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인물] 유승민

최근 정치면에서 패스트트랙부터 당내 교전까지 연일 고군분투 중인 ‘유승민’을 빼놓을 수 없다. 신념 있는 보수라는 키워드가 바로 연상될 정도로 인상적인 행보를 걸어온 정치인 유승민을 The HOANS에서 만나봤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인사 부탁드린다.

정경대학 신문을 통해서 고려대 학생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린다. 지난 4월 말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초청으로 ‘정당, 정치와 우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게 인연이 되어 오늘 이렇게 정경대학 신문사 인터뷰까지 하게 됐다.

1976년 대학에 갓 입학한 어느 봄날에 고려대 축제가 있었다. 친구와 둘이서 신림동에서 안암동까지 버스를 타고 고대 축제에 가서 막걸리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고려대를 졸업하셔서 어릴 때부터 고려대가 친숙하다. 지금은 세종시로 옮겼지만, 홍릉에 있던 KDI에서 젊은 시절 15년 동안 일하면서 늘 고대 앞을 지나다니기도 했다. 2017년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청년과 함께 하는 당당한 보수’ 강의를 하고, 또 학교 앞에서 선거유세를 했었을 때 고려대 학생들이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참 고마웠다.

 

-바른미래당의 정치적 기조는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른미래당은 개혁적 중도보수 정당이다. 2018년 2월 개혁보수정치를 추구하는 바른정당과 합리적 중도정치를 추구하는 국민의당이 결합해서 만들었다. 지난해 1월 바른정당 대표였던 본인과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전 대표가 양당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개혁적 중도보수의 정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결의를 하고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 바른미래당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지역주의와 양극화된 표심에 기반을 둔 양당제 하에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제3, 제4의 정당이 성공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17년 동안 몸담았던 새누리당을 나와서 바른정당으로 개혁보수 정치를 시작했을 때 죽음의 계곡을 건너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나라는 개인이 정치적으로 죽을 수는 있지만 한국의 보수정치가 이대로 가면 보수도 망하고 진보도 망하고 대한민국도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보수가 건전하고 개혁적인 보수로 새로 태어나서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가면, 지금의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진보정치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짧은 시간에 개혁적 중도보수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이는 바른미래당이 국민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는 정당인지, 왜 바른미래당에 투표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다. 이런 반성 위에 당의 정체성, 비전과 정책을 일신해야만 하는 과제가 나와 동지들에게 주어져 있다.

– 유승민에게 보수란 무엇인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정당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정치가 추구하는 가치란 무엇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정당의 정체성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체성은 정체이고 본질이다. 내가 정치를 하면서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소위 주의(主義, ism)나 이념(理念, ideology)은 사변적인 것, 우리의 삶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 실용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들을 쉽게 한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등 주의와 이념을 두고 ‘쓸모없다, 이념의 포로가 되어선 안 된다’고도 한다. 이런 생각은 맞지 않다. 1958-62년 동안 중국이 인민공사·집단농장을 만들어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공산주의 실험을 하면서 4년간 3천만〜4천만 국민을 굶어죽게 한 폭정을 떠올리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나는 개혁보수를 주장한다. 개혁보수 정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과거 보수정치의 좋은 전통은 계승하되 시대에 맞지 않는 보수의 낡은 생각과 정책은 바꿔서 저성장, 저출산, 양극화와 같은 시대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G2(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 나라의 생존을 지키자는 것이다. “안보는 보수, 경제·민생은 개혁”이라고 주장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나를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진보정치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이고 위선적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개혁을 해도 국가의 기둥인 안보와 경제, 시민들의 삶,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 복지, 노동, 교육, 주택, 의료 등 민생과 관련된 분야에서 정의와 공정, 자유와 평등이 지켜지는 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 한국 정치에서 다당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양당제에 비해서 다당제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년실업, 성차별, 비정규직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정당이 있다면 해당 문제들로 고통받는 시민들은 그런 정당을 선호할 것이다.

– 한국에서 다당제가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 패스트트랙으로 갈등을 빚은 반쪽 연동형 비례대표는 지역구 의원 선거에서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에 관해서만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당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당제를 정착시키려면 현재의 소선거구 제도를 중대선거구 제도로 바꿔야 한다. 각 지역구에서 1등을 한 사람만이 국회의원이 되는 현재의 선거제도로는 다당제를 정착시키기가 쉽기 않다. 40% 득표로 1등을 한 후보만으로는 나머지 60%의 시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가 없다.

-중대선거구제를 반대하는 진영에 하고 싶은 말은.

