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정외 학생사회

지난 9월 익명의 정외과 학생 6인이 정치외교학과 공론장의 비민주성을 주장하는 대자보를 게시해 반향을 일으켰다. 학생회장단이 해명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추가 반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쉽게 식지 않는 모양새다. 사건 진행과 논란의 핵심 쟁점을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지난 9월 17일 정외 집행부는 ‘아프간 난민과의 연대’를 주제로 공론장을 소집했다. 공론장이란 정외과 명의로 사회 연대를 추진할 때 학생들 간 토론을 통해 연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로, 소집과 의결 과정은 정외과 일반규칙인 ‘연대 및 연서에 관한 규칙’에 의거한다. 정외 집행부의 공론장 소집은 지난 4월 공론장을 처음 제도화한 이래 두 번째다. 최소 정족수인 정회원의 1/10을 넘겨 개회한 이 날 공론장은 ▲찬성 16표 ▲반대 1표 ▲기권 5표를 기록하며 연대를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공론장 소집·진행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음을 제기하며 화제가 됐다. 지난 9월 30일 익명의 정외과 학생 6인은 대자보를 통해 “집행부 내 특정 임원들의 반민주적 행위를 규탄한다”고 발표하며 집행부가 공론장 추진에 있어 연대를 통과시키기 위해 편향적으로 행동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학생회장단은 해명과 함께 개선을 약속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연대 추진을 중단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대자보와 학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쉽게 불식되지 않았다.

 

외반 학생들의 여론은?

 

정외 학생사회에서는 크게 ▲공론장의 적절성 여부와 ▲집행부의 특정 정치·사회적 가치 지향성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본지는 해당 논쟁에 대해 일반 학생들의 여론을 확인하고자 10/1~10/7의 기간에 정외 학생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정외 각 학번 단톡과 고파스 학과 ‘꽈톡’에 게시된 링크를 통해 진행됐으며 총 73명의 학생이 설문에 응답했다.

공론장과 관련된 문항에서는 학생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공론장이 의견 수렴에 부적합했다는 의견이 근소한 우위를 보였다. “이번 공론장(9월 공론장)이 정외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충실했는가”를 물은 질문에는 ▲예: 32.4% ▲아니오: 35.3%로 의견이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외반 공론장 제도가 학우들의 의견을 반영하기에 적합한 구조인가”라는 질문에는 ▲예: 30.9% ▲아니오: 52.9%로 부정적인 응답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집행부의 특정한 정치·사회적 가치 지향에 관한 문항도 여론조사에 포함됐다. “집행부의 그러한 지향이 학우들의 학과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물은 질문에 ▲참여를 촉진했다: 11.9% ▲저해했다: 52.5%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22%로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으리라 보는 응답이 다수였다. 그러나 집행부가 정치·사회적 가치가 접목된 활동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결과가 상반됐다. “과 행사 혹은 학우 대상 정책에 정치·사회적 가치를 접목하는 행위”에 대해 45.2%가, “정치·사회적 가치 표현에 목적을 둔 활동을 주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63%가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이 점에서 학생사회의 불만이 단순히 ‘집행부가 정치·사회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제기되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론장,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본지는 집행부와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 간의 의견 차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취재 활동을 진행했다. 대자보를 통해 공론화된 주요 쟁점은 ▲집행부가 공론장 의제에 대한 찬성 입장을 취하고 연대 통과를 위해 사전에 준비했는지와 ▲공식 발표된 대표소집요구인이 실질적인 소집 주체가 맞는가였다. 스스로 정외 집행부원이라 밝힌 익명의 학생 A(정외 21) 씨는 “공론장 개회 전에 인권연대국 소속 국원들을 발제팀과 연대팀으로 나누고, 발제팀이 사실상 소집요구서 작성과 공론장 개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대에 내심 반대했지만 같은 집행부 학생들이 일을 추진한다는 분위기상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기 쉽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에 정외 학생회장단 측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발제팀의 사전 준비가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에게 연대에 관한 사항을 원활하게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며, 연대팀은 인원이 배정됐던 것은 사실이나 공론장에서 연대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는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대기 상태였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한 공론장 소집 공지 당시 소집요구인이 일반 학생으로서 소집을 요구하지 않고 집행부와 논의를 거치며 공론장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진한 부분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며 “학생회장단 역시 아쉽고 추후 공론장을 개회할 때는 보완돼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론장 제도 입안 과정이 일반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기 부족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외 집행부 측은 지난 4월 ‘연대 및 연서에 관한 일반규칙’ 제정 당시 운영위원회의 일반규칙 제정 의결을 통해 연대 규칙을 확정했다. 그러나 현 학생회장단 출마 당시 선거운동본부였던 ‘새벽’의 공약을 정리한 정책자료집은 2021년 1학기 ‘개강총회’에서 ▲사회연대 대상 건의 방식 ▲공론장의 형태 ▲사회연대 조건을 확정하겠다고 명기했다. 지난 3월 정치외교학과 개강총회가 성사됐으나 공약과 달리 총회에서 연대 규칙에 관한 내용이 논의되지 않은 것이다.

