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의 판결, 배상은 미지수?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1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양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판결문의 핵심 쟁점과 이후 배상 가능성에 대해 The HOANS가 알아봤다.

13년 만의 대법원 판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 논쟁은 고(故) 여운택 씨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철강업체인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 상고심에서 최종 패소한 후 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된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제소했다. 그러나 1, 2심 모두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원고들이 청구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 재판소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통해 원고들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의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이를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상고심이 접수된 2013년 이후 약 5년만인 지난 달 30일 신일철주금의 1억 원 배상책임을 최종 확정지었다. 다수의 대법관이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으며 청구권 협정이 개인의 ‘위자료’ 청구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일 양국은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판결에 반발하며 국제 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나 한국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미뤄졌던 유사한 사례의 대(對)일본기업 소송들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일협정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체결된 한국과 일본 사이의 협정을 일컫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한일기본조약)이다. 한일 협정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사안은 개인청구권의 문제다. 개인 청구권에 대해 한일기본조약의 부속 조약인 청구권협정 제 2조 3항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요 쟁점 파헤치기

  이번 대법원 심리의 주요 쟁점은 크게 4가지였다. ▲원고인 여운택, 신천수 씨에 대한 일본법원 판결의 효력과 기판력 ▲피고인 신일철주금이 구(舊)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한 여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는지의 여부 ▲피고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할 수 있는지의 여부의 4개의 사안에 대해 심리가 이어졌다. 첫 쟁점에 대해서 재판부는 일본법원의 판결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그 효력을 불인정하는 환송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 재판부는 신일철주금이 구 일본제철과 법적으로 동일하므로 그 배상책임을 승계한다고 판단했다. 네 번째 쟁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배상 청구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당시 객관적 장애 사유가 이번 소 제기 당시까지도 있었으므로 소멸시효에 관한 신일철주금 측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심리의 핵심 쟁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했는지에 관한 세 번째 쟁점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청구권협정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거나 ‘더 이상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됐다’는 표현에 관한 논란이다.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지와 포함된다고 볼 경우 그 효력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관해서 법관들 간 의견이 갈렸다. 우선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청구권협정에 의거해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을 인정해야하므로 원고들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이번 재판과 같이 소로써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원고의 청구권이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해 포기된 것이라는 김소영, 이동원 대법관 등의 별개 의견은 청구권협정 자체의 문언이나 체결 전후의 여러 사정을 보면 역시 타당하지 않다는 견지를 밝혔다. 따라서 일본 측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청구권협정의 또 다른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10월 30일,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라며 이는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한일협정이 제한하는 청구권이 양국 간 ‘합법적 관계’ 속 재정적, 민사적 채무 관계에 따라야하므로 불법적 관계의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제한되므로 대한민국이 피해자에게 정당히 보상해야 한다” 혹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만,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것에 불과하므로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와 같은 별개의 의견이 존재했으나 소수에 그쳤다.

판결, 그 이후는

  이번 판결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개인청구권이 아직 남아있다면 신일철주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례의 피해자들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일본기업에서의 강제노동 피해 신고가 15만 건에 달하는 만큼 수 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이 이뤄질지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실제 배상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법원 판결 직후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해당 기업들에게 배상을 거부하도록 요청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고 발언하는 등 양국 간 갈등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과 대법원의 판결이 상충하는 만큼 신일철주금 측에서 자발적으로 배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강제 집행을 고려하자는 목소리도 제기됐지만 신일철주금이 국내에 소유하고 있는 자산이 없어 압류 등 강제집행 또한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도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약 100명의 일본인 변호사들이 ‘한국 대법원판결에 대한 일본 변호사들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2007년 중국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대법원이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밝힌 부분을 근거로 한일협정에 의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아베 총리의 모순을 지적한 이들은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이 문제를 국제사법 재판소에 올리더라도 일본이 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입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소를 시작한 지 13년 만에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실제 배상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크다. 그러나 법적 공방으로 시작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문제는 이제 감정적 공방과 양국 간 과거사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피해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받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반일감정에 휩쓸린 비방보다는 법적, 논리적 접근을 통해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주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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