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이 쏘아올린 공: K-POP의 문제들

지난 4월부터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수장이자 유명 아이돌 그룹 뉴진스 프로듀서 민희진 대표에 대한 하이브의 내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급부상했다. 이어 내부 문건이나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라는 형식으로 확실한 출처나 근거가 없는 내용이 속보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 대표가 경영권 찬탈 의혹 해명을 생중계하며 하이브의 일방적인 여론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시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진행된 민 대표의 ‘민희진-HYBE 간 ADOR 경영권 분쟁에 대한 기자 회견’은 파격적인 발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주된 쟁점이었던 경영권 찬탈 의혹의 실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녀사냥과 밀어내기 편법 등 케이팝 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한 민 대표의 발언을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연예인도 너무 힘들어요” 대등한 계약관계가 아닌 아이돌

아이돌의 평균 연령은 약 22세다.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더 어린 나이에 연습생 기간을 거치게 된다. 아이돌이 되기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은 10대 시절부터 연습생이라 불리며 대부분 엔터테인먼트 회사 관계자의 관리 아래 합숙 생활을 한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들은 보통의 청소년이 누려야 할 권리를 보호받기 힘든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계약 관계하에서 ▲불공정 관계에서 과노동 ▲휴식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감시·관리 ▲폭언과 성추행 등 많은 문제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는 ▲과도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연예인 소재 상시 통보 조항 ▲소속사 허락 없는 활동중지·은퇴금지 조항 ▲소속사의 홍보활동 시 강제·무상출연 조항 등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배우 故 장자연 씨 자살 사건·동방신기 전속계약 분쟁이 불거지며 2009년 표준전속계약서 도입을 시작으로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1월 하이브는 시간적인 제약이 큰 아이돌을 위해 사내 의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빠듯한 스케줄과 강렬한 무대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되는 아이돌의 몸과 마음을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움직임 자체가 ‘병들어 가는 케이팝’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아이돌이나 연습생이기에 앞서 한 명의 인격체로서 연령에 적합한 성장 환경을 제공하는 등 대중문화 콘텐츠 속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방송 제작 현장의 현실과 이름을 알리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회사나 제작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아이돌의 처지는 그대로기 때문이다. 현 케이팝 산업 생태계의 경쟁풍토 자체를 개선하기 전에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팬들에게 다 부담이 전가된다” 소비자 착취 구조

민 대표는 “팬은 샀던 앨범을 사고 또 사고 갔던 팬사인회를 가고 또 가야 한다”고 밝히며 케이팝 산업의 소비자 착취구조를 비판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소비자의 충성을 이용해 실제 청취자 수와는 상관없이 음반 판매량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음반산업협회의 글로벌 앨범 차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음방 판매량 1위는 세븐틴, 2위는 스트레이키즈였다. 그러나 실제 청취자 수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유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월간 청취자 수를 보면 스트레이 키즈는 1,220위, 세븐틴은 1,661위에 불과했다.

이러한 음반 판매량 부풀리기는 케이팝 아이돌의 앨범이 대량으로 버려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에는 일본 시부야에서 세븐틴의 앨범이 대량 버려진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앨범의 구성품인 포토 카드와 이벤트 응모권이 꼽힌다. 앨범에 들어있는 포토 카드는 보통 수십 종에 이르는데 이들은 랜덤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에 많은 팬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고 원하는 포토 카드만을 취한 뒤 나머지 구성품은 기부하거나 버린다.

‘밀어내기’ 편법 또한 음반 판매량을 부풀리는 요소다. 밀어내기 편법이란 앨범 판매사와 유통사가 초동판매량(발매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을 부풀리기 위해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그 대가로 팬사인회 등의 행사로 판매를 지원하는 편법을 말한다. 케이팝 시장에서 초동판매량은 인기 지표로 통하기에 충성도가 높은 팬들은 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동판매량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구매자가 앨범 수십 장을 한 번에 구매하는 ‘공동구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이는 케이팝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 대표는 “밀어내기를 하면 이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수치가 올라가는 건지 시장이 비정상이 되고 계속 우상승하니까 나중에는 주식 시장도 교란된다”고 지적했다. ▲랜덤 포토 카드 ▲팬사인회 ▲초동판매량에 치우친 기형적인 산업구조는 소비자를 착취하며 케이팝 시장은 물론 더 나아가 주식 시장까지 교란해 버리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민 대표의 발언처럼 그동안 민 대표가 기획한 뉴진스의 앨범에는 랜덤 포토 카드 시스템이 없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다.

“군대 축구도 아니고” 멀티 레이블 운영상의 한계

하이브는 하나의 모기업을 두고 산하에 다양한 형태의 군소 레이블을 운영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자산 규모 5조 원에 달하는 하이브는 65개의 기업과 11개의 레이블을 동시 운영 중이다.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은 민 대표의 ▲어도어 ▲빅히트뮤직 ▲쏘스뮤직 ▲플레디스 ▲케이오지(KOZ)엔터테인먼트 등이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각 아티스트에 대한 전담팀을 따로 구성해 ▲아티스트 육성 및 관리 ▲신곡 발매 ▲굿즈 판매 등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차유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멀티 레이블 도입을 통해 멀티 IP(지식재산권)를 구축하고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실적 가시성이 높아지고 신인 아티스트의 빠른 인지도 상승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멀티레이블 체제에 대한 이해 없이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이브 멀티 레이블 체제의 높은 자율성과 별개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빌리프랩 ▲쏘스뮤직 ▲빅히트뮤직의 아티스트에 대한 프로듀싱을 직접 진행해 왔다. 민 대표는 그 과정에서 빌리프랩의 아일릿이 뉴진스를 내부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난 방 의장의 아티스트 편애를 지적했다. 민 대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뉴진스 홍보를 하지 말라”는 식의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내부 아티스트 간 지나친 경쟁과 차별 대우라는 멀티레이블의 구조적인 한계가 내부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취약한 기업 구조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케이팝 시장은 ▲비슷한 장르 ▲비슷한 기획 ▲비슷한 홍보 마케팅과 겹치는 타깃층을 상대하고 있다”며 “멀티 레이블이라고는 하지만 밥만 한 솥에서 먹지 결국 똑같은 작업장에 나가 서로 밀치며 경쟁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지금 대중이 주목할 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케이팝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가 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런데 대중은 민 대표와 하이브 간의 진흙탕 싸움을 관전하고 그들 중 한 편에 서서 상대를 비난하기 바쁜 모습이다. 하이브 소속 특정 그룹의 SNS에 악플을 남기거나 모든 모방 논란에 열광하는 것은 민 대표가 끌어올린 문제 상황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진흙탕 싸움보단 ▲취약한 아이돌 보호 ▲소비자 착취 ▲멀티레이블의 내부 갈등 등 케이팝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김지현·김수환·오정태 기자

bem23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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