해 학생과의 즉시 분리 ▲재발 방지와 사과 ▲학폭 발생 이전의 평범했던 학교생활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답해 현행 학폭 사건 조치의 작용 방향에의 시사점을 제공했다. 그는 “가해 학생에만 초점이 쏠린 조치와 졸업 이후에 불이익을 주는 기재 규정 모두 현재 피해 학생이 안전한 학교생활로 복귀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적극적인 분리 조치를 비롯해 교육기관에서 가해 학생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선도는 어디에, 학교 바깥의 꼼수

 

조치 및 기재 규정만 해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학폭 사건 조치를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지 않고 ▲소송 ▲고소 ▲진정으로 가져가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지난 2월 아들의 학폭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정 모 군도 비슷한 경우다.

정군은 2018년 동급생에 각종 언어폭력을 저질러 학폭위의 전학 조치결정을 받았다. 규정대로라면 학교의 장이 2주 안에 결정된 조치를 이행해야 하지만 정군의 전학은 8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 정군 측은 조치 이행을 미루기 위해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전학 처분 등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와 이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이 기각되자 다시 한번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의 항소·상고를 제기하기도 했다. 정군 측은 총 4차례의 집행정지와 1차례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고 이 중 단 1차례만 인용됐으나 결과적으로 전학은 8개월 늦춰졌다.

지난달까지 대법원 판결서 열람 서비스에 검색된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행정소송으로 이어진 총 970건의 학폭 사건 중 3심까지 간 사건은 소요 기간이 평균 507.8일, 약 1년 5개월이었으며 가장 오래 걸린 사건은 자그마치 771일이었다. 앞선 노윤호 변호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정군과 유사한 사례가 언급됐다. 중학교 1학년 가해자가 출석정지 징계를 받고도 특목고 진학을 이유로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 제기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징계를 지연시킨 경우다. 이는 결국 피해 학생에게 또다시 큰 상처를 줬다.

이러한 의도적 처분 지연을 막기 위한 ‘시간 끌기 방지법’이 지난달 발의됐으나 법안의 국회 계류 현상이 심화하면서 실제 법안 통과까지 이뤄질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글로리’가 통쾌하다 느낄 필요 없도록

 

규정상의 허점과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 내몰려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채로 방치되던 학폭 조치의 현실을 살펴봤다. 본 기사의 첫머리로 돌아가서, ‘더 글로리’의 복수극이 오늘날 인기를 끄는 이유에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드라마 속, 학폭 피해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왜 사적 복수여야 했으며 지금 학폭 사건 조치에는 가해 학생 선도와 피해 학생 보호라는 의지가 정말로 담겨있는가. 떠오르는 학폭에 대한 관심을 발판 삼아 하루빨리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다.

 

권예진·정상우 기자

yejingw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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