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머핀의 법칙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가 바꾼 달갑지 않은 일상도 그중 하나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기대 없는 하루를 넘기다 보니 매미가 악쓰는 계절이 왔다. 여름도 어느 것 하나 반길 것 없이 지나갈 거라 예상했건만, 작고 보드라운 생명체가 변화를 불러왔다. 7월 초 임시 보호 중이던 스트릿 출신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처음 만난 날 나를 피해 침대 틈 사이로 숨던 모습이 선한데 벌써 두 달째 이 친구와 함께하고 있다. 이름은 머핀. 등에 있는 무늬가 머핀에 박힌 초콜릿 같아서 지은 이름이다. 계속된 무기력함에 지쳐갈 때쯤 머핀이를 만났다. 머핀은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친구다. 반복과 익숙함이 주는 좌절에 굴하지 않는다. 매사 새로움을 찾고 또 함께하는 하루를 누릴 줄 아는 친구다. 나에게 없는 것들이 머핀이에게 있다. 머핀을 지켜보며 찾아낸 무기력을 직면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머핀은 동기와 두려움의 크기를 재지 않고 새로운 것에 뛰어든다. 집 안에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면 일단 뛰고, 잡고, 문다. 동물적 본능에 기반한 행동이지만 동시에 머핀의 태도는 무기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노력과 닮아있다. 대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망설인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 동기가 초라하다고 느껴지거나 낯섦 자체가 두려울 때 새로움을 포기하고 비좁아도 안락한 무기력을 택한다. 이때 머핀이가 새로움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봐야 한다. 내 동기가 타인보다 거창하지 않아도 신선한 긴장감을 감수할만하다. 완고한 무기력에 금을 내는 것이 바로 ‘다른 것’이다. 일상에 미약한 뒤틀림을 주는 시도가 숨구멍을 만든다. 과도한 자기 검열을 통해 두려움에 무게를 싣는 과정은 필요치 않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며 원인 모를 무력함의 굴레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머핀의 방식을 삶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새로움의 의미는 나중에 찾자. 우선 뭐든 시작하자.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하는 시간 모두 온전한 자신으로 있는 동물이 고양이다. 머핀도 그렇다. 집사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원치 않는 접촉에는 몸을 피한다. 머핀의 선택적 호의가 밉지 않다. 홀로 빵 굽는 시간이 머핀이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나 자신을 전시하는 것 또한 우리가 무기력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소셜미디어도 괜찮다. 무기력이 자아내는 우울감은 쉽게 전파되기에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할 때는 밝고 건강한 상태를 보이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에 타인이 바라는 나로 위장하는 것은 무기력을 회피하는 일이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내 모습에 괴리가 커질수록 우울을 동반한 무기력은 더 심해진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울을 감추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나조차 타인이 이해하고 싶은 대상일 수 있다. 무리해서 손길을 거부하지 말자.

세상에도, 나에게도 악재가 몰려오며 2020년은 머피의 법칙에 꼭 들어맞는 단편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잘못될 일은 꼭 잘못되고야 마는 머피의 법칙 말이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가 그랬다. 왜 우울하고 무기력하냐는 질문에 잘 답하지는 못하지만, 꼭 잘못된 쪽으로 숨어버리는 내가 참 답답했다. 원체 내가 잘못되어서 모든 게 잘못된 건 아닐까 자문하며 고민했다. 이 상태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두렵던 차에 머핀의 법칙이 작용했다. ‘행동 없는 확신은 있을 수 없다’는 법칙이다. 뭐든 바로 마주 보고 마는 머핀이를 보며 무기력을 직면하는 방법을 찾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머핀의 법칙이 꼭 들어맞았으면 좋겠다.

 

 

이채윤 기자

dlcodbs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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