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47번 버킷리스트

스무 살 새해를 맞이한 기념으로 20대에 하고 싶은 것들을 눌러 담아 50개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다. 버킷리스트 47번이 ‘알바해보기’였고, 졸업 후 필사적으로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뒤적이며 업종 상관없이 20~30곳을 지원했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알량한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해본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던 사회초년생을 원했던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느끼게 된 취업난에 허탈해질 때쯤 면접 보러 오겠냐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첫 알바는 친환경 식료품 판매 매장의 캐셔였다. 시급 만 원에 4대 보험이 가입된 일자리라는 말에 혹하기도 했지만, 작은 책상에 오랜 시간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즐거움도 잠시, 4~5시간 내내 서 있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점장님께선 틈틈이 앉아 쉬라고 하셨지만 상품진열, 재고정리, 계산 등을 하다 보면 종일 서 있다가 퇴근하기 일쑤였다. 이 매장에서 3~4개월 정도 일하며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걸 육체노동의 고단함으로 깨닫게 됐다. 이후 적어도 앉아서 일해보자는 다짐과 함께 학원 조교 일을 알아봤고 영어학원에서의 조교로 두 번째 알바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사무직을 선호하는 이유에 공감하며 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갑작스레 공석이 된 데스크 업무의 후임을 구할 때까지 이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부장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지난 겨울부터 학원 데스크 업무를 맡게 됐다.

어쩌다 맡게 된 업무였지만, 시급 받는 알바생인 것 치고 마치 직원처럼 일에 진심이었다. 한창 많이 일할 때는 주 30시간 정도 일했는데 실수를 하면 크게 자책하는 편이어서 실수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점차 더 많은 일을 맡게 됐다. 이 정도면 나름 잘하고 있다고 자만할 때 실수는 생기고 말았다. 주된 업무가 전화응대와 결제, 학생 관리 등이었는데 담당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에서 착오가 생겨 놓친 부분이 생겼다. 학부모님의 컴플레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경험치 0인 사회초년생이 받아내기엔 다소 어려웠던, 과격한 전화였다. 하필이면 부장님이 외근이실 때 일이 생겼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다시는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을 느꼈다. 아래는 그때 당시 써놨던 글의 일부다.

‘어머님께 전화가 왔고 말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게 이런 것이구나 오늘 제대로 느꼈다. 두 번의 통화가 이어졌고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어 담당쌤께 전화를 돌렸다. 나보다 더 심한 욕을 들은 담당쌤이 통화 후 아무 일도 없던 마냥 다시 수업하시는 걸 보니 울지 말아야겠구나 다잡았다…(중략) 왜 분풀이의 대상이 전화 수화기 너머에 있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을까. 사회 나가면 이보다 더한 일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사회에 있는 건지 울컥했다.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누군가를 모욕해도 되는 갑의 위치를 산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런 위치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비정상이잖아. 얘기가 끝나고 다시 데스크에 앉았는데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너무 무섭다.’

과외와 알바를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적은 많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7개월 동안 전화응대를 하고 또 이 일을 겪으면서 감정노동도 육체노동만큼, 어쩌면 더 쉽지 않은 일임을 절실히 느꼈다. 성인이 된 것에 들떠 ‘알바해보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만 해도 이런 파란만장한 일들이 펼쳐질지 몰랐지만,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기에 죽기 전 꼭 해볼 만한 버킷리스트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작년부터 시작해 이달 말 퇴사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이제야 47번 버킷리스트를 후회 없이 지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누가 버킷리스트에 ‘알바해보기’를 작성한다면 버킷리스트는 행복만 가득한 것으로 담으라고 말을 전하고 싶다!

김하현 기자
dop3568@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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