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국제 질서에 변수 창출하나

지난달 21일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번 회담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첫 회담으로써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자리이자 동북아 국제 질서, 코로나19 대응 등 현안에 대한 실무적인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평가된다. 정상급 회담이었으나 방역을 위해 수행팀의 규모가 대폭 줄었고,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동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3박 5일간 미국 순방 중 핵심이었던 이번 회담은 ▲양측 정상이 독대하는 단독회담 ▲핵심 참모만이 배석하는 소인수 회담 ▲관련 각료들이 대거 참여해 회담 결과를 확정하는 확대 회담 순으로 진행됐다. 확대 회담 종료 후 한미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에서 논의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공식적인 회담 일정은 종료됐다. 이외에도 한국전쟁 참전자 훈장 수여식 등 한미 관계를 상징하는 행사가 추가로 진행됐다.

회담 결과 중 돋보이는 부분은 40여 년간 지속된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의 해제다. 기존 지침에 따르면 한국은 로켓 개발서 사거리, 용도, 로켓 연료 등에 제약을 받아 왔으나 이번 결정으로 자유로운 미사일 개발·배치가 가능해졌다. 한미 정상 간 성명에서 최초로 대만 관련 메시지가 담긴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만 해협의 평화를 지지한다는 해당 발표에는 미국의 대중 견제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코로나19 극복 협력, 주요 산업에서의 경제적 교류 등 다양한 현안이 종합적으로 다뤄졌다.

 

42년 만에 폐기된 미사일 사거리 지침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은 1979년 독자적인 전략 무기를 보유하려는 한국의 행보를 미국이 제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미 양국은 서면 합의를 통해 ‘미사일 사거리의 180km 제한’을 약속했다. 180km는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거리를 기준으로 설정된 수치였다. 1990년 미사일뿐만 아니라 우주개발·산업용 등의 로켓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확대되며 제한은 더욱 가중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해당 지침은 안보 자주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4차례의 개정을 거쳐 완화됐다. 작년부로 제한은 ‘사거리 800km를 초과하는 군사용 고체 로켓 개발’까지 완화됐다.

이번 회담에서 완화를 넘어 지침이 폐기됨에 따라 안보 능력을 강화할 선택지가 크게 늘어났다. 군용 미사일을 사거리 제한 없이 보유 가능한 것은 물론 탄두 중량도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은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사거리 지침의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말하며 해당 사안을 알렸다. 추가로 인공위성 발사 시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할 수 있는 등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지침 폐지는 한국의 요구와 동맹국의 군사력 확충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국내 정계에서는 여야 모두 안보 능력의 획기적인 강화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한국이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을 갖게 됐다”며 반가움을 전했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도 회담 다음 날 논평을 통해 사거리 지침 폐지를 유의미한 결과라 평가하며 “우리 정부는 이를 북한 핵 억지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양안 관계’ 등장한 한미 정상회담

 

양 정상이 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그간 공개적인 언급이 많지 않았던 ‘대만 해협’ 문제가 포함돼 화제가 됐다. 한미 정상급 논의에서 양안 관계가 주요 논제로 다뤄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공동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미중 갈등 현안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온 한국 정부와 한국이 반중 전선에 가담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절충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외에도 각국이 군경과 국민 간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에 무기 판매를 금지하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모두 중국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대중 견제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다.

중국 측은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반발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회담으로부터 3일 뒤인 지난달 24일 열린 세미나에서 “한미 관계는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도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므로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도 용납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내정 문제에 강하게 대응해오던 기조와 달리 중국의 비판은 소극적인 선에 그쳤다. 지난 4월 미일정상회담에서의 대만 언급과 비교할 때 언급 수위가 약했다는 점과, 쿼드를 중심으로 반중 전선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대만 외교부는 즉시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 정상 공동성명을 소개하며 감사를 표하는 등 환영의 뜻을 전했다. 반중·탈중국 노선을 강화하는 대만으로서는 중국과의 대립에 한국이라는 새로운 우군의 합류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북미 회담 등 기존의 대화와 외교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관계상 운신의 폭을 넓히고 남북교류가 계속 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측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사일 사거리 폐지에 대해 비난하는 성명만을 표하며 대화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백신과 경제에서도 협력 강화

 

이번 회담에서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한미 협력 문제도 다뤄졌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미 측이 주한미군과 접촉이 잦은 한국군 55만 명에게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지난달 30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당초 계획된 양보다 훨씬 많은 얀센 백신 101만 2800회분이 이달 초 국내에 도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5일 도착한 백신은 30세 이상 예비군, 민방위 대원, 국방 및 외교 관련자와 동거 중인 30세 이상 배우자 및 자녀를 대상으로 접종될 예정이다. 원래 이들에게 접종될 예정이었던 화이자·모더나 백신은 민간인 접종에 활용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코로나19 예방접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미국은 한국 기업에서 모더나 등 미국산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것을 허가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정부와 기업은 포괄적인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했으며, 올해 3분기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이용해 백신을 대량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코로나19 백신 조기 공급이나 스와프(맞교환)를 통해 추가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위탁 생산으로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 국가로 발돋움할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 분야에서의 한미 협력도 촉진될 전망이다. 미국은 현재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의약품 ▲차세대 이동통신 등 44조원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담은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첨단제조업 분야에서의 한미 협력을 위한 로드맵을 합의하고, 해외 원전 시장에 한미가 공동으로 참여하기로 하는 등 다각적인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통령 또한 정상회담 후 미국 현지의 SK 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며 한미 협력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순조로웠던 회담, 이후 영향은 주목해야

 

대중국 압박을 기치로 내세운 바이든 정부와의 첫 회담인 만큼 한국이 양자택일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해 왔으나, 현재는 회담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평가가 대세다. 일각에서 제기된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성향 차도 두드러지지 않은 분위기다. 향후 큰 변동이 없는 한 한미 양국 사이에 안정적인 협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계에서는 이번 회담을 두고 엇갈리는 총평을 제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한미 회담에 “성과 30에 실망 70”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에 비해 백신이나 외교 측면에서 얻어낸 성과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상상 이상의 엄청난 성과였다”며 호평했다. 이번 회담이 한미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의 국제적 균형과 각종 현안에까지 어떤 파급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최승원·김원겸 기자
20201500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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