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큰 꿈과 성근 계획

대한민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골목 상권은 물론 수출과 생산 산업도 위기에 몰렸다. 7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주저앉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중장기 계획의 일환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해 실시한 뉴딜에서 이름을 따온 이번 계획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 사회안전망 확보를 골자로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회·고용 안전망 확보가 앞선 두 정책의 기반이 되는 2+1 구조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가 내년 예산 중 20조 원을 한국판 뉴딜에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한국판 뉴딜은 정재계의 주요 화두가 됐다.

 

디지털 뉴딜, 핵심은 데이터 댐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며 디지털 전환이 개별 기업은 물론 산업, 심지어 국가 경제 경쟁력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디지털 뉴딜은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을 가속함과 동시에 한국의 강점인 ICT 기술과 인프라를 활용, 기존의 추격형 경제 모델을 선도형 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자 및 제도 개선 계획이다. 정부는 ▲D.N.A.(Data-Network-AI) 생태계 강화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 디지털화를 추진 방향으로 디지털 뉴딜에 한국형 뉴딜 전체 28개 세부 과제 중 12개를 설정했다. 정부는 계획 집행 과정에서 총사업비 58.2조 원이 투입되고 2025년 약 90.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디지털 뉴딜의 핵심은 D.N.A. 생태계 강화 계획에 담겨있다. 해당 추진 방향에 디지털 뉴딜 총사업비 중 약 66%가 투자되고 예상 일자리 90.3만 개 중 56.7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리라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 댐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공황 시기 미국 뉴딜의 후버 댐과 비견하며 디지털 뉴딜을 상징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데이터 댐은 데이터 수집·가공·거래·활용 기반을 강화해 데이터 경제의 기반을 만들고 나아가 모든 산업에 5G, AI 기술을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정부는 데이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에서 38.9만 개에 달하는 상당한 수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완공 이후 데이터 댐이 기반 시설로서 작동해 5G, AI 등과 같은 관련 산업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야심 찬 계획과 달리 데이터 댐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데이터 댐을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처리 작업은 각지의 정보를 모아 데이터화하는 단계다. 컴퓨터가 읽을 수 없는 형태의 자료를 전산화하고, 흩어진 정보를 모으는 작업은 인공지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전처리 작업이 디지털 시대의 ‘노가다’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단순 노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약 38.9만 개의 일자리가 거액의 예산을 투자할 정도로 양질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22일부터 504억 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해 3개월간 공공데이터 분야에서 활동하는 8,000여 명의 청년 인턴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해당 인턴 역시 분산돼 있던 데이터를 모으고 옮기는 단기 아르바이트에 가까워 디지털 분야에서의 경력 제공이라는 본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린 뉴딜, 아직은 큰 그림만

한국판 뉴딜의 또 다른 축인 그린 뉴딜은 산업 생태계를 환경친화적으로 바꾼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그린 뉴딜은 2+1 정책 중 가장 예상 지출이 큰 분야로, 2025년까지 73조 원을 투자해 일자리 65만 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 및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해져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올해 환경부 기후변화 대응 예산이 800억 원으로 해외에 비해 환경 관련 지출이 턱없이 적다는 점 또한 근거로 사용됐다.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친환경 에너지 부문 공약 발표를 통해 그린 뉴딜을 발표한 바 있어 그린 뉴딜의 등장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평이 많다.

그린 뉴딜 정책의 주요 목표는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이 0에 수렴하는 탄소 중립 사회를 지향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산업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미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은 크게 ▲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저탄소 분산형 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해당 정책들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부는 이 정책들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녹색산업 인프라를 확충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2025년까지 약 27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린 뉴딜은 발표 직후부터 여러모로 부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탄소 중립 사회를 지향한다고는 했지만, 연도별 탄소 배출 감소량 목표는 무엇이며 언제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밝히지 않아 환경단체의 빈축을 샀다. 더불어 코로나19로 국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현재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5년 이상이 소요되는 중장기 정책에 73조 4,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공감을 사며 그린 뉴딜은 예상만큼 환대받지 못했다. 정부가 제시한 일자리 창출 규모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생활 인프라를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것은 학교나 수도 시설 등을 친환경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리모델링이라는 일회성이 강한 사업을 통해 창출되는 27만 개의 일자리의 지속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잠재우려면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잡음 이는 뉴딜펀드

한국판 뉴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재원이다. 정부가 2025년까지 국비 114조 원을 한국판 뉴딜에 쏟겠다고 공언했지만, 국비와 지방세 투입만으로는 160조 원이라고 명시된 투자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 ‘뉴딜펀드’는 한국판 뉴딜에 대한 투자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등장한 국민참여형 금융투자상품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K-뉴딜위원회는 약 16조 원의 예산을 뉴딜 펀드로 충당하고자 계획하고 있으며, K-뉴딜위는 뉴딜펀드 활성화를 위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에 나서는 등 뉴딜펀드 도입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뉴딜펀드는 이미 수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K-뉴딜위는 지난달 5일 뉴딜펀드 정책 간담회에서 뉴딜펀드를 ‘원금 보장’ 상품으로 홍보해 물의를 일으켰다. 자본시장법 57조는 펀드를 홍보할 때 투자 원금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K-뉴딜위는 이틀 후 뉴딜펀드는 원금 보장 상품이 아니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자가 아닌 민주당 의원들이 뉴딜펀드를 전폭적으로 홍보하는 것 역시 자본시장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 홍보를 둘러싼 위법성 논란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수익률에 대한 회의론도 뉴딜펀드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당초 뉴딜펀드는 3%가량의 수익률을 내세워 홍보됐으나, 이후 수익률은 차츰 낮아져 국채금리 이상에 당도했다. 이전에 정부 주도로 시행됐던 각종 펀드가 좋지 못한 성과를 걷었다는 사실도 불신을 더했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 성장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내놓았던 녹색성장펀드는 한때 50%가 넘는 수익률로 인기를 끌었으나 임기 중반 이후에는 극심한 투자금 이탈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역시 임기 초반에는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회되며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좋지 못한 선례는 뉴딜펀드가 또다른 실패한 ‘관제펀드’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한국판 뉴딜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개혁을 담은 초대형 정책이다. 하지만 정책의 파급력과 그 의도에 비해 세부 계획이 부실하다는 평이 속속들이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이 창출하는 일자리의 질에 대한 의문과 그린 뉴딜의 부실함에 대한 지적이 대표적이다. 넓고 크게 펼친 그물이라 해도 그물망이 촘촘하지 못하다면 소득을 얻기 힘든 만큼, 한국판 뉴딜에 대한 많은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입자가 별도의 금융상품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 지정된 상품에 자동 가입되는 제도. 뉴딜펀드가 퇴직연금에 대한 사전지정상품이 될 경우 별도 상품을 지정하지 않은 퇴직연금 가입자는 자동으로 뉴딜펀드에 투자하게 된다.

 

 

장윤서·김원겸·김준범·신형목 기자

yunseo0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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