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자가 책임지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이 필요해

도현이 사건을 기억하는가? 2022년 강원도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도현 군이 사망한 사건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차량의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그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사고 당시 차량을 운전한 이도현 군의 할머니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경찰의 결정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이도현 군의 아버지 등의 유족이 차량의 기계적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상 제조물 결함의 입증책임이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2에 따라 소비자가 제조물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잘못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차량 등 제조물이 복잡해지고 전문화했기에 개인이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도현이 사건을 기점으로 제21대 국회에서 차량 급발진 관련 제조물 책임법 개정 시도가 있었다. 입증책임을 전부 제조사에 지게 하거나 소비자가 결함 사실 대신 가능성을 증명하게 하는 등의 4개 개정안이 제안됐으나 전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제조사가 모든 결함 여부를 입증하는 데서 법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제조물이 점점 전문화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에도 도현이 사건과 같은 차량 급발진 사고에서 제조사의 책임은 지난 5년간 인정된 적이 없다. 이러한 실태를 고려하면 소비자만이 결함의 입증책임을 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법적 혼란 초래 가능성이 지적됐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과실 책임 원칙으로 보인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통해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법망이 국민의 권리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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