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정말로 부활하기까지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침체기의 여파를 걱정했던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다시금 수주량 세계 1위를 탈환했다. 다사다난한 한국 조선업계의 성공 신화부터 더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The HOANS에서 개괄해봤다.

되찾은 수주량 1위

지난달 8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2019년 8월 조선업 수주 실적 및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는 전 세계 선박 발주 100만 CGT* 중 73.5만 CGT를 수주하며 5월 이후 4개월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주요 경쟁국인 2위 중국이 26만 CGT를 수주했고 3위에 자리매김한 일본이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것과 비교해 대단히 우수한 성과로 풀이된다. 최근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올해 누계 수주금액에서도 113억 달러를 기록하며 109억 3천만 달러의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탈환해냈다.

수주 확대는 자연스레 조선업계의 고용 증가로 이어졌다. 작년 8월 기준 약 10만 5천 명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던 조선업계 종사자 수는 이후 꾸준히 증가하며 올해 7월에 이르러 1년 6개월 만에 11만 명대를 회복했다. 더불어 조선업을 기반으로 하는 거제, 울산 등의 지역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작년 전국 집값 하락률 1위를 기록했던 거제시는 올해 3월 이후 아파트 매매가격이 0.57% 상승하는 등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부동산 시장 거래량도 올해 상반기 1,595건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약 25% 증가했다.

*표준화물선환산톤수(Compensated Gross Tonage). 실질적인 작업량의 크기로 고부가가치 선박을 수주할 때 가산치를 둔다.

지난 역사는 각개고난

한국 조선업의 회복 추세는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와도 연관이 깊다. 오랜 시간 국가 주요 산업으로서 수출 품목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근대화 중공업에 주력하는 경제개발 정책을 시행한 이후 한국은 조선업을 주요 육성분야로 채택하고 규모 확장을 위해 분투했다. 조선업계를 향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규모 재정 지원과 당시 한국의 저렴한 인건비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조선업의 특징과 맞물려 점차 성과를 거뒀고, 1990년대에 결국 일본을 누르고 선박 수주량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던 조선업의 노동집약적 특징은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국내 업계의 발목을 잡게 된다. 1960년대에 일본이 유럽을, 1990년대에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업계 1위로 올라섰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2000년대 후반에는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를 토대로 한국을 넘어 세계 1위로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무역 시장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으면서 해운업과 조선업까지 침체하게 됐다.

복합적인 위기를 타개하고자 국내 조선업계는 ▲석유 시추 플랜트 ▲호화유람선 ▲쇄빙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한편 그 과정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을 생산해낼 수 있을 만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조선업계의 주요 3사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중소규모의 조선소들은 큰 위기를 맞았다. 여파로 중소 조선소 19곳 이상이 폐업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2015년 조선업계는 타격을 온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2008년 이후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에 집중하던 국내 조선업계는 그중에서도 해양 시추선의 한 종류인 드릴쉽(Drill Ship)과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 건조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초부터 시작된 초저유가 현상이 해양 시추선의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당시 조선업계는 정유와 송유 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드릴쉽과 FPSO를 이용한 해양 시추의 최저 마진을 배럴당 약 60달러 내외로 예측했다. 그러나 ▲미국 원유재고량 증가 ▲셰일가스 생산량의 급증 ▲달러 강세 등의 다양한 요인이 겹치면서 배럴당 약 80~100달러를 유지하던 유가가 30달러가량으로 급락했다.

이에 해양 시추는 급격하게 채산성을 잃고 원유 생산 과정을 담당하는 업스트림(up-stream) 업체들은 드릴쉽과 FPSO의 인도를 지연하기 위해 계속 설계를 변경하거나 아예 선박 인도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한 번의 발주가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기업의 수입을 담당하는 조선업의 특성상 이는 국내 조선업계에 굉장히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한국 조선업의 장래는 어두워만 보였다.

