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미제, 드디어 풀리다

많은 괴담을 만들어내면서 큰 이슈가 됐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하 화성사건)’의 범인이 향상된 DNA 검출 기술 덕에 30여 년 만에 밝혀졌다. 사건이 최초 발생한 1986년으로부터 33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의 관심은 뜨겁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전반 및 현재 사건 진행에 대해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지난달 18일, 경찰은 전 국민을 떨게 했던 화성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처제 살인 사건으로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56) 씨를 특정했다. 화성사건은 1986년 9월 19일 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에서 71세의 피해자가 발견되며 시작됐다. 이후 ▲86년 3회 ▲87년 2회 ▲88년 2회 ▲90년 1회 ▲91년 1회의 추가 범죄가 일어나 총 10회에 걸쳐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2차 사건 이후 화성 경찰서에 수사본부를 꾸렸으나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한 채 4차 사건 이후 경기지방경찰청 단위로 수사본부를 격상했다. ▲동원 경찰 연인원 205만여 명 ▲수사대상자 21,280명 ▲지문대조 40,116명 등의 수사기록은 경찰이 쏟은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33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모방 범죄인 8차를 제외하고는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사건은 꾸준히 회자가 됐다.

33년 만에 밝혀진 범인

3대 미제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항을 겪던 화성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자 대중의 이목이 몰렸다. ‘33년 만의 범인 색출’이라는 이야기도 화제가 됐지만 동시에 ‘왜 이제야’라는 질문도 던져졌다. 경찰 측은 DNA 검출 기술의 발달이 주요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사건 당시 경찰이 활용한 유전자 정보라고는 혈액형이 유일했다. 현장 수사 책임자였던 하승균 전 총경의 저서에 따르면 경찰은 ▲86년 2차와 4차 ▲87년 5차 ▲90년 9차 ▲91년 10차 등 총 다섯 차례 사건 현장에서 B형이 검출된 점을 들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씨의 혈액형은 O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한정하지 않았더라면 이 씨를 세 차례나 용의 선상에 올리고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화성사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과거 수사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무분별하고 강압적인 수사방식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경찰의 수사방식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수원의 한 전도사는 교회 신축 대지를 알아보기 위해 화성 일대를 돌아다니다 한 여성에게 길을 물어봤다는 이유로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3년 후인 1990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후 그는 경찰을 고소하면서 “경찰이 5일 동안 잠을 안 재우고 때리거나 발가벗겨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정신질환을 앓던 30대 남성이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증세가 악화해 열차에 투신한 사건도 있다. 타인의 꿈에서 계시를 받아 지목됐다는 이유만으로 강압적 수사를 통해 자백을 강요받았던 40대 가장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도 국민의 안타까움을 샀다.

일등공신 DNA법, 무용지물 위기?

경찰 수사에 대한 여러 비판과 무관하게 이번 사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이다. DNA법은 강력범죄나 재범 우려가 높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 정보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으로, 미제사건 해결을 위한 중요 역할을 맡는다. 지난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중순 오산경찰서 창고에 있던 화성사건의 피해자 유류품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DNA 감정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9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 씨의 것과 일치했고, 추가 감정 결과 5차, 7차 증거물의 DNA도 이 씨의 것임이 드러났다.

이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DNA법은 용의자 특정을 위한 핵심 수단이 됐으며 그 필요성이 다시 입증됐다. 그러나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DNA법은 오는 12월 31일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다. 제정 전부터 DNA법은 신체의 자유, 사생활 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받으며 논란이 됐다. 제정 이후에는 쌍용차 파업농성자, 용산참사 철거민 등 집회 과정에서 주거침입과 폭력 사건에 연루된 경우에도 DNA 채취가 이뤄지며 비판받기도 했다. 이에 헌법소원이 청구됐고, 헌법재판소는 공익을 위한 DNA 채취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본권 제한과 과도한 재판 청구권 제한을 이유로 최소한의 불복 절차는 필요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지난 3월 2개의 개정안이 상정되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어떠한 심의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DNA법은 올해가 지나면 대안 없이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아쉬움을 남긴 공소시효

DNA법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줬다면, 공소시효 관련 법안은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공소란 형사사건에 대한 재판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는 신청을 의미하며, 공소시효 법안은 특정 사건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사라지는 제도를 뜻한다. 화성사건의 경우, 마지막 10차 사건이 1991년 4월 3일에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2006년 4월 2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공소시효 만료는 DNA 대조 결과가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강제수사를 진행하거나 이 씨에 대한 처벌을 논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 씨는 유전자 증거에도 불구하고 범행 사실을 부인했으며, 경찰은 공소시효 소멸로 인해 강제수사가 불가해 이 씨의 자백 없이는 확실한 진범 특정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공소시효는 이번 사건에서는 분명히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역시도 나름의 필요에 의해 도입된 제도로써, 그 도입 배경은 크게 4가지를 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술, 물적 증거의 신빙성은 떨어지며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은 국가의 잘못이므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범인은 오랜 도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기소되지 않아 만들어진 현 상태를 인정하고 법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는 범죄자를 과잉보호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개정 및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목소리에 힘입어 2015년 7월 24일 ‘태완이법’이라고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며, 그 결과 살인죄에 관한 공소시효는 최종 폐지가 됐다.

물론 이러한 형사소송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화성사건은 개정안 발행 전에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 씨에 대한 처벌은 힘들어 보인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대해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해 형벌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특별법 제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한계가 존재한다.기다리던 자백, 그리고 반전

DNA법을 통해 확실한 증거를 얻었음에도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상황은, 이 씨가 돌연 자백을 하면서 급변했다. 10월 1일, 이 씨는 처제 살인 사건 전까지 14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는 화성사건 중 모방범죄로 판명 난 8차를 제외한 9건보다도 5건이나 많다. 9차 조사 만에 얻은 소득으로, ▲프로파일러의 활약 ▲목격자 버스안내양의 등장 ▲불가능해진 특별사면 등의 요인으로 인해 이 씨가 마음을 돌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제 이 씨의 자백에 대한 신뢰성 검증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씨가 돌연 8차 사건도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하며 상황은 다시 복잡해졌다. 이 씨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자,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여 년의 옥살이 끝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윤 모 씨가 과거 고문받아 허위 자백을 했다고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이로 인해 이 씨의 자백에 대한 신뢰성 검증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가뜩이나 경찰이 무분별하고 강압적이었던 수사방식으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고한 시민을 살인범으로 몰았던 것으로 판명이 날 경우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끝을 앞두고 있는 33년

경찰이 애타게 기다리던 이 씨의 자백을 받아냄에 따라 순항할 것 같던 화성사건 해결은 다시 상황이 복잡해지게 됐다. 이 씨의 DNA가 검출된 ▲5차 ▲7차 ▲9차 사건 등과 달리 10차 사건 증거물에서는 이 씨의 DNA가 나오지 않았으며 6차 사건은 증거물도 남아있지 않다. 8차 사건의 경우 윤 모 씨가 이미 범인으로 알려진 상태에서 이 씨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 씨가 자백한 14건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했으며 자백의 신빙성도 높다고 판단했다고 알렸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15일에는 이 씨를 피의자로 정식 입건하기에 이르렀다. 33년 동안 많이 회자가 됐던 화성사건이 경찰의 오랜 노력과 기술의 발전 덕에 마침내 해결될 기로에 놓였지만 여전히 장애물이 남아있다. 화성사건에 대해 어떤 결론이 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원섭·박찬웅·박효정 기자

len631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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