총회는 일반 학생들 모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일반규칙은 운영위원회에 소속된 집행부 임원만이 의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약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듯 공약의 핵심 부분이 수정됐지만 이를 알리는 집행부 공지는 따로 확인할 수 없었다. 운영위원회에 앞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했지만 참고사항이었고, 수렴 기간도 약 3일에 그쳐 복잡한 회칙과 관련해 의견을 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반규칙을 활용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일반규칙은 총학생회 및 관련 산하 기구에서 ‘규칙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을 규율하기 위해 제정’하는 학생회 규칙의 일종으로 단과대나 과 학생회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일반규칙이 사용된 선례로 미루어 볼 때 공론장 관련 규칙을 이로써 통과시키는 것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본지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측에 문의한 바에 따르면 일반규칙은 회칙과 세칙보다 중요도가 낮은 사항을 규정한다. 총학생회의 경우 ▲산하기구 회칙이 부실할 경우 이를 보조하는 회칙·준칙 ▲게시물 관리 자치규약(대자보 등) 등을, 애기능 동아리 연합회는 ▲공용공간 사용 규칙 ▲활동보고서 관련 규칙 등을 일반규칙으로 제정했다. 중요한 절차적 규정보다는 주로 행정적인 업무나, 회칙 및 세칙에서 이미 규율한 사항을 세부 규정하는 데 일반규칙을 활용한 것이다.

정외 학생회장단 측은 이와 같은 문제 제기에 “정책자료집에서 개강총회를 통해 공론장을 제도화하겠다는 설명은 Q&A와 같은 형식으로 학우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에 해당했다”면서 “공론장은 처음 시도하는 정책이니만큼 바로 회칙으로 상정하기보다 일종의 시범 기간으로 일반규칙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학생회칙 상 일반규칙은 총회가 아닌 운영위원회에서 제정하는 것으로 돼 있어 그렇게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론장이라는 제도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명문화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학우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서만 통과될 수 있는 공론장 자체를 봐주십사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확인 결과, 당시 학생회장 측의 설명과 달리 정책자료집에서 개강총회를 통한 공론장 제도화를 설명한 부분은 Q&A를 통한 예시 형태의 서술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 계획의 형태로 기재됐다. 또한 공론장 제도를 시범 기간으로 삼기 위해 총회 의결이 아닌 일반규칙으로 제정했다면, 정외 학생들에게 시범 기간 관련 사항이 공유돼야 했겠으나 두 번의 공론장을 거치는 동안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공지는 없었다. 무엇보다 공약과 달리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론장의 민주적 정당성이 약화됐다는 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며, 새로운 제도의 시범 적용을 위해 일반규칙을 사용하는 것은 총학생회 회칙상 선례를 찾기 어렵다. 공론장에 따른 논란이 현재 진행형인 이유다.

 

누적돼온 학생사회의 불만

 

아울러 여론조사에서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학과 내 숙의에서 분위기에 반하는 의견을 취해도 학과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으리라 신뢰하는지”를 물은 질문에 ▲예: 42.5% ▲아니오: 57.5%로 ‘아니오’ 응답자가 15%P 앞선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었다. 추가 취재 결과 외반 학우들이 지적한 사항은 단순히 이번 공론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응답자 사이에서 흔히 문제가 제기된 사례는 각각 지난 2월, 5월 열렸던 새내기 배움터(이하 새터)와 1차 공론장이었다. 1차 공론장에 참여했던 익명의 학생 B(정외 20) 씨는 “연대에 찬성하는 기조의 자료는 노조 측 홍보영상까지 올라올 정도로 풍부했던 반면, 중립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자료는 굉장히 부실했다”는 말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한 “공론장에 참여했을 때 연대를 ‘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 여부를 주로 논하는 것을 보고 이미 대세가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현재는 학과 관련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터에 관해서도 여러 학생이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올해 새터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익명의 학생 C(정외 20) 씨는 “새터 자료집에서 여성주의와 관련해 조금 색채가 강하거나 당위적으로 표현된 부분들이 있었다”며 “새내기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라 한쪽 가치만 담기보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새내기로 새터에 참여했던 익명의 학생 D(정외 21) 씨는 “자료집을 쓴 선배들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솔직한 내 생각보다 분위기와 일치되는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친목 도모 같은 활동만을 주로 상상했었는데 정치·사회적인 교양 활동이 끼어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변화를 위해선

 

공론장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사회연대 추진에 있어 집행부 중심 논의를 타파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데 있었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다가왔다. 이전의 학과 활동에서 이미 학생들과 집행부 간에는 인식 차이가 누적되고 있었고, 이번 공론장은 여론이 분출하는 발화점으로 작용했다. 공론장 자체에서도 추진 과정에서 절차적 적합성을 놓고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론장의 본래 취지는 옅어졌고 학생사회의 불안은 가중됐다.

외반 구성원들이 실망한 원인은 집행부 측이 단순히 정치·사회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학과 활동에 참여할 의욕을 잃어 갈 수밖에 없었다. 집행부는 의견을 교환할 물리적인 장소는 구축했으나 그러한 분위기까지 조성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참여를 기대하려 한다면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공론장 논란으로 벌어진 갈등 이후 학생사회의 신뢰와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승원·유민제·이승준 기자
20201500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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