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긍정의 이면

긍정적인 성격이 장점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라면 무거웠던 고민도 한순간에 가볍게 만들어버릴 수 있었고, 하루도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이런 태도 덕분이었는지 입시에 대한 압박으로 힘들다고들 하는 고등학교 3학년도 행복 속에서 그 일상을 완전히 누리면서 보낼 수 있었다. 모의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할 때면 지금이 수능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빠르게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며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력함을 느낄 때면 그날 기분을 좋게 만들었던 사소한 일을 떠올렸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 순간도 졸업 후엔 그리워할 날이 있을 거라며 매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반수를 한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본인은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는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놀랐었다. 필자도 반수를 했지만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산 시간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만족했었다.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예민함과 강박증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필자에게 긍정이 가져오는 여유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했기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고, 있더라고 모두 잠깐에 그쳤다. 이런 태도는 최근까지 지속돼왔다. 그러나 너무 과했던 것일까. 고민을 사라지게 했던 긍정이 이제는 고민을 가져왔다.

 

지난해를 마무리하며 1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과 해낸 일, 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며 대학에서 첫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렸다. 여러 동아리에 지원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공모전을 준비하기도 했으며, 2학기 때는 한 유튜브 채널의 입사 면접을 보기도 했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나름 바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결과적으로 이뤄낸 것은 딱히 없었다. 물론 각각의 도전 과정에서 얻은 무언가는 있었지만 결과가 없었다. 심지어는 1년 동안 진로 탐색을 해보자 했던 다짐에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더 망설이게만 될 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크게 실패한 적이 없어서, 생각했던 방법이 안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원하는 걸 대부분 얻어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아니면 말고’, ‘괜찮아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동아리에 떨어졌을 때도, 대외활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때도, 무언가 해내지 못한 순간마다 시도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경험이라 여기며 이 경험을 밑거름으로 다른 일을 하자고 생각하며 넘겼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생각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했었고, 모든 일을 너무 가볍게만 취급하도록 했다. 1학기가 끝났을 때도 비슷하게 무언가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3년 동안 불안할 때마다 감정을 쏟아냈던 일기장을 더는 펼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며 위안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당당하게 결과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처럼 예민하고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모든 걸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불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회피하고 또 합리화했다.

 

긍정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을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긍정적인 태도는 삶에 여유를 불어넣어 주고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긍정이란 이름으로 마주해야만 할 현실을 회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괜찮을 거란 위로와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용기는 때론 독이 된다. 가끔은 현실을 인정하고 건전한 비판과 함께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정서영 기자
kiger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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