위기를 기회로, 빛을 본 고부가선 전략

한국 조선업계가 다시 1위를 탈환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셰일가스 생산량 급증에 발맞춰 또 다른 고부가가치 선박 유형에서 다시 한번 경쟁우위를 점한 데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셰일가스를 비롯한 천연가스를 중점 개발하면서 받은 저유가 타격을, 전화위복으로 천연가스를 액화해 운반하는 기술로 극복한 것이다.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 운반 전용선(이하 LNG 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이하 VLCC)이 효자 노릇을 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발주된 LNG 운반선 27척 중 24척에 더해 VLCC 17척 중 10척까지를 한국이 수주했다. 또한 ▲카타르 ▲모잠비크 ▲러시아 등에서 총 100여 척의 LNG 운반선이 추가로 발주될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한국 조선업의 기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LNG는 천연가스를 운반하기 위해 영하 161℃에서 냉각한 액화천연가스를 의미한다. 최근 미국에서 천연가스 생산이 급증하고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가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이를 운반하는 LNG 운반 전용선의 수요가 증대됐다. 한국이 LNG 운반선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력에 있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의 소형 원형 탱크를 사용하되 안정적인 모스형 운반선과 대용량 박스형 탱크를 사용해서 최근 선호 받는 엠브레인형 운반선을 모두 건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LNG는 온도변화에 민감해 운반선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데 가격 경쟁력으로 수주량에서 초기에 우위를 점했던 중국 선함에서 기술 결함이 빈발하고 일본이 엠브레인형 운반선 건조에 실패하자 한국의 경쟁력이 주목받게 됐다.

게다가 국제해사기구가 2020년 1월부터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하기로 규제한 것도 이롭게 작용했다. LNG가 오염 배출이 적고 가장 효율적인 대안적 선박 연료로서도 주목받는 현시점에서, LNG를 연료로 하는 추진선 건조에 있어 한국 조선업계의 기술력은 가장 앞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LNG 추진 VLCC 수주까지 앞으로 꾸준히 한국이 가져갈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갈 길은 남았다

한편 수주 점유율이 일견 상승세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아직 조선업계에는 남은 과제가 많다. 우선 ▲글로벌 경기하강 ▲미·중 간 무역 분쟁 장기화 ▲IMO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세계 선박 발주 시장 자체가 불황이다.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발주량이 2,801만 CGT ▲2018년 발주량이 3,108만 CGT에 달한 데 비해 올해 8월까지의 발주량은 한 해의 2/3이 지났는데도 아직 1,331만 CGT에 그쳤다. 조선업계가 온전히 탄력을 회복하려면 전 세계 발주량이 4,313만 CGT에 달했던 2015년 및 그 이전 년도 수준까지 상황이 좋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마찬가지로 조선업계 고용률도 비록 올해 11만 명대 고용을 회복했다고는 하나 18만 명 이상이 업계에 종사했던 2015년 위기 이전의 고용 수준에 비하면 미비한 수치다.

또한 지난 4개월간의 긍정적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체 수주 실적으로는 중국과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의 수주량은 464만 CGT인 데 비해 중국의 수주량은 502만 CGT다. LNG선과 VLCC 등 한국의 강점으로 언급되는 일부 고부가선 유형을 제외한 다른 선종은 아직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는 실정이다.

아직 한국 조선업계에서는 LNG선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프랑스 GTT사의 화물창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LNG선을 건조할 때마다 선가의 5%를 로열티로 지급해야 한다. 한국 조선업계의 주요 3사가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실제 선박 건조에 적용한 사례는 없다. 지난달 19일 대우조선의 LNG 화물창 설계기술이 세계적인 선급협회인 프랑스 BV사로부터 실제 적용에 적합하다고 인증을 받았으나, GTT사의 기술을 선호하는 글로벌 석유회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 LNG 관련 기술 홍보와 선박 실적의 균형 확보 또한 요구되는 실정이다.

 

박지우·박찬웅·황제동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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