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나는 당신의 ‘그것’이 부럽습니다

최근 자신이 현재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부러움을 일회적인 감정으로 지나치고 싶지 않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에 고등학생 시절 기억을 꺼내 펼쳐봤다.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대학 입시는 분명 스트레스를 주는 큰 허들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어른이 온실 속의 화초가 되고 싶지 않다며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갔다가 사회에 치여 고개를 떨궜던가. 이런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도 자신을 계속해서 힘들지 않다고 세뇌했다. 어른의 힘든 사회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금 하는 것조차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는 계속해서 실패만 경험하게 될 거라며 지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가진 능력과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주변으로부터 받아왔기에 스스로에겐 지치고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어 보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앞으로만 달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가 많이 성숙해졌다는 거만한 자부심도 차올랐다.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이라는 건강한 취미를 만들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자 했다.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일부러 힘들다고 정평이 난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단 하루도 무언가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게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곤했지만 버텼다. 더 발전한 내일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뒤에 숨어 하루하루를 버텨 냈다.

그동안 번아웃이 왔다며 아픔을 호소하는 친구들에게조차도 필자는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조차 못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이해하지 못한 힘듦도 존재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남에게는 힘들 수도 있다며 관대함을 베풀고 위로를 건네면서 정작 스스로는 혹독하게 다그쳤다. 체력과 정신력만 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세뇌하며, 처음으로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애써 모른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절대 지치지 않을 거라 다짐할수록 더욱더 벅차게만 느껴진 것은 왜였을까.

지금까지 높은 자존감과 오만함 사이에서 수차례 길을 헤맸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렸다. 힘들어 보인다며 걱정해주는 친구에게 마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고마웠으면서도 애써 괜찮다며,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겼다. 조금 쉬어가자며 같이 발을 맞춰주겠다는 친구의 마음씨가 무엇보다 따뜻한 위로로 다가왔으면서도 느리게 가고 싶지 않다는 욕심만 앞섰다.

이런 상황에 주변에서 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 중 유독 한 문장이 뇌리에 깊게 꽂혀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신이 아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무슨 대단한 말인 것처럼 포장했는지 의구심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정작 나는 특별하고 나는 힘들지 않을 거라고 자만해왔던 것일까. 왜 남의 힘듦과 비교하면서 내가 겪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부했을까. 이러한 생각을 거치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고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듯하다.

더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에 소홀하지 말자. 힘들면 힘든 대로 받아들일 줄 알고 쉬어가는 법도 배우자. 힘들다고 지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나약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을 수 있으니 남들보다 용감한 것이다. 용감하게 자신의 힘듦을 털어놓은 이들을 내면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성숙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민건홍 기자
celestial@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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