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6월의 인물, 박만섭 본교 경제학과 교수

박만섭 본교 경제학과 교수는 본교 경제학과 졸업 후 학과장, 교무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26년 동안 본교 학우들과 함께해온 인물이다. 박 교수는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비주류경제학의 길을 닦아오기도 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퇴임하는 박 교수는 The HOANS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회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직을 떠나는 소회가 어떤가.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내가 교수직에 있었던 기간은 총 33년이다. 1998년 모교에 부임하기 전에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7년을 교수로 근무했고 모교에서 26년을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유학생으로, 그전에는 학부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나는 평생 학교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본교 경제학과에 학생으로 입학해 정년을 맞이하는 이 모든 기간이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교수로서 매 학기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두렵기도 했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내 눈에 답변하는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곤 했다. 그런 행복한 시간을 더 이상 갖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교직을 떠난 뒤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교수직을 떠나면 남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시간일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과목일지라도 강의하기 전에는 매번 긴장된다. 긴장을 풀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미리 강의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써 왔는데 이제는 모든 시간을 연구에 쏟을 수 있어 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그동안 학자로서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던 분야를 총정리하는 책을 3권으로 집필 중이다. 원래 지금쯤 완성돼 출판돼야 했는데 항상 그렇듯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전형적인 경제학의 범위를 확장해 여러 철학적 개념과 경제학적 분석을 연결하는 저서를 쓸 계획이다.

교직 생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5년 전쯤이다. 강의 전에 당시 경제학과장으로서 복잡한 행정 일로 많은 신경을 쓰다 강의에 들어갔는데 그런 모습이 학생들에게 보였던 모양이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잠시 쉬다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문 앞에 케이크와 편지가 있었다. “선생님, 오늘 강의에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듯이 보였습니다. 조그만 케이크지만 드시고 힘내세요.” 물론 편지는 익명이었다. 아마 이럴 때 ‘선생님’으로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지 않을까 싶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경제학은 무엇인가.

현실 경제를 분석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아직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실 경제가 복잡하다. 그럼에도 현재 존재하는 경제학은 경제를 바라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사고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교수로서 내가 경제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가르치는 경제학 이론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관점에서 현실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배우고 나서 어떠한 현실 문제가 눈앞에 다가오더라도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으면 하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교수님은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했다. 비주류경제학이란 무엇이고 남들이 가지 않은 비주류경제학의 길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경제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자 대학 경제학과 과목에서 많이 가르치는 것은 주류경제학이다. 경제학적 문제가 희소성의 문제이고 그런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찾는다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경제학은 모두 주류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비주류경제학은 넓게 말하면 이런 출발점을 비판적으로 보고 다른 출발점에서 경제학적 분석을 시작하는 경제학이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등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기본적으로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경제학적 문제는 경제를 어떻게 재생산할 수 있는지였다. 여기서도 희소성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것은 경제 재생산이라는 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비주류경제학에서 경제는 정치, 사회 등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경제를 분석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이런 접근법을 정치경제학이라 부른 것이다.

학부 2학년 때 거시경제학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 당신이 번역하신 책을 하나 소개해 주셨다. (그 교수님은 내가 유학 중이던 시절 병환으로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이 자리를 빌려 교수님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경제학의 여러 학파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은 케임브리지학파에 관한 것이었다. 책의 앞부분에 나온 10여 개 학파의 기본적 틀을 비판적으로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파로 소개됐다. 그 책이 나의 학문적 운명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내용에 매료된 이유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대안을 찾으려 하던 나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무모했을 수 있고 지금도 무모할 수 있지만 그런 성격과 태도가 연구의 한평생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교무처장 당시에 ‘3정책을 강조한 바 있다. 3정책이 무엇이며 어떤 계기로 도입하게 된 것인가.

당시 집행부는 교육 방향을 교수자의 시각뿐 아니라 학생들 시각에서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고 했다. ‘3無 정책’은 ▲출석을 성적에 반영하지 않기 ▲절대평가(상대평가 하지 않기) ▲무감독 시험을 뜻한다. 출석은 넓은 의미의 교육 측면에서 필요할 수 있지만 성적을 주려는 방편으로 출석을 점검하는 일은 대학이라는 이상에서 볼 때 불필요하고 학생들을 자율적 인간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상대평가는 ‘점수 줄 세우기’를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고유한 성취와 그들의 인격체를 무시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은 동료 간의 협력을 기르는 장이어야 하는데 당시 집행부는 상대평가가 동료를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키우는 해악을 가져온다고 봤다. 무감독 시험은 학생들에 대한 교수자의 신뢰를 반영한다. 학생들 자신도 조그만 점수 향상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전인성(全人性)을 지킬 수 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

교수는 교수자면서 연구자다. 연구자로서 연구는 저술 활동으로 나타난다. 내가 대부분의 다른 경제학 교수들과 다른 점은 학술지 논문 외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저서를 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2020년에 발간된 〈포스트케인지언 내생화폐이론〉이다. 이 책은 2000년 대우학술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 시작했는데 20년이 지난 후에 발간했다. 물론 내가 게을렀던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렇게 미뤄진 데는 나의 학문적인 욕심의 영향도 있었다. 이 기간에 포스트케인지언 내생화폐이론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그 추이를 지켜보며 그것을 모두 반영하고 싶었다. 2019년 초까지 4년 동안의 교무처장직으로 인해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 해를 연구년으로 보내면서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4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책을 썼는데 그 시간이 행복한 모습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근본적으로 학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3권으로 계획된 다른 저술이 완성된다면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새로운 저술이 될 것이다. 제목은 〈자본, 가격, 분배: 희소성과 재생산성〉인데 ▲학부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경제학 ▲유학생 시절 좌절과 기쁨을 주었던 경제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다른 경제학을 알려주고 있다는 긍지를 느끼게 해 준 경제학을 종합할 책이다. 언제 출판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하…….

마지막으로 정경대학 학생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린다.

내가 공부한 시기와 현재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기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대학 시절만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정말로 마음껏 할 수 있는 때는 인생에 없다. 너무 학점에 매몰되지 말고 인생 앞에 펼쳐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부딪혀 보기 바란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후일 그것은 본인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정상우 기자

jungsw060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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