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4년, 달라질 4년이 될 것인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초로 시행되는 등의 큰 변화와 함께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이 날을 세우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을 The HOANS가 정리해봤다.

 

지난달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막을 내렸다. 11일과 12일 실시한 사전투표가 역대 최고 투표율인 26.69%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16년 만에 60%를 돌파한 66.2%의 최종투표율은 총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증명했다. 투표 결과 지역구 국회의원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3석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84석 ▲정의당 1석 ▲무소속 5석, 비례대표 투표에서 ▲미래한국당(이하 한국당) 19석 ▲더불어시민당(이하 시민당) 17석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을 차지했다. 여당인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인 시민당 의석을 포함해 전체 의석의 60%에 달하는 180석을 차지하며 ‘슈퍼 여당’이 됐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통합당은 16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민주당은 103석을 확보하며 총선을 석권했음을 보여줬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출발하다

이번 총선에는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작년 12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이 처음 적용됐다.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과 국회의원 의석수를 연동하는 제도를 뜻한다. 단순다수선거제에서 당선자의 대표성이 낮고, 최다득표자 외 후보의 득표는 모두 사표가 돼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 하에 군소정당을 중심으로 도입이 추진됐다. 개정 선거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인 까닭은 총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을 100% 결정하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수에 50%만 연동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하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단순히 비례대표 총 의석(47석)에 정당별 득표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산출했다. 개정 선거제에서는 ‘(의석할당정당 총의석수 * 정당별 득표비율) – (지역구 의석수)’를 2로 나눈 값만큼 비례대표 의석수가 확보된다. 의석할당정당은 지역구나 비례대표 선거를 통해 의석을 1석이라도 배분받은 정당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석할당정당 총의석수는 300석에서 무소속 의원의 총의석수를 뺀 것을 의미한다. 지역구 의석수를 비례대표 의석수와 연동하면서도 정당 지지도를 의석 배분에 반영하되, 배분을 완전히 결정할 수 없고 절반만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다만 개정 이후 첫 총선인 제21대 총선에 한해 연동형 배분의 상한을 30석으로 하는 ‘연동형 캡’이 적용돼 30석은 연동형, 17석은 기존의 방식인 병립형으로 의석을 배분하도록 규정했다. 연동률을 50%로 제한하고 50%의 연동률 적용도 30석에만 한정한 것은 의석수 감소를 우려한 여당의 입김과 일부 여론의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누더기’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비판을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선 준비가 본격화하자 또다시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연동하므로,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거대 정당은 상대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배분받게 된다. 따라서 비례대표 선거에만 출마하는 위성정당을 만들면, 모(母)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0이기에 득표율이 온전히 비례대표 의석에 반영돼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선거법 개정 이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강하게 반발한 통합당이 먼저 지난 2월 5일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이를 두고 “코미디 같은 정치 현실”이라며 비판하던 민주당 측도 3월 8일 원외 범민주 정당과 연합해 시민당을 창당하며 사실상 여당의 위성정당을 구성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 측이 “비례용 정당은 꼭두각시 조직”이라고 비난하는 등 진영을 막론하고 거대 양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네거티브와 포퓰리즘, 깜깜이 선거

21대 총선에 대해 정책이 보이지 않는 ‘깜깜이 선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선거가 민주당과 통합당 두 거대 양당의 싸움으로 흘러가면서 정책과 공약 대결보다는 상대 정당에 대한 공격만이 난무했다는 비판이다. 특히 거대 양당 구도로 선거가 흘러가면서 주요정당들은 프레임 설정과 네거티브 공세를 통한 지지자 결집에만 집중했다. 통합당은 정권심판론과 ‘조국 사태’를 꺼내 들며 민주당 측을 공격했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조국을 살릴 것이냐,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것이냐”며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민주당 측은 이에 반발해 “통합당은 정책과 민생은 팽개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발목잡기에 몰두한 야당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라며 야당심판론을 제시했다.

그나마 내놓은 정책들 또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소득 하위 70% 가구에 100만 원 상당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에 대해 ‘매표선거’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던 통합당은 “전 국민에게 50만 원씩 주자”는 황교안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에 민주당 이해찬 대표 또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학생에 대해서도 통합당 김종인 위원장이 “정부는 모든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1인당 100만 원씩 특별재난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불을 지피자 민주당 김부겸 대구경북선대위원장이 “1학기 등록금의 20% 환급을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발언하며 맞불을 놓았다. 정치권 내에서도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상황에 선거를 앞두고 초반에 너무 흥청망청 원칙 없이 돈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는 유승민 통합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각계 인사들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나, 구체적 방안과 협의가 결여된 ‘표(票)퓰리즘’성 공약은 계속해서 쏟아져나왔다.

