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비방과 비판 사이

지난 31일 본교 교지 고대문화 주체의 인권좌담회가 열렸다. 그리고 행사 이틀 전 연사 명단 공개와 함께 큰 파문이 일었다. 고파스, 에브리타임 등 다양한 SNS에서는 은하선 씨의 강연에 대해 “그런 사람이 강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등록금으로 왜 그런 인물을 초빙하느냐”와 같은 불만이 터져나왔다. 연사의 과거 발언이나 기고문을 바탕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던 반면, 타교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방’을 앞세우는 목소리도 있었다. 페이스북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연세대학교의 승리다”와 같은 연사에 대한 폄하와 반발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10월 29일에서 11월 2일의 기간 동안 진행됐던 ‘고려대학교 인권주간’의 일환으로 지난 2일 진행됐던 신지예 씨의 강연 또한 논란이 휩싸였다. 고파스 커뮤니티에는 “은하선 신지예 연속공격에 어디 가서 고대라고 얘기도 못하겠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연사에 대한 비방이 이어졌다. 신지예 씨의 과거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글도 있었지만, 단순히 “창피하다”, “화난다”와 같은 감정적 반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강연 포스터가 훼손되는 등 논의 없는 반발이 이어졌다.

이전 발언, 행적을 토대로 연사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연사의 발언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공론장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는 곳이고, 이러한 의견들이 논리에 따라 검토되는 곳이어야 한다. 공론장에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에는 상당히 강력한 지위가 부여된다.

강연에 대해서도 단순히 연사에 반발하고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기 보다는 공론장 내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은하선 씨의 강연이 ‘혐오세력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했고, 물론 혐오표현에까지 ‘표현의 자유’를 외칠 수는 없다. 그러나 좌담회에서는 혐오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진행자가 혐오표현은 절대 금물이라고 주의를 주고, 질의응답 시간을 제공하는 등 민주적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연에서 은하선 씨는 자신의 학부 시절 페미니즘 운동 경험을 공유했다. ‘성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성차별적인 내용을 발견,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차별을 담은 강의자료를 정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대자보 등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면서 강의의 폐강에 기여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 후, 페미니즘 운동의 과정, 역사를 기록하고 아카이빙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끝을 맺었다.

한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공론장의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공론장 내에서 차근히 검토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강연에 있어서도, 행사 자체에 반발하기 보다는 내용을 들어본 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은하선 씨의 강연 내용은 혐오표현을 담거나 갈등을 조장하기 보다는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감정적 비방은 건설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은하선 씨의 기존 발언과 강연 내용에 대한 논리적 접근만이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강연회들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SNS라는 공론장은 감정적 반발로 얼룩진 모습을 보였다. 강연에 대한 논리적 접근보다 ‘창피하다’와 같은 감정적 반응이 쇄도하는 현상은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SNS상 대중의 감정의 표출도 필요하지만, 공론장의 핵심은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반발, 비방과 포스터 훼손은 폭력에 불과하다. 감정과 논리를 구분함으로써 ‘비방’과 ‘비판’의 경계가 뚜렷해지고, 주어진 의제에 대한 효과적인 담론이 가능할 것이다.

김동현 기자

kdh99060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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