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수많은 ‘우영우’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얻으며 주인공이 가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주인공으로 설정된 자폐인 우영우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현실의 수많은 이들의 삶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The HOANS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알아봤다.

지난달 18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신임 변호사 ‘우영우’의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과거 매체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으로 높은 암기력, 우수한 미적 능력 보유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서번트 증후군에 집중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나타내곤 했다. 그러나 우영우는 타인의 관심사와 상관없이 고래라는 고정된 관심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변화에 민감해 항상 김밥만 먹는 등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보편적인 증상도 보여줬다. 또한 사회 초년생이자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폐인의 모습을 그려내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긍정적 인식을 심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그 가족의 고난을 지나치게 미화해 현실 속 대다수 자폐인의 삶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신경 발달장애의 한 범주로 아동기부터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보이고 행동 패턴과 관심사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유아기에 부모와 눈 맞추기가 되지 않고 언어발달이 또래보다 늦으며 정서적 공감이나 교류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정된 바가 없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증상과 중증도가 다양한 만큼 선천적인 뇌 기능의 이상을 포함한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과거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이하 DSM) 제4편 DSM-4와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장애 ▲레트 장애 ▲소아기붕괴성장애 ▲상세 불명의 발달장애로 구분하고 이들을 전반적 발달장애로 불렀다. 그러나 2013년 DSM-5는 각각이 독립된 장애가 아닌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고 이를 묶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개정했다. 이들 각각의 증상이 유사하고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폐의 종류를 명확하게 선 긋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전반적 발달장애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통칭했기 때문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사이에서도 그 증상과 심각도는 상이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70~80%는 지적장애 및 언어장애를 동반하지만 우영우와 같은 예외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DSM-5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심각도를 3단계로 구분한다. 단계1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맥락에 따른 반응에 어려움을 겪는 정도를 포함한다. 반면 단계3에 해당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행동을 저지했을 때 머리를 박거나 손을 무는 등 강한 저항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적 상호작용 및 상호 소통 의도의 존재 유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만큼 자폐인의 사회 적응은 쉽지 않다. 그러나 초기 발견 및 치료를 통해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 전반적 발달장애이기에 ▲응용 행동 분석(이하 ABA) ▲언어치료 ▲사회기술 훈련 ▲약물 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병행된다. 또한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신경 발달이 결정되는 시기인 만 3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인향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만 3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하면 아이 상태가 더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 시기를 놓치면 아이 상태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의 지원은

 

국가 정신건강 정보 포털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성인이 된 후 1~2% 정도만 직업을 갖고 독립된 생활이 가능하다. 간헐적으로 가족이나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자립할 수 있는 비율은 5~20%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자폐인은 보호자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대게 평생에 걸친 치료가 필요해 지속적인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자폐인 가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국가적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현재 정부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또는 보호자를 대상으로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 ▲청소년 발달장애 학생 방과 후 활동 서비스 ▲발달장애인 부모 상담 지원사업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는 성인을 대상으로, 청소년 발달장애 학생 방과 후 활동 서비스는 만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삶의 질 향상과 자립 생활 지원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발달 장애인은 자폐성 장애인과 지적 장애인을 통합해 지칭한다.

발달장애인의 보호자가 가지는 돌봄 부담감·우울감 완화를 위해 부모 상담 지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는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복지법상 등록된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며 활동 지원사를 가정으로 파견해 ▲이동 보조 ▲방문목욕 ▲방문 간호 등의 서비스를 일정 시간 제공한다. 각 서비스는 모두 사회보장제도에서 사용되는 상품권인 바우처를 지급한 후 서비스 이용 시간에 따라 금액을 차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외에도 지난달 22일 발달장애인 권익보장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인 ‘다함께’가 출범했고 보건복지부가 영유아 대상 국가건강검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항목 포함을 예고하는 등 각종 대응책이 마련됐다. 영유아 대상 국가건강검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포함되는 것은 자폐인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조기 발견 및 이른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현실과 마주하는 자폐인 가정

 