 

각 정당의 시선은 어디로?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통합당은 ▲코로나 국면 이후의 경제 활성화 방안 ▲대북 외교 정책 ▲청년 정책 등에 관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민주당은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벤처기업과 소상공인 및 자영업 지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벤처투자 활성화와 세제 지원을 통한 벤처 4대 강국으로의 도약이 공약집의 최상단에 자리했다. 또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지원방안으로는 지역 상품권의 발행 규모를 증대시키고 지역별 특화 거리를 조성하는 등의 지역 상권의 강화를 강조했다. 통합당은 노동시장의 개혁과 세제 경감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증권거래세의 단계별 폐지 ▲부동산 보유세 부담 경감 ▲법인세 인하 등의 세금 경감 정책 등을 통해 기업과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여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뤄내겠다는 것이 통합당의 방안이다.
대북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민주당 측은 남북정상회담 내용의 착실한 이행과 남북의 교류협력 증대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방법으로는 ▲환동해·환서해·DMZ 평화벨트 조성 ▲개성공단 재개 ▲남북 국회회담 추진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 등을 제시했다. 통합당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기존에 시행했던 정책들을 안보 포기정책으로 규정하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나아가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 및 전방지역 감시 및 정찰능력 강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즉각적인 원상복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공식 연장 추진 ▲“북한이탈주민 강제송환 금지법”제정 등을 약속했다.

청년 정책에 관해서 민주당은 청년의 주거 문제 해소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청년 맞춤형 신도시 조성과 지역 거점도시의 구도심 재생사업 등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년과 신혼부부 100만 가구에 공공주택과 맞춤형 금융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통합당은 ‘조국방지법’ 제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시 비율 50% 이상 확대 ▲대학 및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서류의 영구 보관 ▲청년 참여의 공정채용 감시 및 감독 기구 설치 등의 내용을 포함해 불공정 입시를 근절하고 취업 청탁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주된 입장이다. 최저임금제도 개편과 유연근로제 확대를 통해 기업 활력을 높여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것 또한 청년 공약에 포함됐다.

 

크게 엇갈린 희비

제21대 총선은 마침표를 찍었으나 선거 결과가 정치권과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점차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거대한 물음표가 찍혔다. 비례위성정당의 등장은 비례대표 47석 중 36석을 거대 양당의 품에 안겨줬다. 이 덕분에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인 시민당의 의석과 합해 단독으로 180석을 차지했다. 국회에서 재적 인원의 3/5 이상인 ‘180석’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제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본회의 상정법안의 통과 여부 결정 권한과 국회의장 확보는 물론이고 국회선진화법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나 여야 합의 없이 법안과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단독 처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뒤 24시간이 지나면 강제 종료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가지게 돼 헌법 개정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한을 쥐게 됐다. 민주당이 2016년 제20대 총선부터 네 번 연속으로 전국단위 선거에서 승리하며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국정 운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내에서도 예상치를 뛰어넘은 의석수에 당황하며 경계하는 모양새다. 지난 17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은 “모든 강물이 바다에 모이는 것은 바다가 낮게 있기 때문”이라며 당내 계파 갈등과 독단적 행보를 경계하자고 연달아 강조했다.

영남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참패를 당한 통합당은 황교안 대표가 사퇴하는 등 대혼란에 빠졌다. 먼저 공천 전략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이 당 내외에서 제기된다. 지역구 투표에서 정당 득표율이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의석수의 차이와 비교해 격차가 작았으며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위성정당인 한국당이 33.84%를 득표하며 오히려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정우택 의원 등 4선 이상의 중진들뿐만 아니라 황교안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대거 낙선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반면 무소속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와 이번 선거에 불출마한 유승민 의원 등은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롭기에 당내 주도권이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선거기간 터져 나온 막말 파문과 그에 대한 미흡한 대처는 통합당에 큰 과제를 남겼다.

거대양당을 제외한 군소정당들은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게 됐다. 정의당은 지역구 1석에 비례대표 5석을 얻는 데 그쳐 20대 국회와 같은 의석수를 유지했고 국민의당과 열린민주당은 3석을 얻는 데 만족해야 했으며, 20석을 보유하며 제3정당 자리를 지키던 민생당은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해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 정당이 없었다는 가정 아래 이번 선거 결과를 기반으로 계산했을 시, ▲민주당 –11석 ▲한국당 –4석 ▲정의당 +7석 ▲국민의당 +5석 ▲열린민주당 +3석 등의 손익을 보게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간과된 요소가 많긴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기대감을 높였을 군소정당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 국회’를 바라며

제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줬다.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회의 출석의 비율을 측정한 재석률은 68%에 불과했으며 제20대 국회 임기 중 접수된 24,000여 건의 법률안 중 처리된 건수는 단 8,570여 건, 35%에 불과했다. 나머지 15,440여 건의 법안은 폐기·철회된다. 여야의 대립이 극에 달해 장외투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식물 국회’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막말과 몸싸움이 수시로 벌어지는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이며 ‘동물 국회’로까지 칭해졌다. 제21대 국회는 과연 이전 국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사람 국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국민의 이목이 쏠린다.

 

 

박찬웅·김윤진·오성원 기자
pcw040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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