중대선거구제는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와 더 어울리는 제도이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고쳐야 하는 개헌의 문제와 직결된다.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순수 내각제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통일이 되고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기까지는 4년 중임의 대통령제가 더 낫다고 본다. 대통령제 하에서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협치의 정치를 위해 다당제를 발전시키려면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게 좋다.

물론 영남과 호남에 기반을 둔 양당의 저항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라는 우리 정치의 오랜 병폐와 맞닿아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고, 정당 간 더 치열한 정책경쟁을 하게 만들고, 대통령이 국회를 더 중시하게 만들고,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의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나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게 만드는 등의 좋은 점들이 있다. 나도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지만 영남과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라는 병폐, 기득권을 깨겠다는 각오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선거제도이든 양당제냐, 다당제냐는 국민의 선택의 결과다. 다당제가 마치 정치의 목표인 것처럼 과대하게 미화되는 것도 경계한다.

– 지난 1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요지로 연설하며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굽히지 않겠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달나라 사람인가?”라고 비판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 앞에서 이런 말을 태연히 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그 분의 현실인식이 왜 이렇게 잘못되어 있는지, 공감능력은 왜 없는지, 정말 충격이었다.

지금 우리 경제는 1997년의 IMF 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이다. 단순히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2.7%에서 2.4%로 내려가고 일시적인 지표상 투자, 수출, 소비가 내려가고 고용이 나쁘다고 해서 경제위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경제의 실력, 힘, 경쟁력, 성장잠재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경제의 펀더멘탈(fundamental)이 위기’라는 말이다. 이건 우리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이냐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우리는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 제조업으로 먹고 살았다. 그 분야에서 우리 기업가, 노동자, 소비자, 정부는 글로벌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많은 희생을 감내한 끝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대기업이 커가면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력산업들은 어떻게 되고 있나. 조선은 이미 위기를 겪고 있고, 자동차, 철강도, 심지어 반도체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과거의 주력산업들이 퇴조할 때 새로운 성장동력이 나타나야 하는데 우리 경제 어디에도 새로운 성장의 원천이 되는 신산업들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게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산업정책, 기업정책, 노동정책, 과학기술정책, 인재양성정책 등 경제정책의 전반에 걸친 진정한 개혁이 꾸준하게 추진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일전에 내가 그런 새로운 개혁과 새로운 성장을 ‘혁신성장’이라고 2016년에 최초로 명명했다. 문 대통령이 나의 혁신성장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혁신성장을 말하고 있지만, 혁신성장은 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혁신성장은 말뿐이고 실제로 이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고, 단기공공근로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디지털 혁신인재 100만 명을 양성할 계획은 없고 공무원 17만 4천 명,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늘리는 경제정책에서 무슨 혁신이 있을 수 있겠나.

–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경제의 현실을 봐서 속도를 조절할 문제다. 그런데 2017년 현 정권이 2018년에 시행할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 올렸다. 이를 보고 2018년 1월 중소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대선공약에서 말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잘못되었다. 반성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저임금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었다. 2018년 3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도. 곧 정하게 될 2019년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만큼만 올려서 실질 최저임금은 동결하는 것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건의했다. 그런데 2년 연속 이 정부는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려서 지금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자초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실업난을 가중시킨 나쁜 정책이 되어버렸다.

–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으며 얻은 노하우나 지혜가 궁금하다. 더불어 정계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매일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자신에게 물으며 정치해왔다. 학생 여러분이 앞으로 정치를 하든, 다른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나는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늘 하면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하기 싫은 일,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만 하는 것은 불행이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Start with Why』라는 책을 읽고, 그리고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를 읽으면서 정치를 하겠다면 왜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부터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정치는 거칠고 어려운 일이다. 선거에서 패하고 나면 정치를 할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다. 그런 척박함 속에서 정치는 가치를 추구한다. 현실의 무자비함과 잔인함 속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실현하고 싶은 가치를 절대 잃지 않는 정치인이 고려대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여러분을 응원한다.

– 정치인 유승민으로서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성실하고 착하고 똑똑한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과 내일의 어두운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면 정치는 그 책임과 역할을 못 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그런 정치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선택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정치가 공공의 선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한 사랑은 베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나는 사회와 현실, 국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들을 우리에게 더 많이 허락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님의 이 말씀의 무게를 깊이 새긴다. 한 나라가 잘 되려면 좋은 정치인이 많아야 하고 그런 정치인들을 국민들이 선출해줘야 한다. 그래서 좋은 정치와 국민이 늘 함께 가는 것이다. 학생 여러분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정치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이유다. 우리 모두의 삶과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 그런 정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화를 여러분과 더 많이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지우 기자

idler994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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