지역과 기관에 따라 자체적으로 가격이 책정돼 갈수록 치료비 부담을 키우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특히 ABA 치료센터에 다닐 경우 치료비용은 옵션에 따라 월 200만 원에서 8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자폐는 질환이 아닌 ‘장애’이기 때문에 완치가 아닌 개선을 목표로 장기적이고 잦은 치료를 요구한다. 이에 자폐인 가정의 경제적 곤란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한국응용행동분석전문가협회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발달장애 치료는 시간이 많이 투입돼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하루 6시간씩 주 4~5일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며 “치료 시간이 길다 보니 비용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대부분의 치료 센터가 수도권에 편중된 점 또한 시간적·경제적 비용 부담 가중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발달장애인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를 지정·운영 중이지만 전국 10곳에 불과하다. 2020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에서 진료받으려면 평균 석 달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역별 치료 수요에 적절한 국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가족들의 부담은 더 크다. 소통이 어려운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돌발행동으로 인한 위험성 때문에 그룹 활동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2~4인이 조를 이뤄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 등의 공공서비스 이용에도 어려움이 존재한다. 가정 방문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전체를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통해 장애인을 1대1로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도 명쾌한 대안은 아니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위한 종합조사 문항은 ▲보행·배변·식사 등의 일상생활 동작 ▲청소·대중교통 이용 등의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 ▲자해·공격 등의 인지 행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신체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발달장애인으로 구분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활동 지원 서비스 시간을 배정받기 불리한 이유다. 또한 돌봄 난이도에 따른 수가 차등 없이 시간당 단가를 지급하다 보니 활동 지원사들이 발달장애인보다 신체장애인을, 중증 장애인보다 경증 장애인을 선호하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심각도가 높을수록 활동 보조인을 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벽에 부딪힌 사회일원으로의 독립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일반 학교 내 전일제 통합학급 ▲일반 학교 내 특수학급 ▲특수학교 중 한 곳을 선택해 교육받는다. 자폐 아동이 전일제 통합학급에 진학하는 주된 이유는 자폐 아동의 일상생활 학습 및 사회성 증진과 졸업 후 사회 적응을 위해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도훈아, 학교가자!> 저자인 김윤정·김학인 부부는 아이를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모두 전일제 통합학급에 보냈다. 김윤정 씨는 저서를 통해 “학교는 학문적 지식을 배우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등 사회 적응을 위한 곳”이라며 “이들이 우리 아이를 수용해준다면 더 많은 연습과 경험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반 학교의 교사는 장애 학생에 대한 교육 경험이 부족하며 일반 학교에 재학하는 비장애인 학생들도 자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자폐인은 전일제 통합학급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의 교사 김양주 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담임교사의 무관심과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상처받은 학생”에 대해 언급하며 “통합학급에 다니는 장애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전학 오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굉장히 많이 온다”고 전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는 학생이 특수학교에 다니고자 해도 다양한 어려움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서울 25개의 자치구 중 특수학교가 없는 구가 8곳에 이를 정도로 특수학교의 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자치구 내 특수학교가 존재하더라도 장애 유형이 맞지 않으면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2022년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학교 재학생의 약 50%가 통학에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린다. 특수학교를 확충하면 자폐 학생의 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으나 집값 하락을 우려해 특수학교 신설에 반대하는 주민들로 인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자폐인은 학교 교육 과정을 잘 마쳤더라도 일자리를 두고 다시 난관에 부딪힌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2021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중 근로자는 임금, 비임금을 합해도 29.3%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올해 7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률 약 62%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취업에 성공한 자폐인도 상대적으로 적은 근로 시간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자립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동일한 조사에 따르면 무급가족종사자를 제외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83.5만 원이다. 2022년 기준 중위소득 및 생계·의료급여 선정기준과 최저보장수준에 따른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8만 원가량에 달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자폐인의 비율도 3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정책만큼 절실한 지역사회의 관심

 

이러한 어려움 탓에 정부 차원의 지원 시스템뿐만 아니라 민간에서의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자폐인의 삶은 사회 속에서 더욱 험난하다. 지난 7월 대한항공은 비행기에 탑승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기내를 돌아다니자 해당 장애인과 그의 어머니에게 이륙 전 하기(下機)를 요구했다. 대한항공의 입장문에 따르면 해당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탑승교와 비행기 사이를 뛰어다녔고, 착석 요구를 했지만 따르지 않았으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부를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폐인 보호자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승무원의 착석 요구를 받은 적이 없고 예약 당시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알릴 방법이 없었으며 탑승 과정에서 자녀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지속해서 언급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 측과 보호자의 주장이 달라 이를 두고 적절한 조치였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논란과는 별개로 이 사건으로 인해 항공사를 비롯한 민간 기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함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추가 조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다. 국내 주요 항공사의 장애인 승객 지원 서비스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신체장애인에게 집중돼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에 대한 별도 체계가 없다. 반면 영국항공과 아일랜드 국적기인 에어링구스 등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승객을 위한 별도 시각 지침이 준비돼 있다. 미국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보안검색대 통과와 항공기 탑승 연습 등 비행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외국의 사례처럼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에 대한 탄탄한 시스템 구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중의 낮은 이해는 자폐인과 그 가족에 또 다른 상처를 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가 천재적인 암기력을 지닌다는 설정은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이다. 현실에서는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약 70~80%에 이르며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띠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남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 있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확산하지 않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배성은 씨는 “요즘 주변 사람에게 아이의 재능을 찾아보라는 말을 듣는다”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자폐인과 그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흥행으로 우리 사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데 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아직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사회와 잘 화합해 생활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상 자폐인에게 드러나는 증상과 삶의 모습은 천차만별이기에 ‘우영우’라는 하나의 캐릭터가 모든 자폐인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자폐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한 사회구성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서영·권예진·김채현·조유솔 기자
kiger21@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