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신질환 실태 점검

지난해 서현역 흉기 난동의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정신질환자 격리에 대한 여론이 치솟았다. 이에 법무부는 정신질환 범죄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부가 판단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 걸그룹 EXID 하니의 예비신랑인 양재웅 씨의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해 부당한 정신질환자 격리‧강박 실태가 드러났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더해 부당한 치료 환경은 정신질환자들이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꺼리게 할 수 있다. 이에 The HOANS가 우리나라 정신질환 현황과 치료 시스템을 낱낱이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자의 정신질환 진료 실인원은 2018년 302만 명에서 2023년 385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 1 정도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와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 조현병과 조현성 인격장애는 큰 변화 없이 그 수가 유지됐다. 그러나 건강보험 미가입자 및 미진료 인원 등까지 고려하면 정신질환자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계속 증가하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대폭 증가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 범죄는 2021년 8,850건에서 2022년 9,875건으로 약 12% 늘었다. 이에 더해 지난해 서현역 흉기 난동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엄격한 격리‧수용 여론이 일어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신질환과 범죄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청의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총범죄자 1,250,330명 중 정신장애 범죄자는 9,875명으로 0.8%에 그쳤다. 강력범죄의 경우에도 총 25,017명 중 567명으로 2.3%에 불과했다. 오히려 재범률이 전체 재범률보다 20%p 높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강창일 전 민주당 의원은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큰 것은 사실이나 정신질환자가 범죄자라는 낙인이 이들을 더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체계적 치료와 관리가 이뤄지도록 관계 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대부분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고립돼 있다. 최혜영 민주당 전 의원실의 ‘정신질환 진료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최근 1년 내 진료 이력이 없는 환자가 128만 명으로 2021년 진료받은 환자 362만 명의 35.5%를 차지했다. 최근 2년 내 진료 이력이 없는 환자 또한 101만 명으로 2020년 진료받은 환자 332만 명의 30.4%였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 중 30%에 해당하는 수백만 명이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정신장애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정신질환자로 인식되거나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과 ‘스스로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각각 17.3%로 가장 많았다. 정신질환에 대해 만연하게 퍼진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많은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막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진행한 ‘우리나라 정신건강 인식 및 서비스이용 개선을 위한 연구’에서도 제도적 불이익과 사회적 인식이 정신과 진료 기피 이유의 절반 이상(61.8%)을 차지했다. 특히 10대 및 2030 취업준비생은 제도적 불이익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리나라는 공무원 채용 시 법령상의 자격요건에 의해 개인의 정신질환 병력을 묻기 때문에 이들은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는 것을 크게 우려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정신병원 치료 중에 일어나는 비인간적 대우가 환자들의 치료를 가로막기도 한다. 환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격리‧강박 과정에서 세부 지침이 지켜지지 않아 환자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기 때문이다. 2022년 춘천의 한 병원에서는 한 환자가 연속 5차례의 무리한 강박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중재원은 CCTV 분석을 통해 환자가 사망 직전 약 67시간 동안 강박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이 시간 동안 폐색전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사지 운동이나 자세 변경 등의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정신질환자 인권 향상, 그러나 병원 내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 역시 행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며 강제 입원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강화됐다. 입원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한층 개선한 것이다.

또한 지난 국회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일부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동료지원쉼터의 운영 근거와 절차조력인 제도를 그 내용으로 했다. 동료지원쉼터는 정신질환자가 지역 사회에서 상담과 휴식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소다. 절차조력인 제도는 입‧퇴원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돕는다. 정신질환자가 사회와 융화돼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정신병원 내의 치료 과정과 운영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대부분의 병원 내 사건은 예방보다 발생한 후에야 조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관련 지침의 위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증거가 되는 격리·강박 일지가 조작되거나 격리‧강박 사실이 아예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인권침해의 증거를 찾기는커녕 제대로 된 실태 조사조차 미흡한 것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조차 정신병원 내의 격리‧강박 실태와 현황에 대한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격리‧강박에 대한 지침 역시 아직 미완성이다.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를 격리‧강박할 경우 이에 대한 일지를 작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양식 없이 사유와 내용만을 기록하도록 한 까닭에 병원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일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신병원이 기록한 격리‧강박 일지는 내용이 미흡하다. 인권위 조사 자료에 따르면 격리‧강박 환자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명부가 마련된 기관은 22개의 조사 대상 중 8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침을 위반했을 때조차 법적인 제재는 가해지지 않는다. 인권위의 권고나 제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장의 의료진들에게는 없는 규칙이나 다름없다.

치료를 위한 적절한 체계가 마련돼야

정신질환자들의 강력범죄가 언론을 통해 다뤄지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불안감이 증가했다. 이에 이들을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매스컴을 탄 몇몇 사건만 보기보다는 통계를 봐야 한다며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합리한 대우가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체계도 없는 정신병원 내 상황은 치료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대신 그들의 치료를 위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때다.

 

김수환‧박성빈‧심민채 기자

kusu122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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