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난민을 파는 영국

지난 4월 리시 수낙 영국 총리의 간판 정책인 난민 르완다 이송 법안 이른바 ‘르완다법’이 우여곡절 끝에 영국 의회 상·하원을 모두 통과했다. 르완다법은 도버 해협을 건너오는 난민과 불법 이민자를 아프리카 르완다로 이송하는 법이다. 상원 통과 당일 기자회견에서 수낙 총리는 “10~12주 이내에 르완다행 첫 번째 항공편이 출발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법안을 두고 영국 내부와 국제사회에서 실효성과 인권 침해 여부를 두고 반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르완다법 관련 논쟁을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영국 의회 통과한 ‘르완다법’

르완다법은 영국의 난민정책으로 영국 보수당 정부가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시절부터 추진해 온 정책이다. 2018년 이후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온 불법 이민자는 총 12만여 명으로 르완다법은 이러한 지속적인 난민 수요를 막기 위해 추진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영국으로 온 불법 이주민을 아프리카 국가 르완다로 보내 난민 심사를 받게 함을 골자로 한다. 난민 심사를 통과하면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르완다에 정착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정책 이행을 위해 르완다와 협약을 체결하고 양국 협약의 하나로 지난 2월까지 2억 2,000만 파운드(약 3,761억 원)을 르완다 경제전환통합펀드(ETIF)에 지급했다. 이는 2026년까지 총 3억 7,000만 파운드(약 6,326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원래 르완다법은 2022년 6월 시행 예정이었고 영국은 실제로 이주자 약 30명을 르완다로 보내려 했으나 유럽인권재판소 등 국제사회의 질타가 이어졌다. 또한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에서 난민 신청자들의 위험성을 근거로 들어 르완다법이 위법임을 선고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르완다에 약 1억 4,000만 파운드(약 2,272억 원)를 지원금으로 지급했음에도 단 한 명의 난민 신청자도 르완다로 이송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지난해 영국 순유입인구(유입-유출인구)가 74만 5,000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자 난민 문제가 다시금 불거졌다. 이후 수낙 총리와 보수당 정권이 르완다법을 재추진하면서 지난 4월 해당 법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했다.

대법원 제동에도 정부는 ‘르완다법’ 강행

영국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르완다가 난민이 거주하기에 안전한 제3국이 아니기에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정부 계획은 위법이라는 항소심 판결을 만장일치로 확정했다. 그다음 달에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내무부 장관은 르완다를 방문해 난민 신청자 수용과 관련한 새로운 협약을 체결했는데 해당 협약에는 르완다행 난민 신청자들이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국가로 송환될 위협을 배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후 수정된 법률안에선 의회 차원에서 르완다가 망명을 보내기에 안전한 국가임을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사법부의 판단을 차단했다.

이번 르완다법 의회 통과는 보트를 막겠다고 선언하며 르완다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수낙 총리의 정치적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의 비판에 직면했다. 올해 하반기 영국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노동당은 자신들이 집권할 시 현 보수당 정부의 르완다법을 즉각 폐기하고 관련 예산을 활용해 국경안보사령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수낙 총리는 보수당 내부에서도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강경파와 갈등을 빚는 중이다.

이에 난민 이송 계획이 통과된 법률안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르완다법이 도버 해협의 난민 보트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영국 BBC방송은 법률 통과 당일도 도버 해협 부근 프랑스 칼레 해안에 수많은 난민 보트가 집결했다고 보도했다.

르완다법이 국제사회에 불러온 파장

영국의 르완다법 제정으로 불법 난민이 영국의 이웃국인 아일랜드로 몰리는 상황이다. 연초부터 지난 4월 27일까지 아일랜드로 들어온 소형 선박 입항객은 7,16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가량 증가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에서 유입된 불법 이민자를 다시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요청했지만 수낙 총리는 그러한 법적 강제는 불가하다며 아일랜드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일랜드 법무부는 최근 아일랜드에 도착한 난민의 약 80%가 국경 검문이 없는 북아일랜드에서 육로로 넘어왔다고 밝혔다. 이에 난민 문제가 영국 이외의 제3국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다른 문제는 르완다 정부조차도 영국 난민의 수용에 대해서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말로코 르완다 정부 대변인은 “정책 시행 첫해에 난민을 몇 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언급을 섣불리 할 수 없다”고 밝히며 내부 사안에 따라 정책변동이 가능함을 암시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좋지 않다. ▲국제엠네스티 ▲리버티 ▲고문으로부터의 자유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르완다법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르완다법의 영국 의회 통과가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 여부를 소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민 지원단체인 난민위원회 최고경영자인 엔버 솔로몬은 “영국 정부는 비인간적인 르완다 계획을 무모하게 추진하기로 결심했다”며 “르완다 법은 결국 재앙적인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고 말했다. 마이클 오플래허티 유럽 평의회 인권위원장은 지난 4월 성명에서 “대부분 사례에서 망명 신청자에 대한 사전 평가 없이 사람들을 르완다로 강제 이송하는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우리 뒷마당엔 안 됩니다: 망명 외주화

르완다법처럼 자국으로 이주하는 난민을 제3국으로 보내는 정책을 망명 외주화 정책이라고 일컫는다. 난민의 망명 외주화는 단순히 영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 볼 수 없다.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도 전체적으로 외주화의 속도가 증가하고 있어 이들도 인권침해적 요소가 강한 반이민 정책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가들이 망명 외주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다. 특히 난민 지위 부여 심사를 기다리는 다수의 이민자를 수용하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소모된다. 최근 들어 우파 성향의 정당들이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 큰 지지를 얻으면서 반이민 정책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난민 지위 신청자를 80km 떨어진 알바니아로 보내는 방안을 최근 의회에서 채택했다.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남유럽 국가 중 하나로 지중해를 넘어오는 난민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EU에 가입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알바니아와 이탈리아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합치돼 이러한 방안이 모색됐다.

독일도 난민 심사 기간 신청자들을 안전한 제3국에 체류하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제3국으로는 ▲가나 ▲르완다 ▲조지아 ▲몰도바 등이 거론된다. 독일의 인접국인 오스트리아도 제3국 체류 방식을 채택해 심사 통과자에 한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별개로 유럽 국가들은 EU 차원에서의 범국가적 정책이 필요함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EU는 지난해 12월 ‘신(新)이민·난민 협약’을 통해 망명 신청자를 다른 EU 국가로 재배치하고 거부하는 국가는 재정적인 도움을 주게 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EU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위계와 영국을 비롯한 비가입국의 비협조적 태도 등 여러 장애물로 인해 범국가적 정책의 효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난민의 인권을 위해

르완다 법은 현재 영국 의회 문턱을 통과한 상태지만, 보수당의 낮은 지지율과 이번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실제 정책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종교계 지도자들도 합세해 공동성명서를 내며 정부가 망명 신청자와 난민의 정치적 도구화를 비판하고 있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부 차원에선 상당한 재정적 손해가 우려되는 부분이나 국제 인권과도 많이 결부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연 영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정책을 이행해 망명 외주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재원·김수환·인형진 기자

kb1115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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