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다독가도 애서가도 아니지만

26일부터 30일까지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서울국제도서전은 1954년 전국도서전시회로 시작해 70년 동안 이어진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관련 행사다. 그러나 서울국제도서전을 마주하는 올해의 상황이 장밋빛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2023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로 역대 최저치였다. 종합독서율은 1년간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등을 제외한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즉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6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책 읽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책은 자기계발서였다.

불티나는 자기계발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성장에 대한 욕구(혹은 강박)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 계발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까? 현대인들의 성장에 대한 욕구와 자기 계발에 대한 열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데이터 중 하나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와 판매량 집계다.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교보문고 종합 주간 베스트 1위부터 10위까지 10권의 책 중 4권이 자기계발서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손웅정의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이 순위권에 들었다. 나머지 6권은 어린이책 1권·영어 학습참고서 1권·문학 2권·뇌과학 교양 1권·철학 교양 1권이다. 자기계발서가 다른 분야에 비해 압도적인 인기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보문고의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만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으로 역시 자기계발서였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늘어났고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유행이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문학 ▲인문사회 ▲자연과학 등 분야의 교양서는 찾기 어렵고 자기계발서가 가득한 현상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분초사회와 도파밍 그리고 자기계발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올해의 키워드로 ‘분초사회’와 ‘도파밍’ 등을 제시했다. ‘분초사회’와 ‘도파밍’ 트렌드가 결합해 자기계발서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도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중요시하던 우리 사회는 더욱더 강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 ‘분초사회’다. 시간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는 사회로, 시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며 산다는 뜻이다. ‘도파밍’은 쇼츠·릴스 등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중독돼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다니는 현상을 이른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대에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성공 노하우를 찾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행위이자 시간 낭비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스스로 방법을 찾을 바엔 누군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하에 자기계발서를 찾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또한 자기계발서는 은유적이기보다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다. 자기계발서를 이해하는 데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사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니라 단순하고 확실한 지식을 전달하기에 자기계발서는 쇼츠와 릴스에 길든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 제법 익숙한 형태의 콘텐츠라는 것이다.

틈을 내 주지 않는 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을 현명하게 실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계발서와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여지가 있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자기계발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내포한다.

자기계발서는 ‘자기 계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해진 길을 따라가도록 한다. 자기계발서는 책에서 제시하는 이야기 이외에 다른 방법들이 존재할 수 있으니 책을 참고만 해 달라는 식의 틈을 내 주지 않는다. 대신 저자가 언급하는 방법들을 따라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견고하게 만들어진 자기계발서의 논리를 따르고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다.

누구를 위한 자기계발서인가

또한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에게 집중하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경시하는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전에 교양 강의에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그 책에서 강조하는 대로 습관을 삶에 정착시키기 위한 각자의 시스템을 만든 후 좋은 습관을 내면화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습관 만드는 방법’은 유익했지만 강의 중에는 또 다른 생각해 볼 거리가 던져졌다. ▲이 책은 가용시간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교대근무 노동자에게 좋은 습관이란 어떤 것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좋은 습관은 그들에게도 적용될까 ▲이 책에서 말하는 시스템은 어떤 시스템인가 세 가지가 골자였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힘주어 말하는 것은 습관을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인데 이때의 시스템은 ‘개인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개인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순전히 개인의 역할만 있을까. 개인의 시스템은 사회와 공동체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의 직업이나 계층,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 대상으로 놓지 않는다.

대학생이나 안정적인 고용 상태가 보장된 사무직 회사원, 경제적으로 안정된 프리랜서의 경우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잘 살아낼 가능성이 높다. ▲아침 일찍 혹은 일과를 마치고 운동을 하거나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을 추가로 더 공부하거나 ▲외국어 연습을 하는 등의 모습을 내면화할 환경적 여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의 노동자나 서서 근무하는 등 육체적으로 피로도가 높은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자기 계발이라고 규정한 것을 완수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는 이전에 박람회장에서 잠시 단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을 서서 일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다리가 후들거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일을 더 할 여력이 남지 않았다. 운동·공부 등 사회에서 이상적인 자기 계발로 규정한 것들은 사실 특정 직업,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가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논의를 진행하는가.

부끄러워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독가도 애서가도 아닌, 그저 도서관에 자주 들락날락할 뿐인 사람이 이런 글을 쓰다니 너무나도 부끄럽다. 애써 변명하자면 유행을 따르기 전에 멈춰서 한번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자기계발서도 좋지만 자기계발서만 읽으면서 살기엔 이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다. 자기계발서는 인스턴트 식품과 닮았다. 조리 시간이 짧고 맛도 있지만 인스턴트 식품만 먹으면서 산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맛과 요리를 즐길 수 없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조언을 건네는 레디메이드 자기계발서가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자기계발서를 통한 동기부여에만 기대 살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내가 직접 재료를 고르고 머리를 싸매서 만들어낸 요리 같은 책이 삶의 지혜와 원동력을 찾아줄지도 모르겠다.

 

정지윤 기자

alwayselois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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