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와 함께 저문 법안들

지난 5월 29일, 20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며 4년간의 대장정이 끝을 맺었다. 개원 첫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하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듯했던 20대 국회는 역대 가장 낮은 통과률을 기록하며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안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스캔들과 한일 무역 분쟁 등 거대 이슈가 줄줄이 부상하며 여야 간 대립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치열한 정쟁 속 임기가 다해 자동 폐기된 법안은 1만 5천여 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 세간의 화제가 됐던 법안 역시 적지 않다. 20대 국회와 함께 사라진 법안들이 새로이 개원한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빛을 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법개혁 후속 입법 불발

사법개혁과 관련된 굵직한 입법은 완료됐으나, 새로운 제도의 활동을 가능케 할 후속 입법안은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전문으로 조사하는 독립 기관인 공수처 도입은 현 정부의 숙원 사업이다. 당시 야당은 대통령이 공수처장의 최종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공수처가 정부의 꼭두각시 기관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무색하게도 지난해 12월 30일 범여권 정당으로 이뤄진 4+1 협의체가 제의한 공수처법 수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며 공수처 설치가 확정됐다.

하지만 공수처장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필요한 ▲국회법 ▲인사청문회법 ▲공수처장추천위운영규칙 개정안 등이 상임위 심사 중 임기 만료됨에 따라 공수처 설치에 제동이 걸렸다. 21대 국회에서 재상정될 것이 확정적이지만,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에서 공수처를 협상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21대 국회에서도 제·개정안 통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공수처의 설치는 본래 예정됐던 7월보다 더 늦어질 전망이다.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강력해진 경찰 권력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등장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치 경찰은 민생과 밀접한 사무를 보는 파출소·지구대를 국가 경찰로부터 일부 이관받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작년 3월 11일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경찰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경찰서 단계부터 자치 경찰로 이관할 것을 주장하는 검찰과 치안 업무의 비효율화를 우려하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해 해당 법안은 상임위에서 계류 후 폐기됐다. 사법개혁 관련 법안인 만큼 21대 국회에서 역시 잡음이 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 중인 자치경찰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성과를 냈다는 평이 많아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논란 많았던 경제 법안, 결국 21대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경제 입법 역시 폐기 수순을 밟았다.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는 납세의 형평성을 위해 부동산 보유 정도에 따라 납세 부담 비율을 다르게 한 제도로 부동산 투기 억제와 가격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2개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종부세율 인상은 문재인표 부동산 개혁의 핵심이다. 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작년 12월 24일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세율을 0.6~3.2%에서 0.8~4.0%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경제 활력을 저하할 것이라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소관위 심사에서 나아가지 못한 채 폐기됐다. 종부세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재추진되리라 전망되지만, 통합당은 종부세 경감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20대 국회에서의 정쟁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일명 ‘공정경제 3법’ 중 하나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개정안 또한 20대 국회와 함께 수명을 다했다. 정부는 2018년 11월 30일 재벌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다. 정부가 제의한 개정안에는 ▲과징금 부가상한 상향 ▲가격담합 등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일부 개정안이 쉽게 통과된 데 비해 전부개정안은 ‘기업 죽이기’라는 야당과 재계의 강한 반발로 인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공정거래 입법 과제를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며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통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21대 국회에서도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관련 법안, 과거로 남을까

20대 국회에서는 과거사 규명과 잔혹 행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목표로 하는 입법안이 대거 발의됐지만, 지난 5월 막판 통과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하 과거사법)’ 개정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폐기 수순을 밟았다. 2016년 8월 민주당 강창일 의원에 의해 처음으로 발의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이하 4·3 특별법)’ 개정안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진상조사 진행 ▲관련 허위사실 유포 처벌을 골자로 했다. 논란이 된 부분은 권은희 의원안에 포함된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 조항이다. 기획재정부는 보상금의 규모가 1조 8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지난 5월 과거사법의 통과가 유력해지자 관련 단체들은 4·3 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했으나, 멀어진 관심과 더불어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낙선하며 결국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특별법 (이하 5·18 특별법)’ 개정안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연이은 망언으로 인해 촉발된 5·18 특별법 개정안은 언론 매체나 공적인 자리를 통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할 시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작년 2월 19일 이철희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에는 무려 166인이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당 이미지 악화에 대한 우려와 일부 지지자들의 불만 제기 가능성을 저울질하던 자유한국당의 반대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우려로 인해 해당 발의안은 결국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임기 만료 폐기됐다. 하지만 여당 의원 다수가 해당 법안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5·18 특별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싸움에 묻힌 무쟁점 법안들

국회 내 이견 탓에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 외에도 수많은 무쟁점 법안들이 20대 국회와 함께 안녕을 고했다. 2018년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다수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중 2019년 3월 6일 어기구 의원에 의해 제출된 발의안은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응급조치에 현행범인 체포 추가 ▲긴급임시조치에 가해자 유치장·구치소 구금 추가 ▲피해자보호명령 최대 기간을 2년에서 2년 6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을 요지로 했다. 해당 발의안은 법원행정처와 법무부가 입을 모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에서 임기 만료 폐기됐다.

여야 모두가 지지하는 환경 관련 법안들도 폐기 대상에 다수 포함됐다. 청정생산기술센터 지정 대상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로 확대하는 환경친화적 산업구조 전환촉진법 개정안이나, 신·재생에너지의 의무 공급량 상한선을 없애는 신에너지 개발 촉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당파 색과 관계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무쟁점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두 발의안 모두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상임위에서 만료 기한에 다다았다. 여야가 쟁점 법안들에 매달려 논쟁을 펼치느라 필요한 무쟁점 법안들을 찬밥 취급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하는 국회’, 이번에도 공수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 29일 열린 20대 국회 내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 “일하는 국회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식물 국회’에서 탈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발언과 달리 21대 국회는 순탄치 못한 시작을 보였다. 상임위원회 배분을 놓고 시작된 여야의 반목은 개원 첫날 통합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며 가시화됐다. 21대 국회가 꼼꼼한 의정활동과 협치를 통해 ‘일하는 국회’가 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인이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불공정거래행위 중지 및 예방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

 

 

장윤서·오성원 기자

yunseo05@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