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흩어진 개미들은 어디에

흔히 올림픽이라 하면 올림픽공원이 있는 송파구 방이동이나 올림픽 선수 기자촌 아파트를 떠올린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가 거주하는 송파구 문정동 역시 88올림픽의 수혜를 입은 곳 중 하나였다. 논과 비닐하우스가 가득했던 이곳엔 올림픽 관계자를 위한 올림픽훼미리아파트가 들어서고 여러 생활편의시설이 구축됐다.

동네의 성격은 문명의 수혜로 급속히 변화했다. 하지만 거대한 아파트 숲과 유통단지 사이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있었다. ‘개미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그곳은 급속화된 강남 개발 속 갈 곳이 없던 이들이 모인 마지막 미개발지였다. 개미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너무도 척박했다. 수도와 전기는 제공되지 않았고, 무허가 건물에는 주소도 없었다. 그러나 개미마을 주민들은 개미처럼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생활을 영위해갔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꾸렸고, 논두렁 위에서 성탄 미사를 개최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15년 전 개미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이명박 정부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며 도시 개발의 바람이 불었고, 그들의 터전이 서울동부지검 신청사가 건립될 부지로 결정됐다. 새로운 법조 단지의 조성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새로운 상권을 얻었고 부동산 가치의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철거민으로 전락한 개미들에게 개발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시공을 맡은 SH공사와 정치인은 주민들이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이므로 임대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40여 세대 중 200세대 이상 이 보상안에 동의했지만, 40여 세대의 주민들은 토지보상법에 따른 분양아파트 입주권을 요구하며 천막 투쟁을 진행했다. 상반된 입장을 좁힐 수 없던 양측은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서울시의회는 SH공사가 개미마을 주민들에게 특별 분양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하라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SH공사는 이를 무시한 채 철거 공사를 지속했다. 주민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수년을 끌어온 철거 공사는 2011년 마무리됐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임대아파트로의 이주에 동의한 주민들의 근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보상안에 반대한 40명 주민들의 거처는 현재 확인할 길이 없다.

이제 개미마을이 있던 곳엔 거대한 법조 단지와 오피스텔, 다양한 상권이 들어섰다. 많은 이들이 유입돼 활기는 되찾았지만 개미마을 특유의 사람 냄새는 온데간데없다. 거대한 빌딩 숲속 어딘가 생경하던 개미마을은 도시가 숨기고자 한 빈부 격차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장소였다. 이들이 순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도시는 그들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워냈다.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곳엔 포크레인의 마찰음과 주민들의 울음소리만이 남았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체하던 매스컴의 관심은 철거 공사 이후 사라졌다. 건너편 아파트서 쓸쓸하게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을 보며 이 안타까운 사건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나 역시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문명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을 법조 단지 근처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 동네가 살기 좋아졌다고 되뇐다.

도시 개발에 치여 찾아온 마지막 보루마저 도시 개발로 잃은 이들은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도 삶의 터전을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을 그들에게 세상은 무서우리만치 무관심하다. 그들의 외침을 횡단보도 너머에서 방관하기만 했던, 그들의 사라진 자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비겁한 시민이지만 염치를 무릅쓰고 묻고 싶다. 흩어진 개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을 지켜야 할 국가와 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준범 기자
fred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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